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그가 보낸 택배 속엔 마약 있었다…'300만원' 혹독한 대가
지난해 가을, 20대 인디음악가 A씨는 돈이 급했다. 음악 기기와 앨범 제작비가 필요해 최근 대부업체에서 6000만원을 빌렸는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불현듯 몇 달 전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나르코스 파블로’란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의 ‘구인 공지’가 떠올랐다. 콜롬비아 마약왕의 일대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제목을 딴 이 대화방에선, 실제 마약류 거래가 왕성했고 ‘마약류 배달책으로 일하면 대기업 임원만큼 돈 벌 수 있다’는 공지글이 있었다. A씨는 대화방 운영자이자 마약 판매상인 ‘파블로’에게 ‘구직 의사’를 밝혔다.
A씨는 파블로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파블로는 A씨를 정확히 알길 원했다. 운전면허증, 사진, 주소, 전화번호 등을 보냈고 ‘비대면 신원 인증’도 했다. 그가 나오라는 서울 신림역으로 가 어딘가에 숨어 자신을 지켜볼 그의 시선을 짐작만 했다. 까다로운 심사 끝에 A씨는 파블로의 점조직에 합류했다.
파블로는 ‘공식 업무’ 외 ‘별도 지령’도 내렸다. 해외서 온 ‘내용물 미상’ 택배를 대신 받는 일.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물품을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인천의 한 영세 택배업체가 A씨 집으로 보내주면, 이를 받아 내용물만 꺼내 종량제 봉투에 담아 집 밖 어딘가에 숨겨두고 자신에게 장소를 보고하라 했다. 실제로 A씨가 택배를 받아보니 상자 속엔 봉지라면이 한가득 있었다. 그 안엔 합성대마가 숨겨져 있었지만 A씨는 뜯어보지 않고 지령을 완수했다.
문제는 파블로가 A씨와 상의 없이 A씨에게 또 다른 택배 상자를 보내면서 발생했다. 때마침 인천세관이 이 택배에서 합성 대마를 발견해 ‘통제배달’을 했다. 마약 범죄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마약을 숨긴 화물을 통상적인 절차로 위장해 배달하는 수사기법이다. 얼떨결에 택배를 받은 A씨는 현장에서 긴급체포됐다.
첫 업무를 시작한 날(지난해 9월 19일)부터 체포된 날(11월 8일)까지 A씨가 파블로로부터 받은 돈은 300만원, 그마저도 수수료를 떼면 270만원이었다. 이보다 길고 혹독한 대가가 이어졌다. A씨는 지난 5월 구속 상태서 재판에 넘겨졌다. ▶봉지라면 속 대마초가 있던 걸 알았는지 ▶파블로와의 밀수 공모를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석 달 간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법원은 이런 항변을 일부 들어주긴 했지만, A씨는 실형을 피할 수 없었다. 인천지방법원 형사합의15부(재판장 류호중)는 지난 12일 마약 소지 혐의만 인정해 A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택배를 적극 수령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택배의 발송·수입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며 “A씨 첫 달 급여 300만원은 마약 드랍의 대가로 보기엔 적지 않지만, 두 번의 밀수 대가로 보기엔 다소 적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파블로가 지시하는 일이 마약 관련이란 것을 몰랐을 리 없다”고 봤다. 다만 이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다. 라면 봉지를 뜯어보지 않아 마약이 든 줄 몰랐다고 주장해 온 A씨와,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검찰 모두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된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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