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韓과 인연 보니… 시진핑에게 ‘소신 발언’도
생전 네 차례 한국 방문한 지한파
시진핑에게 쓴소리해 대중 호응 얻기도
향년 68세의 나이로 27일 사망한 리커창 중국 전 국무원 총리는 중국 지도부 내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지한파)으로 통했다. 그는 생전 한국을 네 차례 방문했다. 리 전 총리의 죽음으로 중국 정부 내 온건파 세력도 크게 축소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리 전 총리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때인 1995년 처음 한국에 방문했다. 그는 10년 뒤 랴오닝성 당 서기 시절인 2005년 9월 닷새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당시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 등 정부 인사를 만났다. 삼성, 현대, LG, 포항제철 등 경제계 인사들과도 회동했다.
2011년 10월 부총리 시절에는 남과 북을 잇달아 방문했다. 리 전 총리는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뒤 이명박 당시 대통령도 예방했다.
마지막이 됐던 리 전 총리의 네 번째 방한은 총리에 오른 2015년 10월 한·중·일 정상회의 때 이뤄졌다. 그는 방한 기간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만나 북핵·한반도 통일문제 등에서 양국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리 전 총리는 특히 2019년 10월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아가 협력 신호를 대외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당시 삼성 공장에서 “중국 대외 개방의 문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삼성을 포함한 각국의 첨단기술 기업들이 계속 중국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서울과 베이징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개최한 포럼에서는 온라인 축사로 인사를 대신했다. 리 전 총리는 당시 “양국은 이사할 수 없는 이웃”이라며 “선린 우호를 지키고 핵심 이익을 지키며 양자 관계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며 한·중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한국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추진하고 공동 발전과 번영을 함께 개척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리 전 총리는 2013년 3월 원자바오로부터 중국 국무원 총리직을 넘겨받아 올해 3월 퇴임까지 10년간 중국의 2인자 자리를 지켜왔다. 리 전 총리의 퇴진 당시 앞으로 시진핑 국가 주석이 중국 경제를 더욱 강력하게 장악할 것이란 신호로도 해석됐다.
리 전 전 총리는 생전 중국은 경제적 자유를 내세운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를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리 전 총리를 두고 “10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급증하는 정부 부채, 미국과의 무역 긴장, 코로나19 팬데믹 등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대국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시 주석은 리 전 총리를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로 여기고 실권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 주석의 계속된 견제 탓에 리 전 총리는 자신의 영역인 경제 분야에서도 정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리 전 총리는 정부의 관료주의와 민간 경제에 간섭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매번 시 주석이 결정을 주도해왔다”며 “시 주석은 지난 10년 동안 광범위한 정책 문제에서 리 총리를 제쳐뒀다”고 했다.
리 전 총리는 여러 차례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으며 중국 국민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인물이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리 전 총리는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 때는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6억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8만원)밖에 안 되며 이걸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 발언은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충격으로 받아들여 졌다. 시 주석이 강조한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을 정면 반박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위챗에 글을 올려 리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별세를 애도했다. 그는 “강하고 강력한 정치인도, 유능한 대중 연설가도 아니었다”면서도 “그의 거의 모든 공개적인 표현은 민주주의, 법치, 시장 경제, 정부 효율화와 같은 키워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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