윤 대통령, 보수대통합 넘어 '국민대통합' 행보 필요한 시점 [중도층의 경고 ③]
총선 5개월 앞두고 과도한 보수층 구애, 산토끼 놓칠 수 있단 우려
선거 캐스팅보트인 중도층 표심 공략 위해선 통합·협치 행보 필요
싫더라도 야당 대표와의 만남 등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
현 정부 중간평가와 168석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심판이 내려질 내년 22대 총선 5개월여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층을 향한 열렬한 구애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4주기 추도식'을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고, 27일엔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했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 대통합'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왔다.
동시에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차분한 변화' 및 민생·소통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지만, 윤 대통령의 행보가 '보수 통합'에 집중되면서 "'국민 대통합'과는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4주기 추도식' 추도사에서 "지금 세계적인 복합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과 위업을 다시 새기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92개국 정상을 만나 경제 협력을 논의했다"며 "(외국 정상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공부하라. 그러면 귀국의 압축 성장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는 뒷이야기도 전했다.
추도식이 끝난 뒤 윤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안장된 묘소로 이동해 차례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이후 오솔길을 걸어 내려오며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윤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지난 5월 취임식 이후 약 17개월 만이고, 현직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을 치켜세운 바로 이튿날인 27일엔 경북 안동 병산서원을 찾아 유림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이어 경북도청에선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선 대규모 지방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 부여 방안 등이 담긴 '기회발전특구 추진 방안'이 의결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집토끼' 단속에 나섰지만, 이 같은 행보는 "'산토끼'(중도층)를 더 내쫓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중도층의 마음을 잡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야당을 상대로 이기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거기서 박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메시지를 낸 것은 중도층 표심 확보에 도움이 안 된다"며 "박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유권자는 (내년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을 찍으라고 해도 안 찍기 때문에 보수층이 아닌 중도층 구애를 위한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수사팀장과 피의자 신분으로 만났던 악연이 있는 만큼) 정치적 화해의 장면을 보여준 것은 보수 통합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윤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박 전 대통령을 크게 치켜세우는 메시지를 내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오솔길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 등을 보여준 것은 지나치게 보수층만 의식한 모습 같아서 아쉬운 측면"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보수 통합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선 '국민 대통합'을 위해 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회장인 상도동계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26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문민정부 출범 30주년 세미나'에서 "작금의 혼란한 우리 정치에 대한 해법은 민주주의 실현, 상생과 통합, 화해와 통합"이라며 "윤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빨리 만날 수 있도록 적극 건의하겠다"고 했다.
민추협 공동회장인 동교동계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도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나야 될 필요성을 언급하며 "사법 일은 사법에 맡기고 정치는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국회가 순항하고 대통령 국정 지지도도 5%p 이상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민생법안들이 민주당의 '힘자랑'으로 국회에서 번번히 발목 잡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싫더라도 야당 대표를 만나 협치의 물꼬를 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만남에 대해 "생각이 달라도 만나야 한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식 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불렀던 것처럼 '포용 정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일대일로 만나는 게 부담스러우면, 국민의힘·민주당·정의당 당대표와 원내대표, 한덕수 국무총리 등과 다함께 모이는 '여야정 확대회담'을 여는 것도 통합 및 협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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