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놀이로 돈 펑펑"…250억 먹튀 주범, 5만원 모텔서 잡혔다 [사건추적]

안대훈 2023. 10. 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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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 도망자 신세…체포되자 한 말


단속 중인 특별사법경찰관 자료사진. 뉴스1
지난 8월 5일 오전 0시쯤 대전의 한 모텔. 1박에 5~6만원하는 평범한 이 숙박업소 안팎에선 긴장감이 맴돌았다. 모텔 4층 복도에선 경남경찰청 반부패ㆍ경제범죄수사1계 경찰관 2명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른 경찰관 1명은 4층 방 창문이 보이는 모텔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다. 모텔방에는 경찰이 주말까지 반납하고 3개월 동안 쫓던 범인이 투숙하고 있었다. ‘경남 합천 호텔사업비 250억 먹튀 사건’ 주범 A씨(50대)였다.

방은 잠긴 출입문과 잠겨 있을지도 모를 중문을 열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경찰은 모텔 1층 손님이 없는 방에서 마스터키로 출입문을 열고, 뾰족한 도구로 중문을 따는 연습을 수차례 했다. 재빨리 검거하지 않으면 A씨가 4층 창문 밖으로 도주하다 자칫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이후 검거에 나선 경찰은 2개의 문을 차례로 열고 신속하게 방 안에 진입했다.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하던 A씨는 그대로 경찰에 체포됐다.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검거 직후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250억 먹튀’ 주범, 수중엔 250만원뿐


경찰은 “(김씨 방에) 들어가면 돈이 꽉 차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A씨가 가진 것은 백팩과 현금 약 250만원이 전부였다. 경찰 수사망을 피하려고 현금만 썼다고 한다. 휴대전화도 선불용으로 2차례 바꿔 사용했다. 먹을 것을 사러 나갈 때를 빼곤 주로 모텔에 머물렀다고 한다. 숙박비도 2개월 치를 선납한 상태였다. A씨 소재가 파악되지 않으면서 수사에 난항을 겪던 경찰은 “(A씨 검거로) 수사의 물꼬가 트였다”고 했다.

‘250억 먹튀 사건’은 지난 5월 31일 합천군이 A씨 등 5명을 경찰에 고발하면서 알려졌다. 합천영상테마파크 숙박시설(호텔) 조성사업 명목으로 마련된 부동산 PF 대출금 550억원 중 신탁회사에 맡긴 공사비 약 3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250억원을 빼돌렸다는 게 고발 취지였다. 이들 5명은 해당 호텔사업을 진행하는 B시행사 임원들이었다. A씨는 B시행사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경남 합천영상테마파크 호텔 조감도. 사진 합천군


앞서 합천군은 2021년 9월 B시행사와 실시협약을 맺고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합천영상테마파크 내에 연면적 1만4000㎡(약 4235평), 200실 규모 호텔을 건립하는 게 사업 골자다. B시행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PF 대출을 받는데, 합천군이 채무보증을 섰다. 지난해 9월 착공식을 진행, 사업이 본격화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올 3월 B시행사가 갑자기 물가 상승에 따른 자재비 급등을 이유로 합천군에 약 150억원 사업비 증액을 요구, 한첩군이 이를 살피는 과정에서 돈이 과도하게 빠져나간 걸 포착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직원이 이를 캐묻자 4월 A씨는 잠적했다. 결국 “합천에 4성급 호텔을 만들겠다”던 이 사업은 좌초됐다.


페이퍼 컴퍼니 허위계약…유흥비 ‘펑펑’


A씨는 지난 8월 31일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B시행사 명의상 대표 C씨(50대)와 부사장 D씨(60대)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합천군이 고발한 나머지 3명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 사기 일당이 편취한 PF 대출금은 170여억원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약 80억원은 대출 이자, 설계비 등 실제 사업에 쓴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들은 조경, 기자재 구입, 태양광 시설 등 부대사업 명목으로 다수 회사와 용역계약을 체결, 대금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PF 대출금을 빼돌렸다. 하지만 이들 사업은 진행되지 않았다. 계약한 회사의 상당수는 ‘페이퍼 컴퍼니’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B시행사와 허위로 계약서를 작성해 돈을 빼돌릴 수 있도록 도운 8명도 사기 공범으로 입건했다.

지난해 9월 경남 합천군 용주에서 열린 '합천영상테마파크 호텔 착공식' 현장. 사진 합천군

경찰 수사 결과, A씨 등은 범죄수익금을 개인 생활비나 유흥비로 탕진했다. 호텔 스위트룸에 묵거나 고급차 리스 비용으로도 썼다. “A씨가 ‘회장 놀이’를 하며 돈을 펑펑 썼다”는 말도 나왔다. 경찰이 여러 계좌를 모두 훑었지만, 현재 범죄수익금은 다 써서 남은 게 없다고 한다.


공무원 유착됐나…경찰, 합천군 압수수색


경찰은 이 사건 관련 시행사와 합천군 공무원 간 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지난 24일 합천군 전·현직 공무원 3명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전직 1명, 현직 2명으로 호텔 조성사업 당시 결재라인에 있던 인물이다. 경찰은 이들 공무원이 A씨 등 범행에 도움을 줬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경찰은 시행사에게 대출금을 준 금융기관 관계자들도 조사 중이다. 합천군이 금융기관의 공모 내지는 방조가 의심된다며 관계자 3명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통상 PF 대출 자금 인출은 금융기관·신탁사·시공사 등 자금 집행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대출 과정에서 시공사 등이 배제됐다는 게 합천군의 설명이다.

한편 경찰 수사와 함께 지난 18일 감사원 감사도 진행 중이다. 감사원은 이 사업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행정 사무 전반에 걸쳐 위법·부당 사례가 있었는지 등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합천=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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