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면제' 해야만 국위선양? MLB 전설은 두 번이나 참전했다[Focus 인사이드]
최근 대두한 논쟁
현재 올림픽 3위 이상 입상, 아시안게임 1위를 달성한 선수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주고 있다. 1973년 관련 법률이 처음 제정됐을 당시 올림픽 1위만 해당했으나, 1981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 혜택 범위가 대폭 늘어났다. 자칫 판만 벌여놓고 남의 잔치가 될 수도 있었기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이후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런데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하고 일각에서 여성의 병역 의무까지 거론할 만큼 갈수록 병력 자원이 줄어들자 스포츠와 특정 예술 분야에 부여되는 병역면제 혜택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오는 중이다. 방탄소년단 논란에서 보듯 대한민국 홍보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현재 큰 역할을 해주고 있는 대중문화 분야에 대한 역차별까지 나올 만큼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한 시기에 군 복무가 경기력 향상을 저해한다며 여전히 혜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예비역 선수나 예술인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군 복무가 반드시 경기력을 저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부 종목 선수는 엄청난 부를 얻고 인지도를 누리기에 병역 혜택까지 주는 것에 대해 반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아래는 이런 논쟁과 관련해 귀감으로 삼을만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1960년 9월 26일, 미국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 홈팀 보스턴 레드삭스와 원정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기가 벌어졌다. 이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42살의 타자가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그가 날카롭게 휘두른 방망이에 맞은 공은 커다란 홈런이 됐다. 모든 관중이 기립해서 열렬하게 박수를 보냈고 그렇게 그는 환호 속에 그라운드를 돌았다. 보스턴의 영웅인 테드 윌리엄스의 은퇴 경기 장면이다.
1941년 시즌에 그가 타율 0.406을 달성한 이후 현재까지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 것만 보아도 윌리엄스의 위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보스턴 한 팀에서만 19시즌을 뛰며 통산 타율 0.344, 2654안타, 521홈런, 1839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2번의 MVP, 2번의 타격 3관왕, 6번의 타격왕, 4번의 홈런왕, 4번의 타점왕에 올랐고 빠짐없이 올스타에 선정됐다. 한마디로 메이저리그의 전설이다.
그런데 윌리엄스를 평가할 때 따라다니는 가정이 하나 있다. 만일 그가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하는 것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6ㆍ25 전쟁에 참전하여 무려 5년의 공백이 있었다. 많은 이들은 만일 그가 경력 단절이 없었다면 200개 이상의 홈런을 더 쳐냈을 것이고, 그랬다면 베이브 루스의 통산 714홈런 기록을 행크 에런보다 먼저 경신했을 것이라고 볼 정도다.
두 번이나 참전한 슈퍼스타
1942년 윌리엄스는 시즌 도중 징집 영장을 받았다. 그는 노모를 부양 중이었기 당국에 요청하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으나 즉시 입대해 해군 비행교육대에서 전투기 교관으로 조종사 양성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1946년 야구장으로 돌아온 그는 타율 0.342와 38홈런, 123타점의 맹타를 휘둘렀고 1947년에는 MVP에 올랐다. 군 복무가 경기력 하락을 가져온다는 일부의 주장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변함없이 절정기의 기량을 선보이던 그에게 다시 징집 영장이 전달됐다. 1952년, 즉시 현역으로 복귀하여 6ㆍ25 전쟁에 참전하라는 것이었다. 명령을 받은 윌리엄스는 망설임 없이 복귀하였고 그해 겨울 “이번에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평생 듣도 보도 못한 한국으로 떠났다. 이전 참전 때도 그랬지만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적당히 시간이나 보내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1953년 2월 16일, 평양 남쪽 폭격 도중 애기(愛機) F9F 팬서가 북한의 대공포에 맞아 추락당할 위기에 빠졌으나 수원까지 날아와 동체 착륙했을 정도로 그는 최전선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역전의 용사였다. 미국 최초로 우주 궤도를 돌았고 존경받는 상원의원이 됐던 존 글렌이 그의 윙맨이었을 만큼 뛰어난 조종 실력을 자랑한 윌리엄스는 1953년 휴전 직전까지 총 39번의 출격 임무를 완수한 뒤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맹활약했다.
1957시즌과 1958시즌에는 연이어 타격왕에 올랐는데, 특히 1958시즌의 40세 최고령 타격왕은 앞으로도 깨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으로 평가된다. 그가 운동장에 남긴 성적은 신화라고 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2002년 7월, 그가 84세로 생을 마치자 메이저리그는 모든 경기 시작 전에 추모식을 벌였다. 특히 보스턴은 그의 타격 장면과 비장한 출격 장면을 운동장에 크게 게시하며 대대적인 헌정 행사를 벌였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모범적인 태도 때문에 윌리엄스는 야구인을 넘어 미국의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그처럼 인기는 물론 모든 이가 존경하는 인물이 우리나라에도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운동이나 예술로 국위를 선양한 이에게 다른 방법으로 포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병역면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일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임무 수행을 당연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밈 쏟아졌다…"I am 신뢰에요" 전청조 엉터리 문자의 반전 | 중앙일보
- "펜타닐 캡슐 4개면 돼요"…미국 좀비거리 만든 중국소녀 | 중앙일보
- "굉음 들렸다" 10초간 질주…설운도 아내 차량 블랙박스 보니 | 중앙일보
- 다시 또 배당주의 계절 왔다, 올해 '수익 7%' 강자는 여기 | 중앙일보
- 6년전 뱃속 아이 잃은 엄마…"美 못믿겠다" 한국을 찾은 이유 | 중앙일보
- 원서 접수날 새벽부터 북적…국내 첫 '불교 유치원' 폐원 왜 | 중앙일보
- "尹, 민심 얻으려 뭐든 할 것"…대통령의 숙명 '승부수' 온다 | 중앙일보
- 업계 '큰 손'의 귀환…6년 10개월 만에 제주 오는 유커 전세기 | 중앙일보
- 증상 없어도 '숫자' 봐라…40대 심근경색 부르는 2030 남성'착각' | 중앙일보
- 이선균, 소변 간이시약검사 음성 나왔다…마약혐의 진술 거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