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
[이지완 기자]
▲ 통곡의 벽으로 가는 길 예루살렘 성벽 통곡의 벽으로 가는 길의 전경. |
ⓒ 이지완 |
올해 1월에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성경의 땅, 이스라엘. 나 역시 성경에 관심이 많아 평소에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비싼 항공료로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작년 12월의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업체 사장님이 큰 계약을 앞두고 생산 공장에 직접 가보고 싶다고 했고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때가 찼다!
이스라엘 출장은 뭔가 좀 특별하게 다가왔다. 코로나로 그동안 못 나갔던 해외를 오랜만에 나가는 것도 좋았지만, 많은 사람이 성지순례로 찾는 땅이었기에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업체 사장님을 모시고 다니는 일은 좀 수고스러웠지만, 남들은 성지순례 간다고 비싼 돈 쓰고 휴가까지 쓰는데, 난 등 떠밀려 월급 받으며 그 땅을 밟게 되는 것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신의 선물과 축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12시간을 날아서 이스라엘 땅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는 내게 허락된 특별한 찰나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매 순간 깨어 있고자 했다.
▲ 예루살렘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 전경 예루살렘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 군복을 입은 유대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
ⓒ 이지완 |
예루살렘 성전은 생각보다 크고 넓어서 둘러보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세계의 3대 종교 모두가 신을 붙들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거룩한 장소이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을 기도하며 통곡의 벽에, 바로 그 옆에서는 팔레스타인 들이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하는 바위의 돔에서,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성전 길을 따라가며 은혜를 입기를 원한다. 특별한 은혜에 대한 지나친 갈망 때문인지 아니면 지도자들의 욕망에 희생당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성전은 피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은 은총과 평화와 화합이 아닌 아픔과 전쟁과 분열의 흔적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이스라엘 출장을 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셨다. "거기 위험하지는 않아? 전쟁 날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야?" "엄마, 이스라엘 진짜 안전해. 거기 군대가 세계 최강이야.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에서 보면 엄청 위험해 보여."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그냥 한 말이 아니라 내가 듣고 믿고 있는 그대로였다. 난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일 끝나자마자 대중교통과 렌터카를 이용해서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내 믿음과는 달리 전쟁이 일어났고 오늘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포로 교환을 요구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
몇 달 전에 한 곳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시간을 쪼개 가면서 돌아다녔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전쟁이 터지고 도시가 화염에 휩싸이고 매일 매일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 내가 만났던 십 대 유대인 여학생들은 군대에 집결해 총을 받았을까? 식당에서 서빙을 해줬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큰 피해를 보진 않았을까? 뉴스에서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한 기억이 장면처럼 스쳐 갔다.
월요일 업무 첫날 저녁 이스라엘 본사 직원 두 명이 우리를 근사해 보이는 식당에 데려가 대접해 줬다. 그때 서빙하는 사람 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는데 유대인 본사 직원들과 서빙하며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같은 언어를 쓰는지 물어봤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자기들은 팔레스타인들이 쓰는 언어를 배우지 않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배워서 쓴다고 했다. 아마 이스라엘 땅에서 대체로 부유하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은 수고스럽게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가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일을 구하기 위해서 유대인의 언어를 배워야만 했을 것이다. 찰나였지만 짧은 대답 속에서 나는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게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섞여서 살아가지만 유대인들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언어를 배울 생각이 없고, 팔레스타인들은 살기 위해 다른 언어를 배우지만 대화할 마음이 없다.
▲ 이스라엘 농업 공동체 키부츠 올 해 1월 키부츠의 평화로웠던 모습들 |
ⓒ 이지완 |
"이해가 있는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
아직 이스라엘 땅에서 왜 그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서로 총을 겨누는지 잘 모르겠다. 나라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나라를 세우고 다시는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일까? 자신이 살던 동네에 갑자기 유대인들이 들어와 감옥처럼 장벽을 치고 나가지도 못하게 했을 때 느꼈을 팔레스타인 들의 억울함과 분노 때문이었을까? 이해하기 위해 공부부터 하기로 하고 김영미 PD의 <세계는 왜 싸우는가>와 팀 마셜의 <지리의 힘> 책을 사서 읽어 내려간다. 오늘 밤에는 차이나는클라스 중동 편을 찾아서 아이들과 같이 보기로 했다. 언젠가 두 민족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시를 써보기로.
[릴케가 본 것]_김현
......
릴케는 문전박대당했다
빈털터리 늙은이 귀머거리 호모 새끼 날개 없는 천사
릴케는 비렁뱅이가 되어
세계 곳곳의 문을 두드렸다
은유가 있는 한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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