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자란다" 단지 쇼?…전북도의원 39명 중 23명 '까까머리' [이슈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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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예산 5000억 삭감 항의”
지난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전북도청 대회의실 밖. 전북도의원 20여 명이 ‘새만금을 살려내라’ ‘전북 홀대 규탄한다’라고 적힌 적힌 손팻말을 든 채 새만금 예산 복원을 촉구하는 침묵 시위를 했다. 의원 절반은 이른바 ‘까까머리’였다.
정부가 내년도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5000억원 이상 삭감하자 전북 정치권에선 한동안 사라졌던 ‘삭발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옹호론과 “사라져야 할 구시대 유물”이라는 반대론이 엇갈린다.
28일 전북도의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체 전북도의원 39명 중 23명(59%)이 머리를 깎았다. 삭발 투쟁은 지난달 5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정린·김만기 부의장 등 전북도의원 14명이 “정부가 새만금 사업 관련 예산 78%를 삭감한 건 잼버리 파행 책임을 전북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단체로 머리카락을 민 게 발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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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국립의전원 법률안 통과” 삭발
지난달 7일과 12일엔 각각 국회와 세종시 기획재정부 앞에서 코로나19에 걸린 김수흥 의원을 제외한 도내 민주당 국회의원 7명이 삭발 투쟁에 가세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인 이덕춘 변호사도 같은 달 12일 “‘새만금 예산 빼먹기’ 발언을 한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이 전북도민 명예를 훼손했다”며 전주지검에 고발장을 내며 머리를 밀었다.
지역 현안을 내세워 머리를 자른 사례도 있다. 남원시의회와 시민 200여 명이 지난 24일 국회를 찾아 장기간 표류하고 있는 남원 국립의학전문대학원 법률안 통과를 촉구한 날 남원시의회 전평기 의장과 남원애향본부 김경주 이사장 등은 “끝까지 노력하겠다”며 삭발했다.
국립의전원은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할 의사 양성을 목적으로 2018년 폐교한 옛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살려 남원에 짓기로 했으나, 의사협회 반대와 코로나19 여파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앞서 2011년엔 당시 김완주 전북지사와 장세환 민주당 의원 등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전북 이전을 촉구하며 삭발했지만, 본사는 경남 진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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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효과…존재감 과시용”
정치권에서 삭발은 단식 투쟁과 함께 야당이 정부·여당에 맞설 수 있는 최후 수단으로 꼽힌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시각적 효과’ 때문에 정치인이 결기와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활용해 왔다.
삭발 결과는 명암이 엇갈린다. 2010년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 등 충청권 의원 6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삭발했다. 국회의원 집단 삭발 이후 국회에서 수정안은 부결됐다. 반면 머리만 밀고 실리를 못 챙기기도 한다. 2013년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5명은 정부의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에 반발해 삭발했지만, 국민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결국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통진당은 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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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삭발은 쇼…머리는 자란다”
정치인 집단 삭발에 대해선 “시대 흐름과 맞지 않다”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자칫 국민에게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2019년 9월 10일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하자 당시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은 소셜미디어(SNS)에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의원직 사퇴, 삭발, 단식”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 이유에 대해선 “사퇴한 의원 없고 머리는 자라고 굶어 죽은 사람이 없다”고 적었다.
한편 김관영 전북지사는 “행정을 맡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며 아직 삭발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다만 전북도 안팎에선 “김 지사가 다음 달 7일 국회에서 전북 지역 102개 단체가 참여한 ‘새만금 국가사업 정상화를 위한 전북인 비상대책회의’가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에서 삭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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