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찾은 이상민 "한번 포가 떨어진 곳은 다시 안 떨어진다"
[김성욱 기자]
▲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참사 장소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이 한산한 모습이다. 이맘때면 요란했던 핼러윈 장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검은 옷을 입은 주변 상인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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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이태원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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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이태원 일대는 예년 이맘 때와 달리 조용했다. 10월 마지막 주말이면 이태원 거리를 요란하게 장식했던 핼러윈 장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참사가 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 주변엔 유독 검은 옷을 입은 상인들이 많았다.
경사진 골목의 맨 아래쪽 건물 1층 자리는 1년 전 그대로 공실이었다. 참사 당시 이곳 내부는 시신을 수습하는 데 쓰였다. 건너편 벽면엔 1년 전에 없던 추모 포스트잇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포스트잇 벽을 보고 여기가 참사 현장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어떤 이는 걸음을 멈추고 서성이다 골목을 향해 합장을 했다. 군복을 입은 젊은이는 "여긴 줄 몰랐다"며 한참을 서있다 눈물을 닦았다.
- 1년 전에도 지금도 우리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슬프게도요…
- 어느새 1년이 지났네요. 그곳에서는 평안하신가요? 이곳은 여전히 복잡하고 시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람으로서 당신들의 몫까지 뜻 깊게 살아가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작년 이맘때쯤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지금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슬픕니다. 그대들이 안식하기를, 세상을 미워하지 않기를, 안녕하기를.
- 당일 그날 저도 이태원에 있었는데 ㅠ 도움도 못 드리고 미안합니다. 하늘 나라에서 행복하세요.
- 1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사과도 제대로 못 받은 상황이라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 다시 찾아왔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오늘 또 들려. 올까 말까 망설였는데, 요즘 자꾸만 생각나서. 시간 날 때마다 종종 들를게. 날씨 추워지는데 따뜻하게 있어. 다음에 또 올게!
두 걸음 반이면 닿는 골목에 다시 서서
▲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시민들이 참사 장소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 골목을 찾아 1년 전 상황을 떠올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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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었는데…"
일부러 이태원을 찾아 추모하는 시민들도 끊이지 않았다. 5분 넘게 참사 골목을 오르내리던 한 10대 청년은 "기분이 좋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1년 전 이곳에 있었다고 했다. 인파에 휩쓸려 넘어져 오른쪽 광대를 크게 다쳤는데, 누군가 골목 옆 가게 지하로 부축해줘 살았다고 했다. 그는 "그날 이후 오늘 처음 다시 와봤는데, 집에 가려고 한다. 힘들다. 참사 후 1년 동안 사람 많은 델 가면 숨이 막히고 트라우마가 심했다"고 했다.
▲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한 시민이 참사 장소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소주를 따라 올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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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참사 장소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골목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읽거나 적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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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따르고, 초코우유 따며 애도한 시민들… 유가족, 분향소서 추모제
▲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두고 열린 가족들의 추모제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유가족들이 서울시청 앞 시민 분향소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 김성욱 |
▲ 28일, 유가족들이 서울시청 앞 시민 분향소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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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159명 희생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159번 절을 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저희가 유가족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사람들이 되도록, 여기 계신 분들이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
"저 수진 엄맙니다. 제가 1주기를 맞이해서, 수진이한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어왔습니다. 딸랑구, 오늘 있잖아. 너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집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를 하기로 했어. 아침부터 좀 긴장되고 너를 생각하니 또 다시 눈물이 글썽이고 기분도 많이 다운되고 그러네. 오후가 되고 활동가님이 직접 집으로 오셔서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는데, 얘기할 때마다 많이 힘들었어. 니 얘기가 제일 힘들더구나. 너를 안 떠올릴 수가 없고.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가슴이 턱턱 막히고 답답했어.
