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중 사이 ‘새우’란 인식부터 바꿔야”

사공관숙 2023. 10. 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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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미᛫중 고래 사이에 낀 ‘새우’란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미᛫중 갈등과 우리의 길’을 주제로 지난 25일 열린 한중우호협회(회장 신정승 전 주중대사) 중국전문가포럼에서다. 이날 발제를 맡은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지정학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이미 세계 제조업 5위 국가로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나 중견국이 아니라 사실상 강대국”이라며 “우리의 위상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지만수 연구위원은 발제에서 “한국은 현재 지정학적 갈등의 핵심인 반도체나 배터리 분야의 1, 2위인 선도국”이며 “한국이 여전히 ‘중견국 전략’이나 ‘선택 전략’에 머무는 등 미᛫중 사이에서의 포지셔닝(처신)만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즉 ‘제조업 통상대국’이란 한국의 경제적 정체성과 지위를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우리의 이익이 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중우호협회 중국전문가포럼이 ‘미·중 갈등과 우리의 길’을 주제로 지난 25일 열렸다. 이날 발제는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지정학센터 선임연구위원이 맡았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지만수 연구위원은 ‘자유무역 수호’를 한국의 중요한 국익 중 하나로 꼽았다. 한국은 일본᛫독일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수출 중심 국가로서 자유무역 체계가 망가지면 가장 피해가 큰 나라다. 한편으로는 국가가 주도하는 중국 국영기업의 불공정한 성장 때문에 가장 위협받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한국은 선진국의 대중 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지만 자유무역 체계의 붕괴에는 반대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의 또 하나의 국익으로는 ‘중국과의 접촉 유지’가 언급됐다. 지만수 연구위원은 “그간 중국이 준 경제적 기회는 고속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병목을 한국이 해소해주며 저절로 얻은 게 많다”며 “중국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직접 기회를 찾아야 하는데, 중국과 전방위적인 접촉을 유지하지 않으면 그 속에서 변화를 읽을 수 없고 기회도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기술᛫신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지배력이 상당한데, 우리 기업들은 계속 중국을 빠져나오는 중”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중국이 저만치 앞서가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중국과의 ‘초격차’ 유지에 대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만수 연구위원은 “중국과의 산업 경쟁에서 초격차를 유지해야 할 분야는 매우 소수다. ‘반도체 전략’이 우리 한국 경제와 산업 전체의 전략이 될 순 없다”며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됐고 이젠 생각을 다르게 할 때”라고 강조했다.

미᛫중을 둘러싼 현 정세를 두고 지만수 연구위원은 “미국이 문화᛫군사᛫동맹 등 비경제적 능력을 총동원해 중국과의 경쟁을 네트 안 경기에서 이종격투기로 바꾸는 중”이라며 “지금은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했다기보다는 미국과 선진국의 ‘중국 견제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이 내세운 ‘경제 안보’ 담론에 설득된 선진국들이 대중 견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중국이 이러한 견제 속에서도 체제 유지에 성공하면 앞으로 미국과 패권을 다툴 것이고, 이 과정에서 경제적᛫체제적 대가를 크게 치를 경우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주저앉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미·중 갈등과 우리의 길’을 주제로 지난 25일 열린 한중우호협회 중국전문가포럼에서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견뎌낼 가능성에 대해 지만수 연구위원은 “중국의 성장이 빠르게 둔화하고 있어 ‘시간은 중국 편’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면서도 “중국이 예전보다 글로벌 가치사슬에 덜 의존하는 나라가 됐다는 건 선진국의 견제를 견딜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은 내수 중심의 제조업 강국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리질리언스(회복탄력성)가 강한 나라”라며 “배터리᛫태양광᛫수소 에너지 등 미래 산업 분야의 점유율,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창업 생태계, 연구·개발(R&D) 투자 규모 등을 봤을 때 중국이 최소한 버틸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견제의 시대’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과 관련해선 전 세계 190여 개 국가 중 가장 이 시대에 잘 대응하고 있는 나라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만수 연구위원은 “중국의 추격에만 집중하기보단 일본과 독일이 어떤 산업 생태계를 만들었고, 또 어떻게 우리와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업의 대응 전략에 대해 “한국 기업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을(乙)’이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며 “이러한 문화적᛫정서적 장벽을 극복하고 중국과 다양한 형태로 협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임성남 전 외교부 차관은 “이제 한국도 유럽처럼 ‘여우’ 같은 외교를 할 시기”라며 “미᛫중 한쪽만 바라보는 ‘곰’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신정승 전 주중대사는 “진영과 논리에 매몰되기보다는 국가 이익을 위한 세밀하고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균형 잡힌 외교를 당부하는 동시에 “중국의 불공정 관행에는 눈치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중앙일보 중국연구소·성균중국연구소·차이나랩이 후원하고 한중우호협회가 주최하는 중국전문가포럼이 지난 25일 ‘미·중 갈등과 우리의 길’을 주제로 개최됐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외교부᛫중앙일보 중국연구소᛫성균중국연구소᛫차이나랩이 후원하고 한중우호협회가 주최한 이번 중국전문가포럼은 2022년 12월 첫 포문을 연 이래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미᛫중 전략적 경쟁 시대에 한국의 슬기로운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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