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통제 잘 되는 한국에서 일어난 '예견된' 사고
[최설화 기자]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포스터 |
ⓒ 파라마운티+ |
미국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크러시>(CRUSH)는 지난 17일(현지 시각)에 공개했다. 크러시는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남긴 영상과 증언으로 만들어졌다.
이태원은 코로나19 감염의 발생지가 되면서 대중에게 부정적인 공간이 됐다. 하지만 이태원은 한국에서 가장 이국적인 곳이다.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외국인, 동성애자 등 소외된 공동체에겐 집과 같은 곳이다. 이태원은 누군가에겐 성실하게만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구멍이 되어준다.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 파라마운티플러스 |
아라아나 이바라는 멕시코에서 온 한국 유학생이다. 그와 룸메이트 앤은 한국에서 스티븐을 만났다. 친구는 그의 친구가 되었고 그의 친구가 친구가 되었다. 사라는 고등학생 때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자연스레 아시아 음식을 좋아하게 되면서 한국으로 유학 오게 됐다.
아리아나는 룸메이트인 앤에게 이태원 핼러윈 파티에 가자고 주말 내내 부탁했다. 10월 29일 아리아나와 비앙카, 사라, 티아 그리고 앤은 남산타워에서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이태원을 가기로 했다.
남산타워에서 이태원으로 이동. 지하철 안. 문 앞까지 꽉 차있었다. 이태원역 도착. 지하철 문이 열렸다. 지하철역 안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카오스였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아리아나는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앤의 팔짱을 꼈다.
역을 빠져나가는데 10~15분 걸렸다. "우리 가야해, 있어야 해(should we go? should we stay?)" 그들은 고민했다.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역을 빠져나가는데도 사람 머리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하철 밖은 더 많았다.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 파라마운티플러스 |
the alley(골목) 아리아나 일행(아리아나, 앤, 스티븐, 비앙카, 사라, 티아)은 많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코스튬만 잠깐 구경하고 바(BAR)에 가기로 했다. 사라는 골목을 올라가면서 비디오를 찍었다. 사라가 찍은 영상엔 경찰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가깝지도 멀지 않은 곳에 경찰이 간간히 있었다.
사라가 찍은 비디오에 남자 목소리가 들였다.
"PUSH(밀어)." 여자들은 말했다. "DONT PUSH(밀지 마요)."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21시 7분. 112에 전화를 걸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일방통행할 수 있게 통제 좀 부탁드릴게요."
이태원에 자주 왔던 미군들은 "원래 붐비는 곳이니깐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사람들 얼굴에서 공포가 보였다. 다큐 속 살아남은 자들이 남긴 영상엔 비명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계속 깔리고 있었다.
21시 51분. "경찰분들이 와서 인원통제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 파라마운티플러스 |
112 신고 전화 내용들 "사람들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이게 지금 통제가 안돼요. 여기 큰일 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것 같아요. 아수라장이에요"
"압사될 것 같아요. 여기 난리 날 것 같아요. 이태원 뒷길이요!"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가자고. 하지만 그 인파는 제자리 파도만 되었다. 뭔가라도 잡고 버티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밀렸고, 깔렸다. 살려달라는 소리와 울음 소리가 가득했다.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기절했다. 구조대가 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오지 않았다. 구하러는 오는 걸까.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 파라마운티플러스 |
22시 44분. 소방서 대응발령이 시작됐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의사 차명일씨는 22시 44분에 출동 요청을 받았다. 이 시간은 의미가 있다. 21시에 112 전화를 받고도 출동 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최한조 재난의료팀장은 사진 한 장을 보며 이야기 한다. 일반인들이 심폐소생술 하는 사진. 그는 사진을 보고 직감했다. 구급대원이 아닌 일반인이 심폐소생을 하고 있다는 것은 현장을 통제할 사람이 없다는 뜻임을.
119 현장 도착, 골목 안 상황 파악한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리고 포기할 사람은 포기해야 해."
사람들은 폴리스라인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구조대는 도착해 사람들 구조하려는데 군중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구조대에 이것 또한 혼돈 그 자체였다.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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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wd(군중) 사람들이 깔리자 사람들을 구하던 붉은 악마 머리띠를 한 남성, 골목 안 상점에서 사람들을 꺼내준 미군들, 사람들이 숨을 못 쉬고 있다는 걸 보고 숨 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 친구들을 잃고 길에 주저앉아 우는 사람을 달래준 사람 그리고 이태원 골목 상점 주인이자 참사 당시 사람들을 구하고 숨 쉴 수 있도록 물을 뿌린 남인석씨
11시 50분 차명일씨는 "상황실이 생긴 이후 세 개 팀이 한꺼번에 모인 적이 없는데, 14개 팀이 모이면서 상황을 예상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이는 이태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통제나 처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했다고 말해준다.
