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할 수 있을까요”…휠체어가 가져온 삶의 변화 [걷지 않아도①]
수업 중 짓눌리고 친구들과도 소원…일일이 엄마가 챙기며 생활
고기능휠체어 사용 뒤 독립생활 가능 “도움 받는 존재 벗어나”
보조기기 쓰는 장애인 중 전동휠체어 등 이용은 비싼 탓에 8% 불과
“지원되는 휠체어로는 욕창·피로 해방될 수 없어…사회활동 불가”
최근 서고 눕고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퍼스널 모빌리티(PM) 기술을 입힌 첨단 휠체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제품의 기능은 단순히 이동 편의를 돕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성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이용자는 극히 제한적이다. 높은 가격에 접근성은 떨어지고,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의 일상은 여전히 고달프다. 신체장애는 일상의 장애로 이어져야 하는 걸까. 진화하는 휠체어 기술을 보편적으로 누릴 순 없을까. 휠체어를 중심으로 보조기기의 기능성이 장애인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들여다본다. 국내 보조기기 지원 방향과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도 살핀다. [편집자주]
“휠체어를 타면 할 수 있는 게 점차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대조차 없었죠.”
어릴 적 근이영양증을 진단 받고 중학교 때부터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김정환(23세·대학생)군. 그는 최근 쿠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불안의 연속’이었다고 표했다. 그저 집과 학교를 오간 시간 속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수동 휠체어에 몸을 싣고 중학교를 다닐 땐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언제나 어머니가 동행했다. 친구들과 가까워지는 것도 어려웠다. 이동수업 시간, 친구들이 책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교실을 빠져나가면 김군은 어머니의 보조를 받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함께 장난치며 눈을 마주치고, 보폭을 맞춰 걷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곤 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을 듣기 위해 김군은 이를 악물었다. 오랫동안 몸이 짓눌리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자세조차 바꿀 수 없는 탓에 등과 엉덩이, 팔꿈치 부위가 습한 상태로 압박을 받아 물집이 생기거나 붉게 변했다. 욕창 방지용 매트리스를 깔면 그나마 낫지만 계속해서 뻐근하고 저려오는 감각은 막을 수 없었다.
난관은 다니는 길 곳곳에서도 이어졌다. 휠체어의 얇은 바퀴는 걸핏하면 하수구 구멍에 빠졌다. 포장 안 된 길에선 휠체어가 기울어져 쓰러지기도 했다. 오르막길은 보조자 없인 엄두를 낼 수 없었고, 상가를 이용하려면 경사로가 있는 곳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김군을 둘러싼 환경은 늘 불안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아득한 그의 삶이 달라진 건 대학 입학 이후의 일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합심해 어렵사리 4000만원에 달하는 고기능 휠체어를 구입했다. 이때부터 김군의 ‘독립적 생활’이 가능해졌다. 휠체어 높이를 조절해 친구들과 눈을 마주보며 걸었다.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냈고, 큰 바퀴로 오르막길을 도움 없이 올랐다. 모션 기능을 통해 눕고 일어서며 뻐근함을 해소하기도 했다.
최근엔 한 직장에 인턴으로 채용돼 재택근무를 한다. 고기능 휠체어는 편리함을 넘어 사회인으로서 포부를 키우게 했다. 어머니에게는 자유를 부여했다. 가족에게 일상을 줬다. 김군은 대학원 과정을 거쳐 공기업 취직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비싼 고기능 휠체어를 쓴다는 건 가족에게 큰 부담이고 남들에겐 좋지 않은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지만, 마냥 도움만 받고 살 수 없다”며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만큼 꼭 필요한 장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를 벗어나 자주적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 만족한다”면서 “휠체어를 타는 지인들에게도 스스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휠체어를 타는 아이들도 성인이 된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매순간을 함께할 수 없다”며 “성능이 좋은 휠체어가 주어진다면 그만큼 아이들의 자립이 빨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생애 주기에 맞는 휠체어 지원이 필요하다”며 “현재 정부가 마련해주는 휠체어나 지원금으로는 고된 생활을 피할 수 없다. 중증장애인 가족들에게 집에 갇혀 있으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2022년 하반기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비경제활동 인구는 150만명 정도다. 15~39세가 약 35%를 차지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장애로 인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취업에 대한 한계를 갖는다고 밝혔다.
장애 극복을 돕는 기능성 보조기기를 구할 수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등록장애인은 262만명으로, 10명 가운데 7명이 휠체어 같은 보조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보조기기 사용자 중 전동휠체어, 스쿠터 등 사양이 높은 기기를 쓰는 사람은 14만명에 그친다. 전체의 8% 수준이다.
이재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보조기기 지원비로 기초생활수급자는 209만원을, 수급자가 아니라면 수급자의 80% 수준인 167만원을 받는다”면서 “쓸 만한 기능을 갖춘 보조기기를 구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짚었다.
김종배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도 “우리나라에서 최중증 장애인에 해당하는 전동휠체어 사용자는 200만원가량의 값싼 중국산 휠체어를 지원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사지마비로 인해 전동휠체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중증장애인들은 종일 앉아 지내며 자세 변환조차 할 수 없다”면서 “현재 지원되는 전동휠체어로는 욕창 위험과 과도한 피로에서 해방될 수 없고, 결국 사회활동도 유지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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