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내건 인요한 혁신위…1호 안건은 "이준석·홍준표 사면"
변화, 통합, 희생, 그리고 놀라운 미래. 27일 오후 첫 회의를 열고 공식 출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내건 ‘혁신 철학’이다. 이날 혁신위 회의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3층 회의실 배경에도 이같은 문구가 내걸렸다. 회의 시작 시각인 오후 2시 30분, 회의장 문이 열리자 인요한 위원장은 지체 장애가 있는 이소희 혁신위원의 휠체어를 밀며 이 문구 배경 앞으로 들어섰다. 그는 “당 혁신을 위한 좋은 기회가 왔다. 얼마나 이 기회가 소중하고 중요한지 저는 잘 느끼고 있다”며 “국민의 눈높이로 내려오겠다. 혁신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확실히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혁신위는 혁신 철학 테마 중 먼저 ‘통합’에 방점을 찍었다. 1호 안건으로 ‘당내 대사면’을 논의키로 했다. 오신환 전 의원이 제안했고, 다수 혁신위원이 동의했다고 한다. 대사면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내려진 징계를 풀겠다는 건데, 논의 대상은 당원권 1년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해 홍준표 대구시장(당원권 정지 10개월), 김재원 최고위원(당원권 정지 1년) 등이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이른바 ‘양두구육’ 발언 및 성 상납 의혹과 관련한 증거인멸 시도 의혹, 홍 시장은 ‘수해 골프’ 논란, 김 최고위원은 전광훈 우파 천하통일 발언과 4.3 막말 논란 등으로 각각 징계를 받았다.
이 전 대표의 징계 해제 시점은 내년 1월, 김 최고위원은 내년 5월까지로 혁신위의 사면 건의를 당 최고위가 받아들이면 두 사람 모두 내년 4ㆍ10 총선 출마를 위한 당 공천을 신청할 수 있다. 이날 혁신위 대변인에 선임된 김경진 전 의원은 브리핑에서 “국민 통합, 야당과 소통ㆍ통합, 당내 화합과 통합, 이런 부분을 우리가 주요 안건으로 삼아야 한다는데 혁신위가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당 핵심관계자는 “혁신위 논의사항을 전해 들은 김기현 대표도 ‘시의적절한 안건이다. 정리되면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 잘 통과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다만 대사면에 대해 홍 시장과 이 전 대표가 반발하면서 또 다른 당내 갈등이 유발될 조짐도 보인다. 홍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사면은 바라지 않는다. 장난도 아니고 그런 짓은 하지 말라”며 “총선 후 바뀐 정치지형과 새롭게 정치 시작하면 된다. 너희끼리 총선 잘해라”고 반발했다.
이 전 대표도 혁신위의 관련 발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있었던 무리한 일들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반성하도록 하는 게 혁신위의 일”이라며 “우격다짐으로 아량이라도 베풀듯이 이런 식의 접근을 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혁신위의 생각에 반대한다. 재론치 않았으면 좋겠다”며 “권력의 횡포를 지적하는 좀 더 근본적인 것을 하라”고 덧붙였다.
당 일각에선 혁신위의 대사면 논의를 두고 “‘유승민ㆍ이준석 신당’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사전 명분 쌓기용 논의”란 의심도 나온다. 실제로 정치권에선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내년 총선을 위해 국민의힘 외부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최근 탈당한 ‘이준석계’ 신인규 전 국민의힘 부대변인이 다음 달 1일 창당발기인 대회를 여는 것도 함께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인 위원장은 이날 SBS 인터뷰를 통해 “이 전 대표가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마음을 녹이는 데 많이 노력할 것”이라며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도) 다 같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극우에 가까운 각종 행보로 징계를 받은 김 최고위원이 사면 논의 대상에 들어간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극우적 언행으로 징계를 받은 김 최고위원의 사면은 당내 화합이란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했다.
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혁신위 내부에서도 이 전 대표와 김 최고위원 등의 사면 논의에 대해 “잘못된 언행으로 징계했는데 국민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 “또 다른 당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등의 반대 의견이 일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 위원장이 “우리가 당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한다”며 “미래 지향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통합이 중요한 것 아니냐”며 대사면 논의에 힘을 실으면서 안건 1호로 확정했다.
통합을 내건 혁신위의 발은 외부로도 향하고 있다. 인 위원장은 일부 혁신위원과 함께 오는 29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한다. 인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고 다시는 이 땅에서 일어나야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며 “그래서 중요성을 통감하고 있고, 또 추모식에 가는 건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인 위원장이 여권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 당정관계의 ‘수직적→수평적’ 변화를 예고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날 추모대회엔 유의동 정책위의장과 이만희 사무총장 등 일부 국민의힘 지도부도 참석할 계획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시민추모대회가 야당의 정치집회로 변질했다”며 윤 대통령의 불참 사실을 알렸다.
인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도 남겼다. 그는 이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윤 대통령이 외국 수반을 100명 가까이 만나며 한 일이나, 또 정책은 나무랄 게 없다”면서도 “정치인이 아니라 검찰 출신이라서 그런지, 방법론에서 좀 세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간 만남에 대해서도 "생각은 달라도 만나는 것이…(맞다)"고 했다. 영남 출신 인사들의 수도권 출마 문제에 대해선 "스타들은 서울로 와야 한다. 험지에 와서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인 위원장은 30일 혁신위 첫 외부일정으로 광주 5ㆍ18 국립묘지를 참배하겠다고 했다. 그는 연세대 재학 중이던 20대 시절 광주 5ㆍ18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시민군의 영어 통역을 맡았다.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40주기 추도식을 찾은 그는 추후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도 예방할 계획이다. 모두 좌우를 아우르는 통합 행보다.
이날 혁신위는 ▶서민ㆍ소상공인의 경제적 어려움 해소 ▶혁신위의 출범 배경이 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대한 반성 ▶연구ㆍ개발(R&D) 예산 문제 등도 안건으로 다룰지 논의했다고 한다. 또 이 전 대표 시절 ‘최재형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 가운데 수용할 만한 내용을 추려 이번 혁신위의 과제로 반영할 계획이다.
김효성·김다영·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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