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유기견]①유기견 '0914-309'의 마지막 27일…기다림 끝에 안락사되다
보호소 입소부터 안락사 이르기까지
지난 11일 경기 양주시에 위치한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의 한 건물 앞 작은 마당에 개 10마리가 뛰고 있다. 갈색 철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이지만 개들에겐 상관없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한 개들은 서로 냄새도 맡고 장난으로 물기도 하면서 놀고 있다. 활발하게 뛰면서 초록색 기둥마다 오줌을 누며 영역을 표시했다. 사람 좋아하고 사회성도 좋은 귀여운 개들이다. 흰색 개 한 마리는 눈에 띄게 마당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이 개의 이름은 '0914-309', 숫자다. 0914-309뿐만 아니라 뛰어놀고 있는 10마리 모두 이름이 죄수 번호처럼 숫자다. 이들은 이날 안락사된다.
9월15일, 인식표 없이 온 0914-309
0914-309는 지난달 14일 경기 포천시 소흘읍에 위치한 한 마을에서 발견돼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로 왔다. 파란색 목줄을 한 것으로 보아 단순한 들개가 아닌 주인이 있던 반려견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는 수도권 지자체로부터 위탁받고 있는 유기견 보호소로 개 400마리 정도 보호하고 있다.
0914-309는 바로 견사에 배치되지 않고 일명 '신입방'에 하루 정도 머물렀다. 혹시 전염병을 가졌는지 지켜보기 위해서다. 하룻밤을 신입방에서 보내고 0914-309는 수의사 앞에 놓였다. 다리를 떨고 있는 0914-309를 능숙하게 들어 올린 수의사는 건강 상태와 나이, 품종 등을 살펴본 후 인식표가 있는지 확인하는 기계를 갖다 댔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등록된 반려견이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선 2014년부터 '동물등록제'가 시행됐다. 지난 8월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가 발표한 '2022년 반려동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물등록제가 실시되고 9년 동안 누적 등록된 반려견은 총 302만5859마리다. 다만 등록 건수는 줄고 있다. 지난해 신규 등록한 반려견은 29만958마리로 전년 대비 41.8% 감소했다.
내장형 인식표만 있어도 주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임성규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소장은 "인식표에 견주의 정보가 있어 인식표를 가진 개의 대부분은 주인을 찾아줄 수 있다"며 "그러려면 분실 위험이 없는 내장형 인식표를 삽입해야 한다. 외장형 인식표를 목줄에 달고 오는 개는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견주들은 감염 등 부작용을 우려해 내장형보다는 외장형을 선호한다. 동물등록 방식 가운데 내장형 인식표 비율은 2021년과 2022년 모두 46%로 절반을 밑돌았다.
수의사가 0914-309의 신상을 모두 살펴보면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직원들은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린다. 0914-309의 나이는 5살, 믹스견이고 암컷이다. 0914는 날짜, 3은 포천 등 지역명, 9는 순서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0914-309는 A13 견사에 배치됐다. 이제 주인이 찾거나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오기 전까지 철장에 있어야 한다. 0914-309 혼자 온 건 아니다. 같은 A13 견사에 0914-314도 들어왔다. 역시 흰색 믹스견이다. 0914-309, 0914-314와 마찬가지로 이날 유기 상태로 발견돼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들어온 개는 총 33마리다. 이들 중 인식표를 가진 개는 한 마리도 없었다.
9월23일, 일주일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주인
"멍멍!" 일주일 뒤 찾은 견사 속 0914-309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세차게 짖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유기 안내 공고에 "겁 많음, 방어적 입질"이 적혀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짖는 건 아니다. 매일 밥을 주는 직원 최모씨(72·남)에겐 짖지 않는다. 최씨도 0914-309의 입질을 걱정하지 않고 사료를 부어준다. 최씨는 "매일 밥 주고, 깨끗하게 견사 신경 써주는 것을 개들이 알지 않겠나"고 말했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는 양주시 구석에 위치해 있지만 주말만 되면 주중 대비 4배가 넘는 사람들이 방문한다.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으러 오기 때문이다. 0914-309의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반려견의 소유권은 유기견보호센터가 개를 보호한 지 10일이 지나면 견주에서 지자체로 넘어가게 된다. 소유권이 넘어가면 입양 공고를 내든, 안락사를 시행하든 유기견보호센터의 결정사항이다. 누군지 모를 0914-309 견주의 소유권은 9월24일까지로, 0914-309 입장에선 주인을 맞을 수 있는 마지막 주말이다.
오후 1시, 세 명이 동시에 들어왔다. 한 명은 유기견 1마리를 입양하러 왔고 2명은 부자지간으로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왔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개 1마리가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관계자 손에 들려 나왔다. 0914-309가 아닌 갈색 푸들이었다. 그동안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구조된 개 33마리 가운데 9마리는 주인이 찾아갔다. 0914-309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10월5일, 발표되는 안락사 명단
9월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긴 추석 연휴가 지나는 동안 0914-309의 소유권은 지자체로 넘어가 입양이 가능한 반려견이 됐다. 하지만 0914-309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이가 많을수록, 크기가 클수록, 품종견이 아닐수록 입양될 확률은 떨어진다. 0914-309는 소형견이지만 많은 나이와 믹스견이라는 점이 입양 가능성을 떨어트렸다.
