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 한 판에 4만원 육박…배달 피자 울고, 냉동 피자 뜬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국내 유명 피자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해온 A씨는 올해 안에 매장을 닫을 계획이다.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기도 하지만 수익이 점점 떨어져 매장을 더는 유지하기 어려워서다. 이 매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닥치기 전인 2018년과 비교해 월 매출이 60%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치즈값이 두 배로 오르는 등 재료비 비중은 오히려 늘었다. 물류비, 인건비, 배달 수수료 부담도 더 커졌다.
A씨는“원가가 올랐다고 가격을 올리면 아무래도 주문 건수가 줄게 된다”며 “배달이 자리 잡으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져 가맹점끼리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운영이 어려워진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매물이 많이 나와 있어서 넘길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고물가와 외식 문화 변화로 대형 프랜차이즈 피자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통·식품 업계가 경쟁적으로 저렴한 냉동 피자를 선보이고 있는 것도 기존 배달 피자 시장 침체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배달로 장벽 낮아지면서 경쟁 심화”
29일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프랜차이즈 피자 시장 규모는 2019년 1조3621억원에서 2020년 1조5622억원, 2021년 1조7850억원, 지난해 1조8195억원으로 늘었다. 시장이 커지는 듯 보이지만 매출 증가율은 2020년 14.7% 2021년 14.3%를 보이다다 지난해 1.9%로 급격히 둔화했다. 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배달 수요가 늘면서 소폭 성장하는 듯했지만 사실상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해석했다.
A씨의 말대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8년 6429개였던 국내 피자 가맹점 수는 지난해 8053개로 늘었다. 2021년(7023개)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시장 성장률이 1%대에 그쳤지만 가맹점은 14.7% 증가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브랜드의 매장 한 곳이 특정 배달 구역을 담당한다면 같은 구역을 대형 브랜드 매장은 3~4개가 나눠 맡고 있다”고 말했다. 가맹점 폐업률은 2019년 6.6%에서 8.5%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평균 연 매출은 2억7200만원에서 2억5500만원으로 줄었다.
업계의 위기감은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도미노피자를 운영하는 청오디피케이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1억5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92.8% 급감했다. 피자헛(-2억6000만원)과 피자알볼로(-12억9000만원)는 적자 상태다. 미스터피자는 올 1월 존속회사인 DSEN에서 물적분할해 기업 정보 공개 자료가 없다고 밝혔지만, 분할 전 미스터피자에프앤비는 약 41억원의 적자를 냈다.
라지 한 판 4만원 육박, 가격 인상도 어려워
밀가루와 치즈 등 주재료 가격이 상승세지만 가격 인상으로 수익성을 올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물가 장기화로 소비자 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도미노피자·피자헛·미스터피자 등 주요 브랜드들이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한두 차례 인상으로 이미 4만원에 육박하는 피자 가격이 형성돼서다.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외식 부문 물가상승률에서 피자는 12.3%로 전년 대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한 외식 업계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재료를 덜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품질이 떨어져 소비자 외면을 받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며 “일부 지역에서는 배달원들이 부피가 큰 데다 흐트러지기 쉽다는 이유로 배달을 기피하는 경향까지 보여 어려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자 업계 관계자는 “피자는 여럿이 함께 먹는 파티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판매가 매장에서 배달 중심으로 바뀌면서 가성비 높은 냉동 피자와도 경쟁하다 보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인 피자’ 특화 업체만 나 홀로 성장
실제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보관이 편리한 냉동 피자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로 성장하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냉동 피자 시장 규모는 2017년 1080억원에서 지난해 1590억원으로 47.2% 커졌다. 풀무원식품은 지난달 냉동 피자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해 11.1% 증가했다고 밝혔다.
프랜차이즈 피자 업계는 새로운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피자알볼로는 최근 웰빙 콘셉트의 이탈리안 피자 2종을 출시했으며, 피자헛·미스터피자 등은 1인 고객과 가성비를 동시에 노린 ‘1인 피자’ 제품들을 선보였다. 실제로 1994년부터 현재까지 9900원 피자를 판매하고 있는 피자몰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2021년 46%, 지난해 60% 느는 등 3년 연속 성장세를 보였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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