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환호할 때…두 번의 ‘버블’ 예견하다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16)
‘비이성적 과열’의 저자는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다. 그는 ‘시장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라는 학계 정론에 반기를 들었다. 시장은 근본적으로 비이성적이며 버블 형성과 붕괴로 점철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에 낙관적인 전망이 가득할 때 홀로 증시 폭락을 경고하고는 했다. 특히 ‘비이성적 과열’ 책을 통해 2번의 증시 폭락을 예고하기도 했다. 2000년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을 처음 출간했을 때도 증시 버블을 경고했다. 출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IT 버블이 붕괴하면서 미국 증시가 급격히 하락했다. 2005년에 내놓은 개정 2판에서는 미국 주택 버블에 관한 우려를 나타내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측했다.
금융경제학에서 효율적 시장이란 새로운 정보가 물건(금융상품) 가격에 즉각적으로 정확하게 반영되는 시장을 의미한다. 효율적 시장이 생성되려면, 투자자의 합리성이 필요하다. 시장이 효율적이고 투자자들은 합리적이라는 가정 아래 주식 가격 상승은 곧 기업가치 성장을 의미한다. 개별 투자자들은 오류나 편향에 치우칠 수 있겠지만, 수많은 투자자들이 서로의 편향을 상쇄하며 시장 전체는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가격을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역사 속에서 경제 성장 속도보다 증시가 먼저 오르는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혹은 심지어 불경기에도 주식과 부동산이 끝없이 치솟아 버블을 형성했다 폭락하는 과정도 숱하게 목격해왔다.
버블은 형성과 붕괴 두 측면 모두에서 사회적 손실을 가져온다. 미래에 대한 낙관이 과도해 버블이 형성되면, 자본은 인프라와 교육을 비롯한 사회간접자본에 유입되지 못하고 기업 활동 같은 상업 활동에만 편중된다. 결국 사회의 근본적인 생산성은 점차 하락하고, 더 이상 낙관이 지속되지 못하면서 버블 붕괴와 함께 경기 침체가 따라온다.
뒤늦게 돌아보면, 당시 기업들 수익성에 비해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평가받는 사례가 많았다. 무엇이 시장을 이렇게 과열로 몰아갔을까? 쉴러에게 버블이란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인 견해가 마치 전염병처럼 사람들 사이에 급격히 확산되는 사회적 현상처럼 보였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버블’ 현상이 억제되도록 금융 시장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내놓고자 발간한 책이 바로 ‘비이성적 과열’이다.
‘비이성적 과열’은 1996년 당시 미국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처음 사용한 단어다. 쉴러의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단어를 낳은 1996년 증시 호황의 전과 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폴 볼커 연준 의장 후임자로 앨런 그린스펀을 지목했다. 그린스펀이 취임한 8월, 다우존스지수는 2722까지 상승하며 역사적 고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19일 월요일, 블랙먼데이라고 불리는 폭락장이 펼쳐졌다. 다우존스지수는 하루 만에 508포인트(약 22%) 하락하며 기록적인 침체를 경험했다.
1929년에 경험한 대공황을 통해 대응 방법을 익혔던 그린스펀은 즉시 금리를 인하하고 신용을 팽창시켰다. 1990년이 되자 금융 시장은 1987년에 기록한 고점을 회복했다. 1996년 중순에는 1987년에 기록했던 고점의 두 배 수준까지 상승했다. 증시 호황이 길게 지속되자, 자연스럽게 버블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1996년 12월 미 연준은 금융계 주요 석학들과 함께 시장 상황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다.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로버트 쉴러와 조셉 캠벨은 버블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하며, 현재 금융 시장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서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했다.
회의가 끝나고 3일 뒤, 그린스펀은 공개연설을 통해 “비이성적 과열이 주식 시장을 급격하게 끌어올리고 결국 붕괴됐을 때, 급격한 침체를 경험할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연준 의장이 공석에서 주식 시장 과열 양상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 발언 이후 미국, 영국, 홍콩 등은 증시가 하루 사이에 3~4%가량 하락했다.
그러나 시장 하락세도 잠시, 증시는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 1996년 말 6000대에 머무르던 다우존스지수는 2000년에는 1만1000을 기록했다. 연준은 예상치 못한 기록적인 수준의 증시 상승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4.75%였던 금리를 6.5%까지 끌어올렸다. 그때부터 주식 시장은 2년간 약세장이 펼쳐지며 약 40%가량 떨어졌다.
버블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관점을 제시하다
연준이 직접 나서서 막을 정도로 시장이 과열되던 시대, 낙관론과 버블이 위험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쉴러는 ‘비이성적 과열’을 출간했다.
책은 버블의 기원에 대한 시장구조적, 문화적, 심리적 요인을 분석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심리적 요인을 강조했다. 당시 닷컴 버블이 터지기 직전 시장 상황을 예언적으로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쉴러는 2000년대 닷컴 버블 현상 원인으로 투자자의 과도한 낙관과 1990년대 인터넷 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꼽았다. 그런데 1990년대 미국 호황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과거 몇몇 경제적 호황기와 유사했다. 이런 반복되는 경제적 현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이유는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한 데자뷰와 집단 심리 때문이다.
쉴러는 버블 현상은 심리적 요소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서술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주변 집단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집단의 낙관적 의견이 버블을 증폭시키며, 이 과정에서 미디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디어는 여론을 형성하고 한데 모으며 버블을 키운다. 버블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군중 심리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버블의 원인만큼 후폭풍도 경계했다. 설령 버블 붕괴가 실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라도, 그로 인한 사회적 파급 효과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버블이 터질 때 많은 사람들이 은퇴자금을 잃거나 빚에 시달리게 된다. 이는 극단적인 부의 재분배를 초래한다. 그래서 그는 보수적이고 합리적인 투자를 강조하며, 시장 급변을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위험을 분산시키는 투자 전략을 권고한다.
시장 상황의 급격한 반전을 불러올 수 있는 요소들을 미리 예측하기는 쉽지 않기에 개인들은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자산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가 개인 투자자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쉴러가 강하게 비판했던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했던 이들의 제안과 매우 닮아 있다. 주식 같은 고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다양한 자산에 골고루 나눠 투자하라는 것이다.
버블의 발생과 심화 그리고 붕괴에 대한 통찰력 있는 논의를 제공한 이 책은 양적 완화 정책이 끝나고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현재, 우리에게 정책·투자·경제적 관점에서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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