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지구 반대편에서

박상은 2023. 10. 28.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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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사회부 기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긴 여행을 마치고 이제 막 일상으로 돌아온 차였다. 황금연휴를 이용해 큰맘 먹고 유럽으로 떠났는데, 그 여운이 너무 짙어 눈앞에 뾰족한 첨탑이나 알프스 산맥 같은 것이 어룽어룽했다. 여행의 낭만에 취해 벌써 다음 여행지를 고민하던 내게 ‘납치’ ‘인질’ ‘학살’ 같은 단어는 너무나 이질적인 낱말이었다. 동시대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말 그대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번 휴가를 보낸 곳에서 비행기로 고작 서너 시간 떨어진 지역이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건 굳이 많은 기사를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배경처럼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중엔 이스라엘 사람도, 팔레스타인 사람도, 두 나라에 가족이나 친구를 둔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지구 위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그 속에 채워진 삶은 얼마나 다채로운지 여행 내내 곱씹으면서도 한 번도 ‘이런 세상’의 단면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동시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이들에게 ‘공감’하고 있는가? 공감의 사전적 의미는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이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며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지만, 그것을 나의 일처럼 공감하고 있는가는 조금 다른 문제였다.

러시아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청년들의 마음을 나는 온전히 알지 못한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거나 폭행당한 여성의 마음 역시 조심스레 상상해볼 뿐이다. 가자지구 공습으로 피투성이가 된 어린아이의 사진을 보며 가슴 아파 하다가도 막상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챙기는 데 급급해 감정을 끊어내기도 한다.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밀려드는 정보에는 물리적 거리도 국경도 없지만, 나의 공감이 닿는 영역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비단 국제뉴스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극단적으로 부딪히는 사회현상이나 강력범죄 같은 자극적인 정보들에 노출되다보면 나의 공감 영역이 더욱 좁고 작아짐을 느낀다. 공감 분야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이런 문제가 현대사회 시스템의 부작용이라고 분석한다. 10년 넘게 공감 과학을 다룬 미국 스탠퍼드대의 자밀 자키 교수는 이보다 더 공감을 잘 파괴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연결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졌지만, 오늘날 공감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는 극빙을 연구하는 기후학자와 비슷한 처지다. 우리는 해마다 공감과 극빙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 그 둘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자키 교수가 문제 원인으로 꼽은 것은 가족 규모의 축소, 부족주의, 정보의 범람, 온라인에 치우친 소통 등이다. 그는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책에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는 고난의 묘사는 우리에게 무력감을 안기고, 결국에는 무감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또 온라인 사교 활동이 오로지 텍스트와 이미지로 축소되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는 온라인에서 누구든 볼 수 있지만 대개 그 가능성을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쪽이 아니라 좁히는 쪽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소화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이야기와 정보 속에서 우리는 믿고 싶은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공감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공감도 근육처럼 연습을 통해 향상시킬수 있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뇌는 고정된 회로가 아니라 평생에 걸쳐 새로운 뉴런을 만들어낸다.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지능을 키우고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듯, 공감의 영역도 확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불안할수록 뉴스는 점점 회피하고 외면하는 매체가 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2022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10명 중 4명 정도(38%)가 ‘종종’ 또는 ‘때때로’ 뉴스를 피한다고 답했다. 2017년에 ‘그렇다’고 답한 29%보다 증가한 수치다. 자키 교수의 표현처럼 어쩌면 우리는 “증가하는 잔인함과 고립에 직면해 도덕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용기 내 공감을 ‘선택’할 수 있는 투쟁 말이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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