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지연 보험금' 백기 든 현대해상…이젠 정부 차례다 [기자수첩]
강훈식 의원 "치료인력 자격화 방안 마련"
정부 나서 제도 개선해야 할 때
[한국경제TV 장슬기 기자]
"그 아이들이 발달지연을 갖고 싶어서 가졌겠습니까. 본인들이 선택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켜보고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 (27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中 강훈식 의원 발언)
발달지연 아동들의 치료보험금 미지급으로 논란이 됐던 현대해상이 백기를 들었다. 현대해상은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치료비 제도가 마련될 때까지 실손보험금 청구건에 대해 우선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험금 지급 기준을 자의적으로 바꿔 지원이 필요한 발달지연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가입자들의 비난에 따른 조치다. (관련기사 : 병원·보험사 밥그릇 싸움이 발달지연 아이를 죽인다 [기자수첩], 발달지연 어린이보험 논란에…현대해상 대표 국감 소환)
이에 따라 27일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예정돼 있던 이성재 현대해상 대표의 증인 출석은 철회됐다. 당초 이 대표를 증인으로 요청했던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실은 "전날 현대해상과의 좌담회에서 발달지연 아동 치료 관련 제도가 안착될 때까지 치료사 자격과 상관없는 우선 지급 방안 약속을 이끌어냈다"며 "국회에서도 발달재활서비스 제공인력 국가자격화 방안을 마련할테니 그때까지 보험은 본연의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이 대표의 증인 신청이 철회된 직후 현대해상은 또다시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였다. 강훈식 의원실에서 밝힌 내용과 달리 "민간자격자 치료 최초 청구에 대해선 보험금을 우선 지급하면서, 정상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치료사가 있는 병원으로 안내를 할 예정"이라는 현대해상의 공식입장이 한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현대해상 어린이보험 계약자들 사이에선 "'우선 지급'이란 표현은 당장 국정감사 증인 철회를 위해 사용한 꼼수"라며 "증인이 철회된 후 최초 1회 건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말 바꾸기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현대해상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초 1회만 지급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기존 청구된 건에 대해 우선 지급하되 이후 청구된 건에 대해서도 예컨데 브로커를 통한 센터 치료, 이비인후과와 같은 연관성 없는 곳을 통한 발달치료 등을 제외하고는 정말 필요한 아이들에게 정당하게 이뤄진 치료인 지 심사해 보험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앞으로 현대해상이 이날 약속대로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할 지 감독에 대한 과제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몫으로 남았다.
이처럼 국회가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발달지연 아동들에 대한 치료비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결국 명확한 기준과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해상 측이 부지급 사유로 언급한 '브로커를 통한 치료'에 대한 기준과 감독체계 역시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계약자들에겐 모호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민간치료사에 대한 치료행위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보건당국의 명확한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분쟁이기에, 결국 피해는 사각지대에 놓인 발달지연 아동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보험금 지급 기준과 별도로 보험사의 발달지연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의료자문 행위도 논란이 되고 있으나, 이 부분 역시 복지부 소관이라는 이유로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발달지연 치료를 받는 아동들이 장애진단을 받으면 보험사는 더 이상 관련 치료에 대한 실손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보험금 청구가 빈번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보험사의 의료자문 실시는 '보험금 지급을 중단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발달지연 아동들에 대한 문제는 모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 하나하나 구해야 할 차례다. 아이를 낳는 가정에 몇 푼 쥐어준다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태어난 아이마저 품지 못 하는 국가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가장 취약하고 아픈 부분부터 개선해 나가야 희망이 있다. 환경 변화로 인해 점점 증가하고 있는 발달지연 아동들이 치료를 통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이슈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보다 앞서 진행된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진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내가 만약 양육자라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며 "지금까지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복지체계가 없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행위 기준상 건강보험으로 안 되는 것이라면 별도로 정부 예산으로 지원할 수 없는 지 검토해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발달지연 아동들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 이순간도 최선을 다해 성장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보여주기식 탁상행정과 소관부처 미루기는 이 골든타임을 썩힌다. 정부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야 하는 이유다.
장슬기기자 jsk9831@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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