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고기능 휠체어…“사치 아닌 필수” [걷지 않아도②]
“휠체어를 ‘돈’으로 보는 경향이 사회적 편견 만들어”
스웨덴, 맞춤형 기능 제공…직업·취미·집구조까지 고려
장애인 독립적 생활 유도 못하는 정부 획일 지원 지적
세상의 관심은 크지 않았지만 IT기술만큼 휠체어도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을 두고 일각에선 ‘사치품’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고가의 자동차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반대로 장애인들은 독립적 일상을 지켜낼 수 있도록 기능이 갖춘 휠체어를 ‘필수품’이라고 본다.
미국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 속 젊은 사업가 윌(샘 클라플린), 프랑스 영화 ‘언터쳐블 1%의 우정(Untouchable)’의 백만장자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한국 영화 ‘퍼펙트맨(Man of Men)’에서 로펌 대표로 나온 장수(설경구). 이들의 공통점은 사지마비를 겪고 있고, 휠체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모두 몸은 불편하지만 휠체어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한다. 돈을 벌고 취미생활을 하며 연애를 한다. 평범한 삶을 보여준다.
이들을 지탱하는 휠체어는 일반 전동휠체어의 기능을 넘어섰다. 높이를 조절해 상대와 눈을 맞추거나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가 눕고 일어나는 자세도 가능하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쓰던 휠체어는 인공지능과 연결해 눈짓만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최근엔 장애물을 피해가는 내비게이션 기능을 비롯해 음성인식, 자율주행 등이 다양한 기술이 탑재되고 있다.
영화 속 인물, 또 세계 유명 인사들이 사용한 고기능 휠체어의 개발사인 퍼모빌은 이러한 기술을 통해 휠체어 사용자의 독립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장애인이 최대한 자기 삶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브루스 볼랭저(Bruce Boulanger) 퍼모빌 아시아태평양 지사장은 최근 쿠키뉴스와의 만남에서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휠체어는 그저 바퀴 달린 의자가 아니다”라며 “사람이 사는 환경에 맞는 휠체어를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앞바퀴, 중간바퀴, 뒷바퀴 중 어느 것이 커야할지, 높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사용자가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떤 공간을 자주 다니는지에 따라 휠체어의 생김새가 각기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아이들이 자라나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휠체어의 역할도 계속 바뀌어야 한다. 자랄수록 생활 반경이 늘어나고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면서 “중증 장애인의 삶에 있어 휠체어는 사회 참여를 이끌고, 살아갈 의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이동에 그치지 않고 삶의 다양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미국, 유럽 등은 정부가 주도해 중증장애자에게 고기능 휠체어를 지원한다. 스웨덴의 경우 중증장애인의 일생 전반에 걸친 주기를 감안해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맞춤형 휠체어를 제공하고 있다. 직업과 경제력, 취미, 집의 구조까지 고려한다.
반면 한국은 고기능 휠체어를 만들 수 있는 훌륭한 기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용 접근성이 높은 환경은 아니다. 고기능 휠체어를 개인이 알아서 구매해야 하는 구조에서 1500~4000만원대를 호가하는 제품을 선뜻 구입하기 어렵다. 전동휠체어 구입을 위한 보건복지부의 지원은 장애자별 상황에 따라 150~300만원대로 책정돼 있다. 실상 대부분의 중증장애인에게 고기능 기기는 그림의 떡이다.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이 고기능 휠체어를 포함한 보조기기를 지원하고 있지만, 최근 6년간(2017~2022년) 실제 지원 받은 중증장애인은 2352명(7.9%)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깔려진 인식과도 맞닿아있다. 한국에서는 고기능 휠체어를 사치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브루스 지사장은 “일반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수술이나 약도 비싼 것을 고른다”며 ”선진국이 고기능 휠체어를 주도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용자의 생활에 맞는 기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한국은 개인이 나서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휠체어를 ‘돈’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너무 많은 부서에서 장애인을 지원에 관여한다”며 “한 곳이 컨트롤타워를 맡아 복지제도를 운영한다면 지원 폭을 더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에서는 이용자가 다양한 제품과 기능을 적용받을 수 있게 기업과의 연계를 진행한다. 렌탈 청구 지원을 하기도 하고, 기금을 운영하는 방식도 있다. 한국 역시 해외 사례에 착안해 일차적인 구매 지원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루스 지사장은 “장애인에 대한 투자는 사회활동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국가로 돌아오는 경제 비용이 되면서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중증장애인들이 삶에 대한 의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브루스 지사장은 “한국의 휠체어 사용자도 자신이 원하는 일과 취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적극성을 갖길 바란다”면서 “장애를 가진 아이가 제2의 스티븐 호킹 박사일 수 있는데, 이들을 집에만 둘 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에서도 장애인이 독립적 삶을 찾기까지 성장통을 겪었다”며 “모든 개인은 그 존재로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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