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에 학교서 온 공지...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장소영 2023. 10. 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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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감도는 '작은 지구촌', 뉴욕... 학교에서부터 소통과 이해, 평화가 시작되길

[장소영 기자]

아이들 학교에서 연이어 메일이 왔다. 학교 주변에는 동요할 만한 일이 일어나거나 예고되지 않았으니 안심하라는 내용이었다. 다소 에둘러 표현했지만 읽으면서 '이제 시작이구나' 하고 바로 알아들었다. 미국 밖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전쟁이라도 다민족 국가인 미국, 그것도 여러 아이들이 매일 함께 생활하는 공립학교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메일에는 학교 주변이나 지역구 내에서 주의를 요하는 행사가 있을 경우 지역 경찰에서 알림을 받는 대로 공지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모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여파이다. 유대교와 이슬람 사원에 경찰 순찰을 강화한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지나면서 보니 동네 시나고그(synagogue, 유대교 회당)에도 경찰차가 와서 경비를 서고 있다.  

'다양성의 나라' 속 갈등 
 
▲ 유대인 회당을 지키는 경찰차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여파로 유대인 회당과 무슬림 사원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었다.
ⓒ 장소영
 
뉴욕은 작은 지구촌이다. 리틀 이태리나 차이나타운이 아니더라도 생각 이상의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간다. 이들을 알아가고, 음식을 맛보고, 친구가 되어 교류하고, 생일 파티나 각자의 명절에 그들의 언어로 인사를 나누며 가까워진다. 몇 마디 정도는 이웃들의 언어를 알고 있고 이전에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편견도 지워나간다. 굳이 멀리 여행하지 않아도 이 좁은 도시에서 세계를 경험하고 세계인을 이웃하며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 곳인가.

내가 사는 동네는 인도와 유대인 이웃이 많다. 해피 디왈리(Diwali), 해피 하누카(Hanukkah) 정도는 낯설지 않은 인사가 되었고, 유대인 친구 성년식 생일 파티엔 점잖은 복장을 입고 18의 배수에 맞춘 축하금도 꼼꼼히 챙겨갔다. 내년부터는 우리의 음력 설(Lunar New Year)도 학교 휴일이 된다 하니 복주머니라도 돌려야 하나 태평하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평상시엔 이렇게 서로의 다름을 나누고 누리다가 미국 밖에서 전쟁과 갈등 상황이 벌어지면 다양성의 장점은 이내 다양성의 단점으로 옮겨간다.

유대인 이웃이 많으니 욤키퍼(Yom Kipper, 대속죄일)가 되면 아이들의 학교도 하루를 쉰다. 그러고 나면 다음 며칠은 욤키퍼를 끝낸 친구들과 어울려 간식과 버블티를 먹으며 아이들끼리 '달달하게 보내는 주'로 보내곤 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이 시작되면서 올해는 침묵의 주간이 되어버렸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중국계와 중국계로 오해받은 한국계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쁜 불리(Bully, 왕따) 공격을 당하기도 했고, 비슷한 문제들이 나라밖 소식의 파도를 타고 아이들 속으로 파고든다. 

표현의 자유가 강조되고 디베이트(토론) 문화가 학교에서부터 뿌리 깊이 박힌 미국이지만 학교 안에서는 예민한 역사와 주제들이 잘 다뤄지지 못한다. 아직은 표현이 서툰 아이들이 자칫 또 다른 갈등이나 상처를 안게 될 수도 있으니 피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 다양한 명절이 적힌 학교 켈린더 다양한 인종을 품다보니 학교 켈린더에도 각각의 명절을 축하하는 문구가 적힌다. 유대인 이웃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보니 그들의 명절에는 학교도 휴교를 한다. 지역민의 필요에 따른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 장소영
 
그럼에도 나는 미국이 가지는 다양성의 가치와 학교라는 공간에 희망을 건다. 갈등의 골과 고통의 역사는 분리의 벽이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을 적이나, 타깃, 숫자, 소속으로 묶어 비인격적인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행복하길 원하는 살아있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길은, 함께 먹고 마시며 어울려 사는 시간에서부터 오지 않을까 싶다. 

부모 세대의 '편견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는 공간. 표현력을 키우고 공공의 질서와 어울림을 배울 수 있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평화의 씨앗이 자라길 바란다. 그런 학교들이 가득한 미국의 다음 세대라면 지금보다 나은 소통과 공존의 모델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분쟁과 갈등이 뉴욕, 이 작은 지구촌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이 작은 지구촌에서부터 선한 영향력이 각자의 나라에 흘러갔으면 더없이 좋겠다. 

유대인 청소년에게 두 명의 중동 남성이 다가가 소년을 밀어 거리에 내동댕이쳤다. 흑인 남성이 버스에서 페트카(터번)를 쓴 시크교도를 때리고 페트카를 벗기려 했다. 한 유대인 여성도 지하철에서 폭행을 당했다.

뉴욕 주지사는 증오범죄 발생과 관련해 핫 라인(Hate and Bias Prevention Unit: 증오와 편견 예방부서) 신고처를 만들었다. 인디아 커뮤니티에는 힌두교와 무슬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으니 머리에 터번을 쓰거나 전통 복장을 한 여성 혼자 거리를 걷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글도 올라온다. 작은 지구촌의 갈 길이 멀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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