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얼굴로 자유와 관습의 탈피를 좇는 바밍타이거
이들이 고수하는 장르는 ‘얼터너티브 K팝’. 힙합과 일렉트로닉, 디스코 등 모든 장르를 유연하게 넘나들기 위해 직접 내세운 장르이자 명칭이다. 인터넷 창에 얼터너티브 K팝을 검색하면 바밍타이거에 대한 게시물밖에 안 나온다. 11명의 멤버는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다같이 또는 각자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가 어떨 땐 3~5명 유닛 활동으로 뭉쳤다가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음악과 영상물은 자유롭고 순수하며 본능적이다. 어디로 튈지 모를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이키델릭한 소리. 생경한 단어나 문장의 가사. 나체에 가면을 쓴 채 정면을 응시하는 사나이, 피를 뒤집어쓰거나 눈알이 튀어나온 모습, 생고기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 등 동물적 감각에 의존한 것 같은 기괴한 뮤직비디오. 낯설지만 묘하게 중독성 있는 창작물이다. 내재된 반항심과 욕망을 슬며시 꺼내 보이고 싶게 만든다. 이밖에도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작업물을 만든다. 자체 해외 투어 프로그램과 기타 해외 경험을 담은 다큐멘터리 〈위대한 유산〉, 자체 제작하는 라이브 콘텐츠 시리즈 〈Tiger Express〉, 미술과 건축, 영화, 소설 등 예술 분야에서 아시아 현대 거장 작가들을 소개하는 애니메이션 콘텐츠 〈The G.O.A.T〉.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취향과 세계를 표현하는 이 크루는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사실 바밍타이거는 2022년 이전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2019년부터 자체 투어인 ‘The Tiny Tour’로 일본, 미국, 유럽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이후 2022년과 2023년에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 뮤직 페스티벌(이하 SXSW)에서 국내 아티스트 최초로 단독 쇼케이스를 열었다. 2023년에는 SXSW에서 동양인 최초로 퍼포먼스 상을 수상했다. 자발적으로 이뤄진 해외 투어에 관해 오메가사피엔이 이렇게 말했다. “월드 투어는 규모 있는 아티스트들이 꿈꾸는 무대잖아요. 보통 월드 투어에 가면 현장에 동선과 스타일링, 숙박을 관리해 주는 스태프들이 있죠. 하지만 우리에겐 없었어요. 산얀 형이 매니저이고 짐 옮기기와 입국 심사, 숙박, 스타일링 등을 직접 했죠. 그 모든 걸 진행한 산얀 형이 대단한 것 같아요. 배포가 크죠. 자체 월드 투어 경험이 없었다면 사이가 덜 돈독해졌을 거예요.” 해외 얼터너티브 음악시장을 향한 바밍타이거의 시그널이 통했는지 점차 큰 규모의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올해 7월에는 ‘후지 록 페스티벌’에 참여했으며 11월에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주최 하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Camp Flog Gnaw’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물론 국내에선 이미 규모 있는 페스티벌의 러브 콜을 꾸준히 받아왔다.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2022’에서는 에너제틱하고 파격적인 무대로 관중석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는 모시핏 현장이 펼쳐졌다. 투어나 무대 성과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과 매체로부터 눈도장을 받고 있는 것이다. 2023년 미국 〈롤링스톤〉 선정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뮤지션, 올해 초 영국의 유력 매거진 〈NME〉를 통해서도 2023년 가장 관심 가져야 할 아티스트 ‘NME 100’에 선정됐다. 이런 성과는 바밍타이거가 동시대적 정서를 관통하고 있다는 근거가 아닐는지. 11인의 행보는 이제 막 시동을 거는 수준일지도 모른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고자 10월 19일, 바밍타이거의 정수가 세상에 나온다. 14개 곡이 수록된 첫 정규 앨범 〈January Never Dies〉가 그것이다.