이달 5일 다시 찾은 한국동물구조협회 직원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안락사를 하는 날이다. 한국동물구조협회는 매주 2회 안락사를 진행한다. 직원들은 전날 뽑아둔 명단을 확인했다. 한 달 전후로 견사에 머무른 개 42마리가 명단에 담겼다. 0914-309도 견사에 머문 지 20일이 됐기에 안락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 긴장되는 순간, 명단엔 0914-309가 없다. 연휴 동안 안락사를 진행하지 않아 한 달 가까이 안락사가 밀린 개도 있어서다. 0914-309에겐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더 생겼다.
안락사를 시행하는 날이라고 한국동물구조협회 사무실의 분위기가 특별히 무거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두 힘든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직원들은 항상 죄책감에 짓눌려있었다. 임 소장은 관련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안락사를 돕기는커녕 안락사를 시행하는 장면을 본 적도 없다. 일부러 '안락사 방'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을 정도다. 직원 최씨는 "공간은 한정돼 있고 유기견은 계속 생겨나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측은한 마음이 가장 크다"며 "개를 버리는 사람들을 향한 미운 감정도 커진다"고 말했다.
안락사는 곧바로 시행되지 않는다. 개들은 '안락사 방' 앞에 마련된 마당에서 2시간 정도 뛰어놀다가 안락사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동물구조협회 직원들은 목줄이 끊어진 개들을 찾아 색깔 있는 띠를 매준다. 혹시 명단을 잘못 보고 엉뚱한 생명을 앗아갈까 표시하는 방법이다. 이날 개 42마리는 2시간 동안 뛰어논 후 죽음을 맞이했다.
10월11일, 0914-309의 마지막 날
이달 11일, 다시 안락사를 시행하는 날이 찾아왔다. 0914-309는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벌었지만 여전히 입양을 문의하러 온 사람이 없었다. 안락사 명단엔 20마리가 담겼다. 이번엔 피할 수 없었다. '0914-309', 명단에 이름이 있었다.
함께 들어온 0914-314는 명단에서 빠졌다. 마포서울동물복지센터에서 0914-314를 데려가겠다는 의사를 보였기 때문이다. 마포서울동물복지센터를 비롯한 서울시 내 유기견입양센터는 안락사를 앞둔 개를 데려가서 입양될 때까지 돌본다. 다만 공간과 비용의 한계가 있기에 모두 데려갈 수는 없다. 0914-314는 운 좋게 선택돼 안락사를 피한 것이다.
오전 11시, 0914-309는 안락사 방 앞마당으로 옮겨졌다. A13 견사에 배치되고 27일 만에 바깥에서 맘껏 뛰어놀았다. 개들은 뛰다가도 사람이 지나갈 때 멈춰 섰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두 시간이 지난 오후 1시, 안락사가 시작됐다. 0914-309가 첫 차례였다. 직원들은 0914-309를 안락사 방안으로 데려 들어왔다. 0914-309는 "낑낑" 소리를 내면서 끌려왔다. 직원이 0914-309의 두 앞다리를 잡은 후 수의사가 오른쪽 앞다리에 고무줄을 동여맸다. 다리에 케타민 성분의 마취제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주삿바늘을 보고 0914-309가 떨자 직원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위로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2분 정도 지나자 0914-309는 마취가 돼 움직이지 않았다. 직원은 0914-309의 왼쪽 앞다리를 잡았다. 수의사는 동물용 안락사에 사용되는 T-61 약품을 투입했다. 그때부터 0914-309는 누구의 손에도 잡히지 않은 채 책상 위에 가만히 놓였다. 수의사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아 기도하며 0914-309의 마지막을 기다렸다.
T-61을 투입하고 2분 후, 수의사는 0914-309의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옮겨도 돼." 수의사의 말이 떨어지자 직원은 0914-309를 들어 올렸다. 0914-309는 아무런 힘도 없이 축 늘어진 상태로 다른 책상으로 옮겨졌다. 직원은 목줄을 떼서 버리고 0914-309를 사진 찍었다. 안락사됐다는 행정 작업을 위한 절차다. 0914-309는 냉동창고로 옮겨졌다. 냉동창고가 다 차면 소각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온다. 소각되고 나면 유기됐던 반려견은 마지막을 맞게 된다.
0914-309가 안락사되면서 A13 견사에도 빈자리가 생겼다. 하지만 채워지는 데 오랜 시간 걸리지 않는다. 직원들은 쉴 새 없이 신고받고 나가서 주인 모를 유기견들을 데려온다. 저편에서 안락사가 진행되는 동안 등록되지 않은 400마리의 유기견들과 신입방에 들어온 신입 유기견들은 계속해서 짖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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