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선수 꿈꿨던 청년의 좌식배구 ‘강스파이크’, “감사하고 자랑스러워요” [여기는 항저우]

윤승재 2023. 10. 2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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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식배구 황대한. 항저우=윤승재 기자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자부심이 있죠.”

좌식배구 국가대표 황대한(스포츠등급 VS1·천안시청)은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배구 과정을 밟았던 ‘선출(선수출신)’이었다. 하지만 작은 키에 한계를 느꼈던 그는 대학교 때 배구를 접고 취직에 나섰다. 하지만 2013년, 회사에서 일을 하다 기계에 왼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을 통해 손을 붙였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장애를 입은 그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학교 선배가 찾아왔다. “너 배구 다시 해볼래?” 한 손을 쓸 수 없는 그에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선배가 추천한 종목은 입식이 아닌 좌식배구였다. 선배 박연재(천안시청) 역시 좌식배구에 몸담고 있던 선수. 그렇게 황대한은 다시 배구공을 잡았고, 학생 시절 레프트(아웃사이드 히터)에서 활약하며 강스파이크를 때려낸 감각을 그대로 살려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처음엔 장애가 부끄러웠고 (손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었다. 좌식배구를 시작했을 때도 ‘배구를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보단 그저 장애가 부끄러웠다”라고 고백한 그는 “하지만 좌식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점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장애를 입었지만 다시 배구공을 잡았다는 데 감사함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라며 활짝 웃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입식배구와 좌식배구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좌식배구만의 특징이라면 앉아서 서브와 토스, 리시브, 스파이크를 해야 하고, 몸을 날려야 하는 수비가 아닌 이상 엉덩이가 코트 위에서 떨어지면 실점한다는 것. 서브 블로킹과 일부 네트 터치도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는 입식배구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선출’ 황대한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들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좌식배구팀의 환경이었다. 32세의 황대한은 이번 장애인아시안게임(APG) 대표팀에서 두 번째로 어리다. 94년생 박진우(강원좌식배구단)가 유일한 20대이고, 30대도 두 명뿐이다. 평균 나이 45세. 세대교체가 절실하지만 새 얼굴 찾기도 버겁다. 전국의 좌식배구 실업팀은 천안시청 하나뿐으로, 좌식배구를 하고 싶은 사람도 미래 걱정에 다가가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이는 이번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결과로 드러났다. 한국 좌식대표팀은 27일 중국 항저우의 린핑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PG) 남자 좌식배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중국에 0-3(11-25, 9-25, 13-25)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평균 31세의 혈기왕성한 중국팀을 이겨낼 수 없었다. 실업팀이 1개뿐인 한국이 ‘아시아 3강(이란·카자흐스탄·중국)’ 중 하나로 손꼽히는 중국을 이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앞선 준결승전에서 ‘세계 1위’ 이란에 셧아웃 패배를 당한 한국은 중국전 패배와 함께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황대한은 “목표로 했던 동메달을 위해 선수들과 의지를 다졌지만 결과가 아쉽다”라면서 “우리의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좀 더 성장해야 할 것 같다”라며 돌아봤다. 황대한은 “우리는 국제대회 출전 기회 자체가 많이 없었다.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실력이 비슷한 일본은 국제대회가 있으면 출전을 다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 아쉽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좌식배구를 시작하는 선수들이 생길 거고, 국가대표에도 젊고 새로운 선수가 올 수 있다. 완전히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바뀌었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황대한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장애인들도 배구나 기타 스포츠를 통해 밖으로 나와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좌식배구는 하지 장애를 입은 사람이 많다. 밖으로 나오기 더 힘들고 (장애를) 더 숨기고 싶어 밖으로 못 나오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의 인식을 깨기 쉽지는 않지만, 스포츠를 통해 깨고 나와 함께 땀 흘렸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항저우=윤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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