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숨 쉬어라"... 참사 1년, 엄마가 거리에서 하늘에 한 말
[조혜지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가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 이름 붙이고, 3개의 빌보드 등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뼈대로 한 ‘참사 현장’ 정비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동안 참가자들이 골목을 바라보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1년동안 국회 쫓아다니고 단식하고 노숙 농성도 하고... 차가운 장맛비에 삼보일배하고. 밖에서 보면 엄마들 그냥, 호소하러 다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진상규명을 외치며) 다니는 게 내 아이 숨 쉬게 하는 거라고.
내 안에 살아 있는 아이라는 거. 그러면 생명을 이어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 느낌으로 계속 다니는 거야. 운전하거나 밤이 되면 답답해서 밖에 나올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있어요. '아가야 숨 쉬어라... 아가야 숨 쉬어라'. 나한테는 이렇게 다니는 게 애기랑 같이 사는 거예요."
고 이남훈씨의 어머니 박영수씨가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 있다> 상영회를 마치고 나오며 말했다. 2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첫 특별시사회를 연 <별은 알고 있다>는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이 참사 이후 벌어진 현장들과 그 속에서 만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 다큐멘터리다. 박씨는 "1년 세월이 10년 세월처럼 느껴진다"면서 "하루마다 뭐 했나 생각이 들고 기억 없이 맹했는데 오늘 보니 1년동안 참이 많은 일을 했더라"고 말했다.
▲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태원참사 1주기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있다> 첫 특별시사회가 열리고 있다. |
ⓒ 조혜지 |
다큐는 유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경찰 특조위 수사, 국회 국정조사 등 미완에 그친 국가기관의 진상규명 과정을 함께 비췄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안전관리 책임자들의 얼굴과 해명이 이따금 등장했다. 그러나 구급일지에 기록된 구조 상황부터 사망 원인까지,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알 수 없는 가족의 마지막 순간은 고스란히 의혹으로 남았다.
한 희생자의 어머니는 "그 공간에 가 봤는데도 그때의 고통, 공포, 그 고독, 혼자 생을 마감하는 그 마지막 순간을 공감하지 못해 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라면서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모습을 (직접)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 희생자의 언니는 "어떤 걸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라면서 "몇시에 어디서 사망했는지 알려달라고 해도 그 종이 한 장만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게 너무 많다"고 했다. 객석에선 영상 속에서 고인이 된 가족들의 사연과 인터뷰가 이어질 때마다 흐느낌이 이어졌다.
"채림아, '내가 대통령 사과는 받아줄게' 했어요. 근데 그게 무엇보다도 더 힘든 느낌이에요. (고 송채림씨 아버지 송진영씨)"
"(아들 방문을) 닫아놓고 한 번도 못 열어봤어요. 문 닫으며 내가 약속했어. 엄마가 뭔가를 해야지만 열 수 있을 것 같은...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면 그때 활짝 열고, 깨끗이 청소도하고 아이 물건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고 이남훈씨 어머니 박영수씨)"
지난 4월 시민들의 국민청원으로 열흘 만에 특별법안 발의에 성공한 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후 지금까지, 다큐 속 유가족들은 내내 같은 목소리를 냈다. 1년을 지나며 일부 정치권과 특정 단체들의 혐오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가족들을 뭉치게 한 힘은 함께 나누는 위로와 "다음 세대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고 살도록" 하겠다는 공감대였다. 유가족들의 아픔과 진상규명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힘이 됐다.
"우리 엄마들한테 분향소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항아리에요. 만나서 서로 힘든 것 이야기하고. 잠 못잘 땐 왜 못자는지, 트라우마 치료하면서 약은 어떻게 먹고, 또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나누는 엄마들의 공간."
"밥도 못 먹고... 그랬는데 유가족들 만나서 밥이란 걸, 처음으로 한 공기를 비웠잖아. 맛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다 먹어야 한다고, 서로 챙겨주고. 그 말 한 마디가 너무나 위안이 되더라고."
▲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태원참사 1주기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있다> 첫 특별시사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영화 제작에 참여한 권오연 감독과 정가원 프로듀서,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고 최유진씨의 아버지 최정주씨가 소회를 전하고 있다(왼쪽부터). |
ⓒ 조혜지 |
이날 상영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태원참사특위 위원장인 남인순 의원과 이학영, 강민정 의원이 자리를 지켰다. 이들이 전한 메시지는 공통적으로 '반성'이었다. 남 의원은 "국가는 부재했다해도 정당이 제대로 짚어내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가족들을 너무 고생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늦긴했지만 특별법을 발의해 마음을 모아내면서 연내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다큐로 1년을 돌아본 박영수씨는 한 달 후인 12월을 이야기했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특별법안이 본회의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때다. 1주기를 맞아 시민들의 연대가 이어지는 만큼,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 못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상영장을 떠나며 박씨는 말했다.
"(다큐 속 인터뷰처럼) 아직도 (아들의 방문을) 못 열었어요. 12월에 (특별법이) 통과되면 사람들이 뭐하실 거예요, 물어봐요. 그럼 나는 (아들 방에서) 방문 닫아 놓고 1시간 동안 펑펑 울거라고. 문 꼭 닫아놓고, 동네 떠나가라 울고 나올 거라고 했어요. 그런 날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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