January Never Dies
“2년 전부터 바밍타이거 멤버 구성이 안정감을 가지면서 전체 멤버가 힘을 합쳐 만든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였고, 멤버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 컴필레이션이나 옴니버스가 아닌, 하나의 팀으로서 만들 수 있는 작품 형태에 대한 실험을 지속했죠. 고민 끝에 수립된 앨범의 대주제는 저항 정신과 하모니입니다.” 리더 산얀이 신중하게 말했다. 총 14개로 이뤄진 각 트랙의 흐름에 관해 질문하자 그는 “깨진 유리조각을 이어 붙인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그 유리조각이 서로 붙을 수 있었던 건 바밍타이거 역사상 처음 간 ‘송캠프’와 ‘출근제 도입’ 덕분이었다. “일부러 고립된 곳으로 가서 외부와 접촉을 끊고 작업해 보자는 의견이 수렴됐죠. 10분 동안 차로 달려야 편의점 하나 겨우 있는 양평 산속으로 갔어요. 그날 같이 이동하기로 한 인원 중 한 명이 운전하다 사고 나는 바람에 차를 못 쓰게 됐어요. 그분을 향한 헌정곡이 큰 테마가 됐죠. 그래서 몇몇 곡에 차에 대한 암시가 있어요.” 오메가사피엔이 말했다. 송캠프에서 만들어진 곡은 총 4개다. ‘Bodycoke’ ‘Sudden Attack’ ‘Moving Forward’ ‘Riot’. 4번 트랙 ‘Bodycoke’은 차 사고 해프닝에서 영감받아 만들어진 ‘운전’에 대한 곡. 7번 트랙 ‘Sudden Attack’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분쟁 당시 ‘전쟁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평화의 마음으로 쓴 곡이며, 12번 트랙 ‘Moving Forward’는 소금과 언싱커블이 ‘전진’에 대해 나눈 대화에서 만들어졌다. 10번 트랙 ‘Riot’은 송캠프에서 이수호와 머드 더 스튜던트가 만든 곡. 오메가사피엔, 머드 더 스튜던트, 소금의 가사를 얹었다.
꽤 많은 수록곡이 탄생할 수 있었던 계기인 출근제는 오메가사피엔의 아이디어라고. “송캠프에 가게 된 이유도 워크 플로가 불안정해 작업에 진전이 어려워서예요. 우리 마음가짐의 문제라기보다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은 그룹 특성 때문이었죠. 작업방식과 환경을 바꾸자는 의견을 냈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근무, 수요일은 휴일로 정했어요. 지각비도 있었죠. 1분 늦으면 만 원, 11분 늦으면 2만 원, 이런 식으로 10분 단위로 금액을 늘렸어요.” 엄격한 출근제 덕분에 송캠프에서 완성된 곡과 선공개곡 ‘섹시느낌’ ‘Trust Yourself’를 제외한 나머지 곡이 완성됐다. 바밍타이거는 지난해 9월 1일 ‘섹시느낌’을 필두로, 차례차례 싱글 앨범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 동기부여와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Trust Yourself’가, 4월에는 뜨거운 구애의 마음을 담은 사랑 노래 ‘SOS’가, 9월에는 마지막 선공개 트랙 ‘Kamehameha’가 공개됐다. 술에 취해 자신감이 넘치는 느낌을 드래곤볼의 대표 기술인 ‘카메하메하’에 비유한 곡으로, 장난기 넘치고 통통 튀는 동양적 소리가 듣고 있으면 취기가 아득하게 피어오른다. 이 곡은 지금까지 사이키델릭한 느낌과 달라 첫 정규 앨범이 얼마나 다채로운 트랙으로 구성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하나의 흥미로운 사실, RM에 버금가는 또 한 명의 놀라운 조력자가 숨어 있다. 주인공은 바로 체리장. 미술작가 류성실이 1인 미디어시대의 욕망과 불안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아바타다. 바밍타이거와 체리장의 인연은 2020년부터 시작됐다. 체리장이 선보이는 ‘대왕트래블’ 시리즈에서 파생된 음악 작업에 오메가사피엔과 머드 더 스튜던트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것. 제목은 ‘직진’이다. 체리장 특유의 날카롭고 힘 있는 목소리는 6번 트랙 ‘5:5 Dharma’에 담겼다. “이 곡을 제작할 때부터 이미 체리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곡 초반부에 흐르는 공습경보 내레이션이 체리장 목소리와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세기말적 감성을 자아내길 바랐고, 예상처럼 어울렸죠.” ‘5:5 Dharma’를 만든 bj원진이 말했다. 2년의 기간을 거쳐 서서히 두각을 드러낸 정규 앨범은 〈January Never Dies〉라는 이름으로 완성됐다.