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정예냐, 다수의 개도국이냐…세계 질서 재편 나서는 미∙중 [글로벌리포트]

이승호 2023. 10.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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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국 방위 협력을 인도·태평양까지 확대할 것이다. "

지난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 정상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18일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미국 메릴랜드주(州) 캠프 데이비드에서 가진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일 정상이 국제회의가 아닌 곳에서 별도로, 그것도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의를 한 건 처음이다. 세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남중국해·대만해협에서 중국의 강압적 활동을 반대한다”고 밝히며 협력의 주목적이 중국에 맞서는 것임을 명확히 했다.

" 브릭스와 개발도상국이 단결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줬다. "

지난 8월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회의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같은달 2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란 등 6개국을 브릭스 신규 회원으로 받아들인 데 대한 자평이다. 시 주석은 회의 기간 미국을 겨냥해 “어떤 나라는 패권적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개도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더 많은 국가를 가족으로 끌어들여 브릭스를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미·중 경쟁이 치열하다. 다음달 11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미·중 정상이 참석해 외교전을 벌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美, 3~4개국 모아 중국 견제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회원국인 미국, 호주, 일본, 인도 정상들이 만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근 양국의 ‘우군(友軍) 끌어들이기’ 전략은 대조적이다. 미국은 ‘미니래터럴리즘(minilateralism·소자주의)’ 을 택했다. 다수 국가가 모인 국제기구 대신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몇몇 나라끼리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하는 방식이다.

소자주의 전략은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됐다. 그해 미국은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미국·호주·인도·일본)를 정상 간 협의체로 격상하고, 미국·영국·호주 간 3자 외교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와 중동판 쿼드라 불리는 I2U2(미국·UAE·이스라엘·인도)도 출범시켰다. 이듬해엔 한·미·일·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를 결성했다. 올해는 캠프 데이비드 회의를 통해 한·미·일 안보 협력을 공식화했다.

신재민 기자

타깃은 중국이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21세기 소자주의 실험 지역은 아시아와 인도·태평양으로, 이곳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라며 “이 지역과 지리적으로 먼 미국은 소규모 협의체로 중국에 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러 거부권에 막힌 유엔 대안


지난달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모습. EPA=연합뉴스
미국의 소자주의 전략엔 유엔(UN) 등 기존에 세계질서를 담당한 기구의 역할이 무력화된 현실도 반영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 채택에 실패하는 등 사실상 기능이 마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과 개별 국가 간 동맹에만 의지하기엔, 미 동맹국을 상대로 벌이는 중국의 외교 공세가 강력하다.

이에 미국은 3~4개국 정도의 ‘소수정예’ 모임을 대안으로 꺼내 들었다. 다양한 사안별로 헤쳐모여 신속하게 중국을 견제하고, 기존 동맹국과의 결속도 강화하겠다는 심산이다. FP는 “소자주의는 번거로운 국제기구나 위축된 동맹에 대한 실용적 대안”이라며 “미국은 다양한 소규모 협의체로 중국에 여러 겹의 견제망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中, 브릭스·SCO 키워 서방 대항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AFP=연합뉴스
반면 중국은 멀티래터럴리즘(multilateralism·다자주의) 전략을 구사 중이다. 지난 7월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이란을 가입시키고, 8월에 브릭스 회원국을 확대하는 등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의 덩치를 키우고 있다. 이를 통해 서방 주도의 블록에 대항하려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릭스 회원국 확대는 이 기구를 주요 7개국(G7) 회의의 경쟁자로 만들려는 중국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유엔을 활용해 ‘3대 글로벌 이니셔티브’ 담론 확산에도 나서고 있다. 3대 글로벌 이니셔티브는 시 주석이 지난 2021년 9월 제76차 유엔총회에서 밝힌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DI)와 지난해 4월과 지난 3월 각각 공개한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글로벌 문명이니셔티브(GCI) 제안을 말한다. 국제사회가 빈곤 감소, 산업화, 식량안보, 방역·백신, 기후변화, 테러 대응, 문명에 대한 관용 등에서 협력을 확대하자는 게 골자다.


유엔 통해 ‘글로벌 이니셔티브’ 확산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엔이 추구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내걸고 ‘글로벌사우스’(남반구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아프리카·남미·오세아니아 개도국)의 지지를 받는 게 목적이다. 지난해 10월 기준 유엔 산하 GDI 우호국 그룹(Group of Friends)에 가입한 나라는 68개국이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FP에 “중국은 세계에 자신만의 보편적 이념을 선보이며 시 주석을 (미국을 대체하는) 국제 질서의 수호자로 보이려 한다”고 평가했다.

중국 외교의 핵심이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실패를 교훈 삼은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미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은 “중국이 유엔을 GDI 활동무대로 삼은 건 GDI를 보편적 다자 협의체로 만들기 위해서”라며 “일대일로가 중국 중심의 일방적 일대일 협정이란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직까진 양국의 전략 모두 일방적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소자주의는 중국 견제 세력 확대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FP는 “미국은 소자주의의 느슨하고 비이념적 형식을 통해 인도처럼 독자 외교 노선을 걸어 온 국가와도 안보 등에서 협력하며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중국 신화통신 산하 기구인 신화사 국가첨단싱크탱크가 지난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글로벌발전이니셔티브(GDI) 협력 성과 전시 고위급 회의’에서 공개한 ‘GDI 실천 성과 및 세계 공헌’ 보고서 표지. 신화=연합뉴스

하지만 지난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강(强)달러로 인한 환율 급등·자본유출 등의 피해를 본 개도국 사이에선 미국에 대한 불만도 많다. 중국은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 질서가 ‘가짜 다자주의’라고 비판하며 개도국에 다가간다”며 “이를 통해 서방의 ‘중국 봉쇄’ 시도를 무력화하려 한다”고 진단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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