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양육비 나몰라라… 형사 법정 간 나쁜 아빠들

양한주 2023. 10. 2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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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부터 양육비미지급
형사 고소로 772명 제재 불구
전부 혹은 일부 지급 8.9% 그쳐


세 아이의 엄마 A씨(44)는 2017년 남편 B씨와 이혼한 뒤 식당 일을 하며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 법원은 B씨에게 아이 1명당 30만원씩 매달 9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책정했다. 하지만 B씨는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았고, A씨는 2019년 양육비 지급명령 소송에 나섰다.

첫 소송에서 A씨는 B씨의 급여 압류를 통해 일부 양육비를 받았다. 그러자 B씨는 회사를 그만뒀고, 직장과 급여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4년여간 이행명령 감치명령 신청, 운전면허 정지 신청 등 각종 법적 조치를 동원했지만, 현재까지 A씨가 받지 못한 양육비는 4100만원에 달한다. 그사이 첫째 아이는 성인이 돼 아르바이트로 가족 생계를 돕고 있다.

A씨는 양육비를 미지급한 B씨에 대한 법원 감치 결정이 나온 지 1년 만인 지난 1월 B씨를 형사 고소했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4단독 노민식 판사는 다음 달 8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B씨의 선고기일을 진행한다.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첫 정식 형사재판 선고다. A씨는 27일 “B씨는 법이 무섭지 않아 양육비를 주지 않고 버텨왔고 지금도 ‘법대로 하자’고 한다”며 “양육비를 받을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처벌뿐”이라고 말했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들의 형사재판이 최근 잇따라 열리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2021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양육비를 한 번도 받은 적 없다’는 답변은 72.1%나 됐다. 양육비 미지급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양육비이행법이 지난 2021년 7월 개정 시행됐지만, 상대방을 형사 고소하려면 수년간의 소송전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육비를 받지 못한 양육자들은 먼저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라’는 이행명령 신청을 가정법원에 할 수 있다. 법원의 이행명령 결정이 3회 이상 이행되지 않으면 미지급자를 최대 30일간 구치소 등에 감치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이후 양육비 이행법에 따라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 제재를 신청할 수 있다. 감치명령 결정을 받고도 1년 이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이 가능해진다.

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치명령 결정이 당사자에게 송달되지 않으면 제재 신청도, 형사 고소도 할 수 없다. 이도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은 이런 허점을 악용해 감치명령 효력이 유지되는 6개월간 위장전입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송달을 회피한다”며 “양육자들이 직접 거주지를 찾아내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하는 식의 ‘탐정 놀이’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감치명령 결정을 받더라도 형사 고소 절차 진행까지는 평균 4년이 걸린다는 게 양육비 소송을 진행해 온 이들의 설명이다.

운전면허 정지 등 제재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여가부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지난 8월까지 양육비 미지급자 중 운전면허 정지·출국금지·명단 공개 등 제재를 받은 사람은 772명이다. 하지만 이 중 양육비를 전부 혹은 일부라도 지급한 사람은 8.9%(69명)에 불과했다.

양육자들이 형사 고소를 하는 건 결국 강력한 처벌을 통해 양육비 지급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김은진(44)씨는 다음 달 20일 전남편의 양육비이행법 위반 혐의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현재까지 1억원에 가까운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전남편이 위장전입 등 편법으로 11년간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하며 양육비 지급을 피해왔다”며 “실형 받을 상황이 되면 어떻게든 지급할 거란 생각으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절한 마음”이라고 호소했다.

실제 ‘1호 형사 고소’ 사례였던 C씨의 경우 전남편이 기소를 앞두고 1억원 넘는 양육비를 한꺼번에 지급했다. C씨 남편은 지난 5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다만 법적 조치에 장시간이 걸리고, 양육비는 아이들이 자랄 때 정기적으로 받는 게 중요한 만큼 실제 이행률을 높이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줄리아 리노 뉴질랜드 변호사는 지난달 15일 세계한인법률가회(IAKL) 학술대회에서 “호주와 뉴질랜드는 국세청이 양육비 미지급자 재산을 조사해 직접 징수한다”며 “특히 페널티로 추가 금액을 징수, 양육비 집행 전담 조직 운영비로 사용해 재정 부담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하고 미지급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회수하는 ‘대지급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1대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2건 계류돼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양육비를 국가가 대신 지급하면 아동 빈곤을 예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도윤 부대표는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양육과 일관된 일상 유지를 위해 대지급제는 반드시 실행돼야 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육비 미지급 자체를 ‘아동학대’로 보는 인식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는 “현 제도에서 미지급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불이익은 형사 처벌”이라며 “양육비 미지급은 학대 범죄인 만큼 실형 선고로 강력히 처벌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혜원 한국여성변호사회 법제이사는 “처벌 사례가 많아지면 양육비 미지급이 아동학대죄를 구성할 수 있는지 등과 관련한 논의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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