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큰 전쟁 원한다"…유가만 노린게 아니다, 위험한 손익계산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습격한 지 3주가 지난 가운데 전쟁 초부터 제기된 '이란 배후설'이 확산되고 있다. 수년간 하마스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란이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란 의혹이다.
이란이 배후설 주장을 공식 부인하고 있음에도, 이란 개입설이 사그라들지 않는 데엔 이번 전쟁에서 이란이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게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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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사우디 수교 막아라…중재자 미국에 찬물 끼얹기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중재로 추진되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이란으로선 반길만한 일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은 다른 이슬람 국가와 이스라엘이 협력을 강화하면 자국이 (외교적·군사적으로) 고립된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이슬람 수니파인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 이란은 1400년 이상 종교적 갈등 관계였다. 최근엔 핵 문제로 대립했다. 이란이 핵 개발에 나서자 사우디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지지하는 한편 앙숙 이스라엘과도 협력할 뜻을 내비쳤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수교도 맺지 않고 국가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사우디-이스라엘 3각 안보 동맹을 추진하며 관계 정상화가 급물살을 탔다.
여기에 초조해진 이란이 수교를 막으려 이번 전쟁을 배후에서 도왔다는 게 매체의 분석이다. 수교를 저지하면 이란의 고립도 막고, 중재자인 미국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도 있다.
이란이 '아브라함 협정'의 무효화를 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중재로 성립된 이 협정은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모로코 등 아랍권 국가가 이스라엘과의 오랜 갈등을 뒤로하고 서명한 평화협정이다.
하마스 키워 대리전…러시아도 웃는다
매체는 이란의 최대 목표가 전쟁 자체라기보다 중동에 불안정성을 키우는 것이라고 봤다. 이를 통해 미국 주도의 '중동 데탕트'로 약해진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다는 거다. 중동 정세가 꼬일수록 하마스 등 무장단체를 지원하는 '큰 형님' 이란이 주목받기 때문이다.
이란은 하마스를 비롯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이라크 민병대,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지원 중이다.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으로 불리는 이들은 반(反)서구, 반(反) 이스라엘 세력이며, 이란의 '대리자'로 싸울 태세를 갖춘 조직이다.
런던 소재 국제전략연구소(IISS) 관계자는 "이란은 지역 정치가 취약하고 인력·무기를 쉽게 투입할 수 있고 외부인들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곳을 겨냥한다"고 말했다. 매체는 "서구 사회에 불확실성과 불안을 심으면 이란과 친밀한 국가인 러시아도 만족한다"고 봤다.
물론 이란이 늘 얻기만 하는 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의 '그림자 전쟁'은 미묘한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이 대리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번 전쟁 탓에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레바논은 관광 부흥에 대한 희망이 무너지면서 국내 여론이 악화했다. 친이란 인사인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소극적인 모습이다. 매체는 "'저항의 축'까지 동원한 결정은 장기적으로 이란이 고립과 독재로 향하는 신호"라고 짚었다.
원윳값 상승 시 산유국 이란 호재…바이든엔 악재
중동 불안은 유가를 올린다. 세계 원유매장량 4위 이란에는 경제적인 이익이 된다. 실제로 지난 7일 하마스의 새벽 공세 이후 국제 유가는 배럴당 5달러 이상 올랐다.
이번 전쟁이 5차 중동 전쟁이 되리란 우려가 나오자 국제유가가 향후 배럴당 250달러까지 갈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25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국제 유가가 120~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고, 이란이 하루에 석유 1700만 배럴이 운송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에 나서면 250달러까지 치솟으리라 전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인플레이션 억제를 원하는 바이든 정부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가가 급등하면 미국 유권자들의 민심이 이탈할 수 있어, 내년 11월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에 '악재'라는 얘기다.
WSJ "하마스, 기습전 이란서 특수훈련"
이란이 이번 전쟁에 개입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은 가운데, 외신에선 개입설을 주장하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하마스와 동맹세력인 이슬람지하드 등 500명의 대원이 이란에서 특수 전투훈련을 받았고, 해당 훈련은 이란혁명수비대(IRGC) 산하에서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쿠드스군'이 이끌었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고위 관리들과 이란 브리그 쿠드스군 사령관인 에스마일 카니 장군도 훈련을 참관했다고 전해졌다.
WSJ는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고위 관리를 인용해 "쿠드스군이 이번 공격을 계획하는 것을 도왔다"고 보도했다.
하마스의 기습에서 활용된 무기도 이란 개입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관측망과 첨단 감시 장비를 무력화하기 위한 드론을 활용했다. 일부는 패러글라이더와 오토바이도 활용했다. 이런 전술은 이란 특수부대가 흔히 쓰지만, 7일 기습 전에는 하마스가 사용한 적 없다.
미국 테네시 대학의 중동 전문가인 사이드 골카르는 WSJ에 "이란의 지원 없이 이런 작전을 수행하기 매우 어렵다"면서 "하마스는 그런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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