구조대원이 부족하니 일반인들은 사상자를 꺼내기 시작했다. 골목 주점 안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일반인들은 사상자들을 싣기 위해 직접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아직도 골목 위, 아래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온통 젊은 사람들이었다.
▲ ABC News, More than 150 killed in Seoul crowd crush 유튜브 캡쳐화면 |
ⓒ ABC News |
최소 59명이라는 사상자는 100.105. 142…158명이 죽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죽었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59명.
이태원 참사는 외국인이 보기에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홍주환 뉴스타파 탐사보도 기자는 "테러도 아니고 총기 난사도 아닌데, 한 나라 수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은 시위 하나에도 도로 통제가 잘 되는 나라다. 이건 비극적인 사고인가. 아님 예견된 사고인가.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 파라마운티플러스 |
대한민국 국회, 용혜인(국회의원)은 박규석 112 종합상황실장을 청문했다. 용 의원은 경찰이 이 참사에 핵심축이라고 말했다. 홍주환 기자는 "용산경찰서 차원에서 수일 전 이태원에 십만 명이 모일 거라는 예측 보고서를 보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아예 모르는 것과 알고도 안 한 것은 차이가 있다. 정부는 알고도 안 한 것이다.
코로나19 후 첫 핼러윈 축제이기에 많은 사람이 모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상부에 보고했다. 위에선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고 3일 후 해당 보고서는 삭제됐다. 정보계장 밑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같은 날 은폐에 가담했다는 수사를 받고 있던 중 서울시 안전과에 근무하던 공무원도 목숨을 끊었다. 이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더 강하게 말했다면 위에서 무시한 보고서를 더 꼼꼼히 검토했다면 159명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 파라마운티플러스 |
박희영 당시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라고 말했다. 압사우려가 있음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소방인력이 배치된다고 해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조사가 재개되고 나니 사건의 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고위 공직자들은 여전히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법적 책임이 없는데 어떻게 책임을 묻느냐는 것이 고위 공직자들의 입장이다.
우리는 아직도 답을 듣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애도 기간에도 유통 기한을 뒀다. "책임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묻자."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유가족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상대로 2차 가해를 했다. 놀러 갔다가 죽었다며. "공부할 시간에, 일할 시간에 논다는 게 죽어도 마땅하다는 건가요?", "이태원 참사는 생각 없는 젊은애들이 놀다가 죽은 사건일까요?"
반복됐다 2014년 4월 16일. 그때도 수많은 학생들이 죽었다. 세월호, 선박 침몰로 배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죽었다. 대피가 지연되면서 304명의 목숨을 바다에 남겨뒀다. 학생들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중이었다. 놀러 가다 죽었다. 이것도 마땅하다 부를 것인가.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캡처 화면 |
ⓒ 파라마운티플러스 |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캡처 화면 |
ⓒ 파라마운티플러스 |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초롱씨는 국정조사특별위에 나섰다. 그는 직업이 작가이기도 했고, 그 당시를 기록해 살아남은 기억과 아픔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이태원 참사는 군중 밀집 관리의 실패입니다 "고 말했다. 초롱씨 옆 남인석씨는 살리지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있었다. 유가족들은 당시까지도 누구에게 사과받지 못했다. 남 사장은 살리지 못한 자책에 유족에게 사과했다.
이태원 골목 안, 참사 다음날 남인석씨는 159명을 위한 제사상을 차려줬다. 한국인의 도리다. 하지만 경찰은 다독이며 그를 막았다. 그를 막은 경찰의 수는 참사 당일 골목을 통제하는 경찰보다 많았다. 참사 당일엔 없었으니깐.
▲ 파라마운티+ 다큐멘터리 '이태원 크러시(CRUSH)' 메인 예고편 캡처 화면 |
ⓒ 파라마운티플러스 |
추모 공간에 있는 사진들, 꽃, 추모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힘들었다. 친구들의 이름조차 말하기 어려웠다. 정부가 책임 소재를 다투고 있을 때 유가족들은 방치됐다.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증거를 숨기고 자신의 죄를 지웠다.
시간이 1년 흘렀다.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우린 2번을 겪었다. 예방하면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약속한다. 'prevent something happening again'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이태원 참사는 예방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한국 정부와 경찰 및 소방 고위 관계자는 이 다큐에 인터뷰를 응하지 않았다. 엔딩크레디트엔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갔다. 159명의 이름을 기억해 주길. 헛된 희생이 다신 발생하지 않길.
그리고 오늘은 사과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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