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고, '이거'나 해주세요" 고등학생이 교육부에 바라는 것

서부원 2023. 10. 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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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잠은 포기, 몸을 갈아넣는 아이들... 이들이 본 '2028 대입 제도 개편안'

[서부원 기자]

▲ 열흘 앞으로 다가온 수능 2023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이 10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 2022년 11월 7일 오전 서울 용산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당 5락'. 본고사나 학력고사 시절을 겪은 중년의 기성세대에겐 익숙한 단어다. 4시간 자면 대학에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였다. 수십 년 전 사라졌다고 여긴 이 단어가 의미만 약간 다를 뿐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고등학생이라면 4~5시간의 수면 시간을 경계로 공부하는 친구인지 아닌지를 대번 알 수 있단다. 학교와 학원에서 부과된 과제가 너무 많아 제대로 하려면 도저히 4~5시간 이상 잠잘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같은 수행평가 시즌이면 4시간 자는 것도 감지덕지라고 했다.

수업 사이 10분짜리 쉬는 시간에 책상 위에 엎드려 쪽잠 자는 걸로 태부족한 수면 시간을 벌충하는 모습이다. 특히 잠이 덜 깬 1~2교시는 눈꺼풀이 천근만근이 아이들이 태반이라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 몇몇 아이들은 에너지 음료를 물처럼 마시며 그 시간을 버틴다.

교실 환경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전자 칠판과 빔프로젝터에다 공기청정기, 에어컨, 인터넷 와이파이에 이르기까지 학교 밖의 웬만한 스터디 카페 부럽잖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의 퀭한 눈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고등학생이 된 후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한 아이의 하루 일상을 뒷조사하듯 따라가 봤다. 준수(가명)는 내신 성적이 3점대 초반인 중상위권이지만, 아직 대학 전공과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고민 중인 평범한 아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대견하지만, 분명치 않은 목적지와 코스를 따라 무작정 달리는 중이다.

실상 지금 고등학생 대다수가 준수와 같은 모습이다. 일단 내신 성적이 뒷받침되어야 대학 전공과 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생각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있다. 학교마다 다양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그도 고등학교 와서 5시간 이상 자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방과 후 수업과 학원 수업까지 마치고 스터디 카페에 가서 과제와 복습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일러야 새벽 1시라고 했다. 힘들겠다는 말에, 또래 친구들에 견줘 특별히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스스로 '평균적인' 고등학생이라고 말하는 준수의 일상은 수업으로 시작해 수업으로 끝난다. 하루 7시간의 정규수업이 끝나면, 다시 2시간의 방과 후 수업이 이어진다. 저녁을 해결한 뒤 학원에 가서 다시 2시간의 보강 수업을 받는다. 얼추 하루의 절반을 수업만 들으며 보내는 셈이다.

시간표에 체육이나 음악 수업이 든 날은 그나마 낫지만, 그러잖으면 종일 교실에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해야 한다. 요즘 준수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라는 치질도 고등학교에 와서 받은 '훈장'이라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밤 10시면 집에 돌아가 쉴 법도 하건만, 몸이 좋지 않거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스터디 카페로 가는 게 보통이란다. 그때 아니면 복습은커녕 학교와 학원의 과제를 해결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1년 365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취미활동은 언감생심이라고 하소연했다.

늘 피곤함에 절어있는 준수의 바람은 소박하다. 원 없이 자보는 것과 친구들과 함께 종일 축구를 하는 것.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이것들을 '소원'이라고 말하는 건 일상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말에도 아침부터 학원 순례가 시작되고, 축구를 하려 해도 함께할 친구들이 없다.

당장 수업 대신 자습할 시간이라도 늘어나면 좋겠단다. 종일 앉아 수업만 듣다 보니, 당일 배운 내용을 소화해내기도 버겁다는 것이다. 영어와 수학처럼 각자의 수준차가 뚜렷한 과목은 학원의 도움이 불가피해서 결국 잠잘 시간을 줄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나마 또래 친구들 모두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에 위안이 된단다. 매도 다 같이 맞으니 덜 아프다는 거다. 자정을 넘긴 새벽 시간에도 스터디 카페를 나올 때 누군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경쟁하듯 더 앉아 있게 된다는 그에게 공부는 차라리 몸을 갈아 넣는 투쟁이다.

"밤이고 낮이고 옆 친구가 공부하고 있으면 불안해요. 어차피 한 줄로 세워 등급을 매기는 시험이 있는 한, 모든 인문계 고등학생에게 잠과의 전쟁은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뛰는' 교육부 위에 '나는' 사교육
 
  2028 대입개편안이 발표된 다음 날 강남 대치동 학원에서 긴급 입시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2023.10.11
ⓒ 연합뉴스
 
'4당 5락'의 각오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그에게 얼마 전 교육부가 발표한 '2028학년도 대입 제도 개편안'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자신의 대입과는 무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다만, '동그란 네모'를 그리려는 어설픈 정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만 했다.

고교학점제와 수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다는 건 아이들이 더 잘 안다. 수능이 대입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 고교학점제는 껍데기만 남을 게 분명하다. 무늬만 '학생의 교과 선택권 보장'일 뿐, 실제는 수능 출제 과목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서울 소재 명문대를 중심으로 '핵심 권장 과목'과 '권장 과목'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교과 선택을 종용한다. 해당 대학 담당자는 "명시적인 불이익은 없지만, 수강을 권장한다"는 취지라고 답한다. 물론, 이를 순수하게 '권장'으로 받아들이는 수험생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는 근본적인 환부를 도려내지 못할 거라면, 대입 제도 개편을 아예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혹평했다. 이번 개편안이 발표되자, 당장 부모님부터 중학생 동생의 대입이 걱정된다며 사교육에 기대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미 '완벽 대비'라는 광고 문구를 내건 학원이 여럿이다.

그의 말마따나,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발표되는 교육개혁안은 늘 사교육의 배를 불리는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공교육의 변화를 이끌기는커녕 되레 사교육의 위상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패착을 거듭했다. '뛰는' 교육부 위에 '나는' 사교육이 있음을 매번 증명한 꼴이다.

교사들도 이번 개편안에 대해 기대를 접은 눈치다. 애초 불가능한 미션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 교육과정을 '보고용'과 '운영용'으로 따로 마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는 형국이다. 실상 '동그란 네모'를 그리려면 그 방법뿐이다.

상대평가와 서열화한 학벌 구조가 해체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아이들도 다 아는 정공법은 외면한 채 변죽만 울리는 개편안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미래세대 아이들에게조차 우리나라에서 교육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절망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지난밤엔 3시간밖에 못 잤다는 준수에게 교육개혁은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다. '공정'이고 '융합'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이것 하나면 족하다고 했다. 그의 외마디 답변을 듣노라니, 교육개혁의 근본적 지향점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교사로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새삼스럽지만, 교육개혁의 목표는 아이들의 '행복한 삶'이다.

"됐고요. 우리에게 잠잘 시간을 돌려주는 게 진정한 교육개혁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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