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하면 제주 시골에도 영향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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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우 기자]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두고 연일 정치권과 언론이 시끄럽다. 또 시작이구나. 지방에 살다 보니 이슈가 될 때마다 본능적으로 귀를 쫑긋 세우게 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또 대한의사협회가 결사반대를 하겠지, 정치권은 이쪽 저쪽 눈치만 보다 슬그머니 철회를 하겠지.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불균형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련 사례와 데이터는 흘러 넘친다. 그러면 뭐하나. 바뀌는 건 없는데 말이다.
자연이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어, 결혼하고 삼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제주도 시골 마을로 이주했다. 자처한 삶이었지만, 뱃속에 아이를 가지면서부터는 지방에서의 삶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가장 겁이 난 건 진통이 올 때였다. 산부인과까지 한 시간은 족히 달려가야 하다 보니, 중간에 양수가 터지거나 다른 응급 상황이 있을까 염려가 됐던 것이다.
아기를 품고 있는 열 달 동안 수시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곤 했다. 첫 아이니까 진통이 와도 실제 분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만일 진통이 오면 언제쯤 출발을 해야 할까. 위험을 줄이기 위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미리 그려본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첫째는 예정일이 지나도록 진통이 오지 않아 결국 유도분만을 했다.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아 수술을 해야 했다. 둘째 때는 오히려 마음을 놓고 있었다. 어차피 수술로 낳아야 해 분만 날짜를 미리 잡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한 달 전에 갑자기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사실 전날 밤에 터졌는데, 흐르는 게 양수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린 첫째까지 데리고 먼 길을 오가는 게 부담스러워 하룻밤을 그냥 흘려 보냈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니 의사는 양수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며, 바로 응급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대비한다 해도 아이를 낳는 것에는 수십 수백 가지의 경우가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 휴일엔 오름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요즘은 휴일마다 아이들과 오름에 간다. 시골에서 살려면 필히 건강해야 한다. |
ⓒ 박순우 |
아이를 낳고 나서도 지방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어린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해 수시로 감기에 걸린다. 그때마다 한참을 달려 소아과를 가야 했다. 인근에 여러 과 진료를 동시에 보는 의원이 있지만, 믿음이 잘 가지 않았다.
어르신들을 주로 진료하다 보니 약을 너무 세게 처방하거나, 건성으로 진찰하는 경우가 잦았다. 자주 병원을 다니는데 지친 나머지, 요즘은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그냥 근처 약국에서 사다 놓은 상비약을 먹인다. 증상이 심각할 때만 병원을 찾는다.
첫째가 두 돌이 좀 안 됐을 무렵, 의자가 고꾸라져 입안이 찢기는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입안의 상처는 크기가 작아도 피가 많이 나지만 금방 아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다음 날이 마침 이삿날이라, 늦은 오후에 시내까지 다녀오는 게 번거로웠던 것이다. 하지만 입을 벌려보니 상처가 심상치 않았다. 핏줄인지 힘줄인지가 눈에 보이는 지경이었던 것. 바로 차를 몰아 병원이 있는 시내로 달려갔다.
대학병원 응급실은 오래 기다려야 하기에 개인 병원을 먼저 들렀다.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에서 모두 치료를 거부 당했다. 결국 종합병원으로 향했고 봉합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는 위험 부담 때문에 소아 마취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돌고 돌아 제주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아이가 다친 지 예닐곱 시간 만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이었다.
이런 비슷한 사례는 주위에 차고 넘쳐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엄마들은 인근에 믿을 만한 소아과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인근에서 사남매를 키우는 친구의 경우 한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다른 아이들도 연달아 걸려, 환절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내로 나간다.
막내는 변에서 피와 장 조직이 나와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진찰을 받았다. 진단을 받고 약을 먹였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증상이 계속돼 결국 대학병원으로 갔다. 예약, 진찰, 검사, 결과 확인, 추적 검사가 이어지고 있고, 그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먼 길을 오간다.
셋째도 갑상선 수치에 이상이 생겨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는데, 살림 육아 밥벌이까지 하고 있는 친구라 수시로 먼 거리의 병원을 오가는 걸 무척 힘겨워 한다. 친구는 그래도 막내의 소아 대장 내시경이 제주에서 가능한 것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만약 불가능했다면 육지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운에 맡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천방지축 아들만 둘을 키우다 보니 언제든 다쳐도 이상하지 않은 것. 아이들이 유독 심하게 장난을 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시골이라 어디 부러지면, 엄청 고통스러운 상태로 한 시간 넘게 달려가야 해!"
걱정 돼서 하는 말이지만, 그럴 때면 행여나 아이들이 시골의 삶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까 염려가 된다.
▲ 오름에서 바라본 오름 다랑쉬오름에 올라 아끈다랑쉬오름을 바라본 모습. 이런 아름다운 시골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다. |
ⓒ 박순우 |
나이가 들면 시골을 떠나야 할까. 은퇴하면 시골에 살겠다고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골은 젊을 때 살아야 한다. 병원을 자주 가지 않는 나이라야 이곳에서의 삶이 견딜 만하기에.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고장 나는 데가 많아지고, 병원을 가는 횟수도 더 잦아질 텐데. 오가는 게 힘들진 않을까.
여전히 나는 시골이 좋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을 고집하는 나라에서, 이런 나라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일지 의문이다. 지역의 의료 공백은 언제쯤 해결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지역에서도 아이들을 마음 편히 낳아 기르고, 걱정 없이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자처해서 지역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마저 어쩔 수 없이 지역을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어떤 결론이 날까. 정원이 늘어난다 해도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의사는 얼마나 될까. 첩첩산중을 바라보며 한숨만 나온다. 오늘도 등원, 등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무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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