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과 장작]<제3화>한국 때문에 이혼했어요

구채은 2023. 10. 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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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억 고물 ‘K태양광’ 방치
베트남 꽝빈성 ODA 현장을 가다

[전편 요약] 베트남 동허이 꽝빈성 반 라오 콘(Ban rao con)에서 만난 응우옌 티 아잉(Nguyen Thi Anh)(49세)씨와 호티담(Ho Thi Dam)(65세)씨. 그들은 한국 정부가 원조 사업으로 지어준 태양광 설비가 2016년 설치 이후 1년도 안 돼 고장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 측의 입장은 달랐다. 1200만달러(약 185억) 차관이 들어간 해당 사업은 2015년 1월 시작돼, 2018년 설비가 구축되고, 2019년 9월 유지보수가 끝났다. 수원국 국민의 말과, 공여국 시행주체의 증언이 상이했다. 취재진은 한국 측 시공사인 KT와 하청을 맺은 베트남의 C기업을 찾아가 입장을 들어보기로 했다.

반 라오 콘 마을에서 나와 동허이로 가는 길의 고압선. 도시와 도시들은 전기 선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오지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가지 않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차가 대로변에 들어섰다. 고압선이 앞 유리에 비췄다. 트로웅팜로를 녯레강을 따라 20여분 더 달렸다. C기업 사무소는 구글에 알려준 주소 그대로 존재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으며, 태양광 사업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경비원, 안내원, 비서를 차례로 만났다. 10여분 기다렸다. C기업 관계자가 취재진을 맞았다.

“한국에서 오셨다니,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저희가 반 라오콘 태양광 사업에 관여한 것은 맞습니다.”

‘꽝빈성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에서 KT의 하청업체로 참여했던 C기업 관계자. 그는 30여분여의 미팅 동안 손깍지를 꼈다 풀기를 반복했다. 중간중간 물을 들이켜고, 한숨을 내뱉었다. 소파에서 엉덩이를 뗐다 붙였다 했고,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어렵사리 입을 연 취재원 보호를 위해 본지는 그의 실명과 기업명, 사진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말끝마다 “어디까지나 일부 사람들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한국과 베트남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꽝빈성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는 올해 7월19일부터 정부 지방감사단의 감사가 시작됐다. 베트남 공안들이 수차례 그를 찾아왔다고 했다.

2015년 7월 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 사업. 사업 절차와 착공식 개최 내용이 들어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사업의 자금 흐름은 이렇다.

‘한국수출입은행→베트남 정부→지방 정부(꽝빈성 인민위원회)→시공사 KT→현지 하청업체’

여기서 수건의 계약서류가 발생한다. 우선 수은은 베트남 정부와 차관공여계약을 맺는다. 정부 재정 1200만 달러를 대출해주는 내용이 여기 담긴다. 베트남 정부에서 이 돈을 재정이 빠듯한 꽝빈성 인민위원회에 보낸다. 지방 정부는 입찰을 통해 선정된 시공사인 KT에 자금을 준다. KT는 현지 업체인 하청을 줘 태양광 발전기 설치를 맡긴다음 대금을 지급한다.

EDCF 사업은 구속성(tied) 원조(공여국 기업이 수주하는 조건을 거는 것)가 많다. 베트남 정부 입찰을 한국 기업이 따냈지만, 개발도상국 현지 기업들에 하청을 주는 구조다. 원청이 한국 기업, 하청이 베트남 기업이다. 한국기업이 현지 사정을 알 수 없는 데다, 한국 근로자를 고용하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동허이 현지 업체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사전 제작해 두었지만 중간 계약 해지로 쓰지 못한 자제들이 마당에 쌓여 있다.

여기서부터는 그의 주장이다.

그는 KT가 계약에 맞게 정산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 라오 콘 마을로 태양광 기자재를 실어 나르기 위한 도로포장, 태양광 설치를 위한 접지, 토목 공사 등을 했다. 패널 설치와 실제 가동을 위한 1단계 공사였다. 2단계 공사로 들어가기 위해 이 업체는 패널을 구매하고, 패널을 받칠 프레임과 전지함 등을 주문했다.

1단계 공사는 끝났다. 그때부터 KT 측으로부터 대금 정산이 늦어졌다. 송금 일자에 대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급이 지체되면서 미리 사놓은 자재에 대한 청구서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2단계 공사를 시작하기 전 계약 해지라는 결단을 내렸다. 위약금까지 물어주면서 계약을 파기했다. 정부 간 사업이기 때문에 정산이 늦어질 것이란 예상을 못했다.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은 신뢰가 깨진 것이나 마찬가지니, 계약 파기가 맞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해지라는 초강수를 두면 KT가 대금 지급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바로 계약 무효 수순을 밟게 된 것이긴 하죠.” 그가 설명했다.

대금을 받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원청기업인 KT가 대금 납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정산을 지연하는 것 같았다고도 덧붙였다. KT가 이른바 ‘원청 갑질’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 사들인 태양광 축대와 기자재 등이 쌓인 뒤뜰 창고를 보여줬다.

동허이 현지 업체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사전 제작해 두었지만 중간 계약 해지로 쓰지 못한 자제들이 창고에 쌓여 있다.

“아마 관계자들은 이 자재를 보기만 해도 무엇에 쓰이는 건지 알 겁니다.”

커다란 철제 구조물들이 수풀 사이로 이리저리 놓여있었다.

그가 통역사를 붙잡고 이야기했다.

“정산이 늦어지면서 아내와 이혼했습니다.”

“이혼이요?”

“네. 당시 회사가 너무 안 좋았어요. 인생 최대 위기였어요. 경제적인 문제가 컸죠.”

그는 지금까지 사업을 유지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다. 당시 KT의 정산 지연으로 많은 업체가 도산했다고 했다. 하청업체들이 대금을 받지 못하니, 설치한 태양광 시설물 장비를 떼다 팔거나, 유지관리는 물론 하자보수도 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현지 언론 보도들을 통역사가 검색했다. 바로 찾을 수 있었다.

꽝빈성 태양광 프로젝트와 관련된 현지 언론 보도들. 2015년 사업 추진 시점부터, 2023년 지방감사원 감사진행 내용까지 검색량이 많았다.

이 때문에 꽝빈성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는 2016년 설치 1년도 안 돼 부실화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과거의 아픔을 발판 삼아 더 좋은 회사로 나아가야겠다고 또 배운다”라며 말을 마쳤다. 취재진이 나갈 때 한마디 더 거들었다.

“다음번에는 베트남에 제대로 된 기업을 보내주세요.”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그는 정산 불이행을 입증할 서류, 문건, KT와 맺은 계약서 등의 증거자료를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그게 저한테 무슨 실익이 있을까요? 공안들이 또 들이닥쳐서 귀찮아지기만 할 겁니다”

추적의 마지막 단계.

KT와 수출입은행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인포그래픽 페이지■

태양광과 장작 - 베트남 반 라오콘 르포

(story.asiae.co.kr/vietnam)

원조 예산 쪼개기는 어떤 문제를 가져오나

(story.asiae.co.kr/ODA)

[태양광과 장작]책임자를 찾아서 로 이어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동허이(베트남)=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동허이(베트남)=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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