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은 다인원 그룹의 특성처럼, 앨범명에 대한 후보도 많아 고르기 어려웠다. 타이거 게임, 옐로우 피버, 문화훈장님, 아시안게임, 김치 엠파이어, 한 리버 랩소디, 너희가 K팝을 아느냐 등이 후보였다. 확정된 앨범명은 리더 산얀이 살던 집에서 유래했다. “바밍타이거 초창기 때 산얀 오빠 집에서 자주 모였어요. 거기서 합숙하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했죠. 어찌 보면 뿌리 같은 곳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빠 집 아래층에 있는 점집 ‘일월불사’를 영어로 바꿨어요. 사실 ‘1월은 죽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닐 거예요. 우리식으로 해석했어요.” 소금이 설명했다.
한편 소금은 ‘5:5 Dharma’를 꼽았다. “티저 영상에서 자동차가 비행기처럼 날아오르는 장면에 이 곡이 흘러나오는데 새삼 좋더라고요. 근데 저는 수록곡 전부 좋아요(웃음).” 언싱커블은 송캠프에서 만든 곡은 모두 좋다고 말했다. “송캠프에서 윷놀이 하며 싸웠던 기억, 소금과 오메가사피엔이 귀신의 기운을 느꼈던 기억. 일련의 사건들이 연상돼 애착이 가요.” 홍찬희는 ‘Pigeon and Plastic’을 꼽았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곡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 목소리가 들어가서 좋아합니다.” 이수호는 바밍타이거의 유쾌한 감성이 잘 담겼다며 ‘Scumbag’을 꼽았다. 작업 과정에서 11인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도 복잡했다. 누가 좋으면 누가 싫었으니. 〈January Never Dies〉는 집요하게 느껴질 만큼 반복적인 구성이 돋보이거나, 트랙 구성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앨범이기보다 통제 불가하다고 느껴질 만큼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다룬 구성과 흐름이 돋보인다.
11명의 고민과 방향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떤 방향을 찾았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갈 것인지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 그 과정에서 생긴 호흡과 충돌에서 오는 독창성은 그만큼 뚜렷한 가치가 있다. “바밍타이거의 애티튜드를 느껴주세요. 어떤 엉뚱한 실험이라도 그것을 내뱉고, 실제로 만들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잃고 싶지 않은 철학이자 목표입니다.” 산얀이 말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가 없으면 음악 만드는 걸 하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라는 이수호의 말, “제일 중요한 건 재미와 유대죠. 욕심 부리면 안 돼요. 특히 음악 작업을 할 때는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따를 필요도 없어요. 틀에 박히지 말고 우리가 재미있으면 그 자체로 이긴 거예요”라는 오메가사피엔의 말. 멤버들의 생각들을 모으면 결론은 두 단어로 좁혀진다. ‘자유’와 ‘탈피’. 동시대에 바밍타이거가 주장하는 음악이 통하는 이유는 어쩌면 점차 타인에게 보여지는 이미지와 경쟁에 집착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은 아닐는지. 잘 다듬어진 돌들이 사랑받는 이 땅에 뾰족뾰족 모가 난 채 말도 안 되는, 비정형화된 음악을 창작하는 바밍타이거는 신인류가 확실하다.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유쾌함, 엉뚱함으로 가득한 바밍타이거의 실험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예측 불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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