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에 꽂힌 尹, 안동 달려갔다…총리·부총리·장관들도 대동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보수 지지층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전날 박정희 전 대통령 제44기 추도식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윤 대통령은 27일엔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청사에서 열린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주재했다. 지난 26일 중동 순방에서 돌아온 뒤 첫 지방 행선지로 보수의 텃밭인 TK(대구·경북)을 택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오래전에 잡힌 일정”이라고 밝혔지만, 정치권에선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이후 첫 과제로 보수결집에 나선 것” "보수 결집 이후 중도층 공략이 이어질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최근 추진 중인 의대 정원과 관련한 소신을 재차 밝혔다. 윤 대통령은 “편중된 상태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기에 지역 균형 발전이 중요하다”며“지역에 기업이 들어오기 위한 핵심은 교육과 의료다. 정부는 교육의 다양성과 지역 필수 의료 확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교육 다양성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념 편향 교육은 획일화된 교육을 의미하고, 획일화는 또 반대로 이념화로 귀결이 된다”며 “진영의 좌우를 막론하고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다. 다양성과 개방성이 존중되는 교육을 해야만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자치조직권 확충 및 자치입법권 강화 ▶기회발전특구 등 대규모 지방 투자를 위한 인센티브 유도 방안 ▶지방소멸 위기 대응책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회의 마무리 발언에선 지방 기업의 인재난을 언급하며 “다양하고 우수한 교육을 지방에서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젊은 직장인들을 지방에 내려가게 하는 방안으로, 지방시대에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방시대가 되려면 통합이 돼야한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더 열심히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와 관련해 시도지사에게 “다음 달 말 개최지 최종 결정 시까지 각 시도의 역량을 모두 모아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날 행사는 대통령실이 공들인 흔적도 역력했다. 17개 시·도지사와 함께한 행사엔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이관섭 국정기획수석, 이진복 정무수석 등 정부 고위직이 대거 참석했다. 국정감사로 장관 참석이 어려운 부처들은 차관이 대신 자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 뒤 17개 시도지사와 만찬을 했다. 윤 대통령과 시도지사간 허심 탄회한 대화가 이어지며 만찬은 예정시간보다 90분가량 늦어졌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잼버리 논란 이후 예산 감축에 대한 우려를 전했고, 윤 대통령은 "호남과 전북 모두 잘 챙기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회의 전엔 안동 병산서원을 방문해 지역 유림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제가 공적으로 맡은 바 소임을,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그 소임을 다 하겠다는 말씀을 유림 어르신들에게 올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9월에도 안동 유림을 만나 “선비의 기개와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신으로 무너진 법치와 공정을 반드시 바로 세우겠다”고 밝혔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초심을 되돌아보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돌파구로 ‘박정희 모델’을 심도 깊게 살펴보는 중이라고 한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보관하고 있던 박 전 대통령 시절의 ‘수출진흥회의’ 자료도 별도로 요청해 자세히 살펴봤을 정도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매월 수출진흥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한국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했고, 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을 아시아 중공업의 메카로 키워냈다.
참모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중동 순방 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보릿고개도 넘기기 어려운 나라에서 맨주먹으로 외국자금을 끌어와 조선업을 시작해 원전 추진을 결정했고 나라를 일으켰다”며 “대통령직을 수행해보니 국민을 먹여살리는 일이 중요한데, 10여년 만에 국가의 산업기반을 만든 박 전 대통령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동 순방 기간 중에는 “낮고 또 낮은 곳으로 찾아가 국민들을 만날 것”이라는 입장도 수차례 밝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전날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둘이 묘역을 추모하러 가는 길에도 “대통령으로 일해보니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었는지 절실히 느꼈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먹고사는 걸 쌓아주셨다”는 감사함을 표했다. 추도사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루어내신 바로 이 산업화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며 “지금 세계적인 복합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박 대통령의 정신과 위업을 다시 새기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수출전략회의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은 16년 동안 수출전략회의를 180회 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했다. 민간 기업까지 장관들 전부 모여서 했다”고 박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이 올해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언급한 횟수는 10번이 넘는다고 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오랜 갈등으로 점철되었다”며 “윤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참석한 것은 두 세력의 통합을 의미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윤 대통령의 행보가 단순히 ‘보수 결집’을 넘어 ‘국민 통합’의 의미도 있다는 취지다.
27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24~26일 성인 1003명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전주보다 3%포인트 상승한 33%를 기록했다. 부정 평가는 58%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직무수행 긍정 평가의 이유로 외교(44%)가, 부정 평가에선 경제와 민생(23%)이 각각 1위였다. 지난주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섰던 TK의 경우, 긍정평가가 4% 상승한 49%를 기록하며 부정평가(43%)를 웃돌았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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