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담배 시장을 통째로 뒤바꿨던 '쥴'의 흥망성쇠

김형욱 2023. 10. 2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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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빅 베이프: 쥴의 성공과 몰락>

[김형욱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빅 베이프> 포스터.
ⓒ 넷플릭스
스탠퍼드 대학교는 세계 최고의 연구 기관 중 하나로 실리콘밸리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스탠퍼드와 실리콘밸리가 만들어낸 유명 기업은 셀 수 없이 많은데 구글, 유튜브, 야후, 휴렛 팩커드, 테슬라, 나이키, 엔비디아, 링크드인 등이 있다. 챗GPT 열풍을 이끈 오픈AI의 공동 설립자 샘 올트먼과 일론 머스크는 둘 다 스탠퍼드를 중퇴했다.

여기 스탠퍼드 졸업생으로 스타트업을 만들어 소위 '대박'을 친 이들이 있다. 제임스 몬시스와 애덤 보언이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포함한 미국의 3,500만여 명과 전 세계 10억여 명 흡연자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신념으로 '전자담배'를 만들고자 했다. 대학원생 시절 논문을 실현시키기로 했다. 제임스 몬시스가 제품 디자인을 책임졌고 아담 보언이 제품 기술을 책임졌다.

2010년 첫 제품 '플룸'을 시장에 내놓는다. 나름대로 마케팅에 성공하며 크게 날아오를 것 같았지만 심각한 기기 결함들이 발견되며 빠르게 사장된다. 제임스와 아담은 후속작을 준비한다. 그때 JTI(재팬 타바코 인터내셔널)이 1천만 달러를 투자해 숨통이 트인다. 신념과 정반대로 거대 담배 회사의 투자를 받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인 사명을 위해 받아들인다.

덕분에 '팩스'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살담배를 기화하기 위한 기기였지만 뜻하지 않게 대마초 사용자들에게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든든한 돈줄이 되었지만 양지가 아닌 음지였을 뿐이었다. 이사회에서 바라는 건 담배 시장을 궁극적으로 바꿀 압도적인 우위의 인기였다. 제임스와 아담은 다시없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놓기로 한다. 그렇게 2015년 '쥴'이 탄생한다.

담배 시장을 뒤흔들 만한 쥴의 인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빅 베이프: 쥴의 성공과 몰락>은 동명의 저서를 원작으로 부제 그대로 쥴의 성공과 몰락까지를 담았다. 참고로 제목의 '베이프'는 전자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이르는 영어 신조어다. 2015년에 세상에 나온 쥴은 'Simple is best'를 실현시킨 듯한 디자인으로 출시되자마자 '전자담배계의 아이폰'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잘 나온 제품을 잘 팔고자 대대적인 마케팅을 시작한다. 그 일환으로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끔 광고 전략을 수립했다. 유명 연예인이 아닌 무명의 모델을 기용했다. 동시에 젊은 인플루언서들에게 대거 무료로 증정하며 SNS 홍보를 실시했다. 그야말로 정석적인 마케팅 전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쥴의 구성원들은 사명을 잘 알고 있었다. 10억 명에 이르는 담배 사용자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발암 물질을 거의 내포하지 않고 니코틴만으로 이뤄진 전자담배를 내놓고자 하는 마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광고는 수십 년 전 거대 담배 회사가 내놓은 광고와 다를 바 없었다. 쥴이 삶의 양식이 된 것처럼,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것처럼.

덕분에 쥴은 시장에 나온 지 1년여 만에 선풍적인 인기, 즉 담배 시장을 뒤흔들 만한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디자인이면 디자인, 맛이면 맛, 편의성과 간편성까지 갖춘 완벽한 전자담배였다. 궁극적으로 니코틴 함량이 엄청났다. 한 번 시작하면 누구도 쉽게 그만두지 못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팔리고 또 유지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쥴의 몰락

쥴은 전자담배 시장을 잠식해 갔다. 나아가 그에 맞춰 전통의 담배 시장, 즉 궐련 담배 시장은 하락해 갔다. 쥴이 담배 시장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버린 것이었다. 그들의 내세운 사명을 달성해 가고 있었다. 10억 명 담배 사용자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그러나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던 암초가 튀어나왔다. 바로 10대였다. 쥴이 어른뿐만 아니라 10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쥴은 곧바로 대응했다. 10대가 아닌 어른들만을 위한 제품이라고 광고했고 판매 과정에서 신분증이 있는 어른만 구입할 수 있게 체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하지만 10대 중독자를 둔 부모님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통적인 담배계 관계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청소년의 전자담배 사용률 폭증으로 FDA의 철퇴가 내려질 것이었다. 쥴은 점점 더 수세로 몰렸다.

그때 쥴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2018년 별안간 알트리아 그룹이 쥴의 지분 35%를 10조 원이 훌쩍 넘는 돈으로 사들인 것이다. 알트리아는 말보로 등으로 유명한 필립 모리스를 자회사로 둔 세계 최대 담배 회사다.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 거대 담배 회사를 무찌르고자 했으나 오히려 먹히고 만 꼴이었으니 말이다. 이후 오래지 않아 CEO 케빈 반즈가 물러나고 제임스 몬시스와 애덤 보언도 회사에서 나온다.

이제 쥴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FDA의 철퇴가 언제 어떤 식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고, 알트리아는 큰 손해를 보고 손을 털어 버렸다. 자생할 환경도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홀로 남겨진 상황이다. 작품에는 쥴의 이상과 현실, 성공과 몰락을 두고 수많은 사람이 나와 설왕설래한다. 쥴은 어른 담배 사용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갖추고 앞으로 나아갔지만, 너무나도 급격했고 안일했고 운이 좋지 않았다.

쥴 덕분에 어른 담배 사용자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건강 문제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었던 반면, 쥴 때문에 니코틴에 중독된 10대 사용자들이 세상을 덮다시피 했다. 안타깝다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수 있는 쥴의 몰락이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 몸에 들어갔다 나오는 제품을 만들 때는 사전에 모든 걸 염두에 둬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쥴의 몰락은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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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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