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제치겠다" …미·일 반도체 합병 의기투합 수포로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회사 간 합병이 무산됐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노린 일본의 키옥시아와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 간의 2년에 걸친 야심찬 합종연횡 시도였지만 끝내 벽을 넘지 못했다.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웨스턴디지털은 키옥시아에 합병을 위한 협상 중단을 통보했다. 두 회사는 당초 이달 말을 목표로 합병 협상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번 합병 추진에 금이 가면서 두 회사는 각기 사업 재건에 나설 전망이다.
반도체 자존심 되찾으려는 일본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 간의 합병은 일본 내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번 합병 건에 대해 “경제안전 보장 관점에서 미·알 양국 정부도 깊이 관여했다”(요미우리)고 할 만큼 두 회사 합병에 건 기대가 컸던 탓이다.
이유는 도시바에서 시작한다. 한때 반도체 시장 1위를 했던 도시바는 일본 반도체 업계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뒤처지고 경영악화까지 겹쳐지면서 도시바는 키옥시아 전신인 메모리 사업부를 떼내 팔기로 했다. 2018년 베인캐피털이 인수했는데, 이때 SK하이닉스도 약 4조원을 투자하며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된다. 이듬해 현재 이름으로 재출발했지만, 경영 상황은 나아지질 않았다. 미국과 중국 간의 분쟁으로 상장이 미뤄지고 세계 경기가 침체하며 재고가 늘어나는 등 반도체 시장 악화까지 겹치면서 적자 폭이 불어나자, 웨스턴디지털과의 합병이 ‘해결책’으로 부상했다.
SK하이닉스의 합병 반대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 간의 합병 추진은 단순 시장 점유율 합산 수치만으로도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업계 3위인 키옥시아의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19.6%. 4위인 웨스턴디지털의 점유율(14.7%)을 고려하면 두 회사의 통합만으로 34%대의 시장 장악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장 최강자인 삼성전자(31.1%)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묘수기도 했다. 통상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사업의 특성상, 두 회사의 합병으로 몸집을 키우면 자금 확보나 효율 면에서 이점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일본 금융업계까지 나서 회사의 통합까지 필요한 자금인 1조9000억엔(약 17조원)을 빌려주겠다는 약속을 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걸림돌이 됐다. 일본 언론들은 합병 무산 주된 이유로 최대주주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반대를 꼽았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2위(17.8%)인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반길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미우리는 “장래 키옥시아와 협력을 염두에 둔 SK 측이 경영통합시에 웨스턴디지털의 주도권이 강화될 것을 우려해 동의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닛케이는 “양사는 SK하이닉스 동의를 얻어 합의할 방침이었지만 SK를 납득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두 회사 간 합병을 바라보는 SK하이닉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중요한 이해관계자의 설득을 뒤로 미룬 것”이 이번 합병 무산의 원인이란 분석이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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