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봉평에 집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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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서울과 봉평을 왔다갔다 한다. 봉평집은 원래 아빠의 소유인데 더 이상 가지도 않고 관리하기가 힘들다며 나에게 맡긴 것이다. 관리에 들어가는 모든 품과 비용을 대는 대신 언제든 내 집처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고민할 것도 없이 덥석 제안을 받아들인 지 꼭 1년이 되었다. 그러나 제안을 받아들일 때에는 예상지 못했던 작고 큰 문제들이 생겼다.
서울과 봉평, 두 집 살이
먼저 서울집과의 거리. 서울에서 봉평까지는 2시간 남짓의 거리다. 금요일 밤 10시에 출발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뻥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대이다.
그러나 수도권 주민들이 나들이를 갔다 돌아오는 일요일을 기준으로 하면 이동거리가 꼭 두 배로 늘어난다. 주말만 되면 봉평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꽉 막힌 도로에서 어린이를 달래며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생각을 하면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 난방 비용. 봉평은 평창군에 속한다. 사실 봉평집을 관리하게 되면서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평창이 어떤 곳인가. HAPPY700, 고랭지 농사.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는 곳이다. 여름은 쾌적하지만 겨울에는 맹렬한 추위와 동거해야 한다.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재시에도 늘 집안 온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맞추어 놓아야 한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두 집의 관리비를 대다가 허리가 끊어질 판이다. 결국 유난히 혹독했던 지난 겨울에는 낡은 보일러가 터져 보일러를 교체하는 대공사를 겪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상주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날짜가 정해져 있는 폐기물 처리나 사람을 불러 진행해야 하는 집안 수리도 여의치 않다는 점, 펜션 내 각 집의 소유주들이 모두 달라 노후된 단지 관리가 쉽지 않다는 복잡한 내부사정 등등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에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봉평집 관리를 내게 맡긴다면 엎드려 절을 할 셈이다. 봉평에 집이 생긴 이래로 삶의 질이 조금 올라갔기 때문이다. 봉평집이 있어 매월 강원도로 달려가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호사를 일상의 즐거움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필요한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으니 가볍게 훌쩍 떠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집 어린이가 봉평집을 좋아한다. 집 안에서 아무리 뛰어다녀도 꾸지람을 듣지 않고 집 한 켠에 만들어 준 자신만의 조립식 집이 그곳에 있어서일까. 아니면 봉평집에서는 어른들의 표정이나 태도가 더 느긋하고 너그러워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봉평이란 지명이 널리 알려진 가장 큰 계기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일 테고, 봉평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오고 가는 이유는 피닉스파크 스키장 때문일 것이다.
여름 휴가철에도 한산한 봉평이 스키 시즌만 되면 차량과 스키인들로 북적인다. 봉평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풍경이 낯설고 덩달아 들뜬 기분이 되어 이참에 스키를 배워볼까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지금껏 봉평이 관광지로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이효석 선생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메밀은 강원도 외에도 충청도, 제주도에서도 자란다.
▲ 이효석 선생님 봉평을 유명관광지로 만들어주신 이효석 선생님 |
ⓒ 최지현 |
인구밀도가 낮고 숨어 있는 힙플레이스도 없다. 사람이 자연에 스며드는 동네다. 그런 이유로 봉평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쓸데없는 치장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봉평에만 머무르는 게 적적할 때도 있어 하루를 내어 옆 동네인 강릉에 다녀오곤 했다.
봉평의 숨은 매력 오일장
지난 주말, 우리집 어린이와 단 둘이 봉평집에 다녀왔다. 둘이 가는 게 아직은 자신이 없어 어린이에게 재차 물었지만 가고 싶다고 해서 용기를 냈다.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는 게 어린이도, 나도 피곤할 것 같아 이번에는 평창 내에서만 놀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 만한 거리들을 검색하다가 봉평오일장이 끝자리가 2나 7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 여행의 마지막 날이 22일이었다. 그렇다면 봉평면문화센터 뒤편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오일장을 구경한 다음 서울로 출발하면 아쉽지 않은 여행의 마무리가 될 것 같았다.
드팀전 장돌림을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지방도 해매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도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그 유명한 봉평장을 봉평을 오고 간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구경하게 된 것이다. 하늘 높고 햇살은 따사로운 가을날이었고 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주변에 단풍놀이를 하러 온 관광객들이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잠든 마을같이 조용한 시내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덩달아 신이 났다.
내륙지방답게 밭에서 기른 과일과 채소, 갖가지 곡물과 산에서 캔 나물, 버섯류가 주품목이었다. 지갑에 현금이 딱 천원 남아 있었던 것이 유일한 옥의 티였다. 준비성 없는 스스로를 탓하며 아쉬움을 삼키고 있는데 계좌이체도 가능하다는 것!
구매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치기엔 물건들이 저렴하고 신선했으며 내 앞에서 이것저것 고르며 담아가는 손님들이 연출하는 분위기가 사뭇 유혹적이었다.
요즘 금사과라 불리는 사과를 한 봉지 가득 담아 만 원에 파는데 어찌 안 사고 배기겠는가.
▲ 봉평장 송이버섯 시식을 도와주시는 친절한 아주머니 덕에 덜컥 한바구니 구매 |
ⓒ 최지현 |
▲ 송이버섯 생으로 소금과 들기름으로 만든 장에 찍어먹어도 맛있는 송이버섯 |
ⓒ 최지현 |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시장 안에 있는 소머리국밥집에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나눠 먹으니 봉평장을 마스터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이 일었다. 탐나지만 손에 넣지 못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하고, 하지만 차 안을 무겁게 채우고 서울로 떠나는 마음이 썩 슬프지만은 않았다.
앞으로 웬만하면 봉평장이 있는 주말에는 봉평집에 가볼 참이다. 달력을 보며 다음 봉평장과 주말이 겹치는 날을 헤아려 본다. 다음은 11월 12일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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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amelie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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