언제쯤이면 너를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벌서 1년이 다 돼가는데.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있고, 너가 점점 잊혀지는 건 두렵고. 엄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진아, 많이 보고 싶어. 니가 너무 보고 싶어. 넌 어때? 엄마 보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래서 꿈 속에서조차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 거야? 엄마는 니가 너무나 보고 싶은데.
니가 전주 오면 항상 먹었던 순대국밥도. 서울에선 이 맛이 안 난다고 전주 오면 꼭 먹었었는데. 이제는 그 순대국밥을 같이 먹을 니가 없어. 엄마는 너무 슬프다. 항상 서울 가면 극장 가서 영화도 함께 보고, 동대문시장 돌아다니며 쇼핑도 하고 인터넷 모르는 엄마에게 말만 하면 알아서 척척 해줬는데. 이제는 영화 보러도 못 가고, 여행도 함께 갈 수가 없구나. 살아간다는 게 너무 서글플 거 같아. 니가 없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빨리 간 거야? 누가 널 기다린다고 그렇게 빨리 갔어? 널 보내고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우리가 함께 꿈 꿨던 그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니가 가버리면 어쩌라고.
벌써 10월이 됐어. 맞이하고 싶지 않지만 10월이 됐어. 10월은 너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고, 또 너가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도 한 달이라서 더욱 더 힘들기도 한 달이지. 수진아, 이번 니 생일엔 엄마가 너가 좋아하는 배추전과 치즈케이크, 너가 떠나기 전에 먹고 싶다던 김말이 튀김 해서 갈게. 항상 엄마 생일 챙겨 주고 했었는데. 이번엔 엄마가 니 생일 챙겨줄게. 오빠랑 우리 파티하자. 언니 오빠들이랑 친구들이랑 동생들도 많이 있던데, 올 한해는 가족들이 차려준 생일상에 모두모두 함께 모여 배고프지 않게, 맛있는 음식 나눠먹으면서 159번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이야. 이게 엄마, 아빠들의 마음일 거야. 수진아, 천국에서 친구들과 잘지내고 있다가 꼭 다시 만나자. 엄마가 꼭 만나러 갈게. 사랑하는 우리 딸. 감사합니다."
1년 지나도 안 바뀐 행정안전부 장관 "한번 포가 떨어진 곳은…"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참사 장소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을 찾았다. '핼러윈 인파밀집지역 현장점검'이라는 제목의 일정이었고, 구청·경찰·소방 관계자와 30여분 정도 인근을 돌아본 뒤 자리를 떴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이 지역은 구조적으로 위험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번 포가 떨어진 곳은 다시 안 떨어진다.' 그러니까 너무 이곳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다른 위험 요소가 있는지도 잘 관리해주세요. 그리고 시민들이 안전의식들이 많이 늘어나서, 여기는 많이 조심할 거 같아요. 오히려, 우리가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다른 지역도 관심을 넓게 가지셔서, 그런 우려 지역에 대해서도 사전에 미리미리 잘 대비해주세요"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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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참사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퇴하라"고 했다. 참사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행정안전부 장관인 이 장관은 이날도 유가족들을 만나 사과하지 않았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 '핼러윈 인파밀집지역 현장점검'이라는 제목의 일정으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골목을 방문했다. 이 장관은 골목 입구 추모공간을 지나며 잠시 묵념을 하기도 했다.
이 장관은 대동한 용산구청, 경찰, 소방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지역은, 구조적으로 위험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번 포가 떨어진 곳은 다시 안 떨어진다.' 그러니까 너무 이곳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다른 위험 요소가 있는지도 잘 관리해주세요. 그리고 시민들이 안전의식들이 많이 좀 늘어나서, 여기는 조금 많이들 조심할 거 같아요. 오히려, 우리가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다른 지역도 관심을 좀 넓게 가지셔서, 그런 우려 지역에 대해서도 사전에 미리미리 잘 좀 대비해주세요."
▲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참사 장소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골목에 붙은 시민 포스트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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