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탄도미사일? 관객 '호불호' 갈렸다
[양형석 기자]
한국 시청자 및 관객들은 사극을 참 좋아한다. 굳이 <조선왕조 500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송됐던 <허준>이 64.8%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고 <태조 왕건> 역시 시청률 60%를 돌파했다. 정통사극들 외에도 시청률 57.8%의 <대장금>이나 49.7%의 <주몽> 등 소위 '퓨전사극'들도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닐슨 코리아 기준).
한국사람들의 '사극사랑'은 영화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영화 역사상 최다관객에 빛나는 <명량>이 1761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비롯해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와 <왕의 남자>(1230만)까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사극 영화만 세 편이나 된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 외에도 <관상>이 913만, <최종병기 활>이 747만, <사도>가 624만, <안시성>이 544만 관객을 모으며 사극의 인기를 주도했다.
▲ 개봉 초반 무서운 흥행속도를 보였던 <신기전>은 추석 이후 뒷심이 떨어지며 최종스코어 372만을 기록했다. |
ⓒ CJ ENM |
중1때부터 활동한 28년 차 중견(?) 배우
흔히 배우나 감독에게 '대표작'이라고 하면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거나 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작품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배우나 감독에게는 흥행이나 수상 여부와는 별개로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품이 따로 있을 수 있다. 지난 1996년 중학교 1학년의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올해로 데뷔 28년 차가 된 배우 류현경 역시 개인적으로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은 따로 있다.
류현경은 드라마 <학교2>와 <왕초>,<무인시대>,영화 <태양은 없다>,<비천무>,<조폭마누라2>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경력을 쌓았지만 대표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2008년, 류현경은 영화 <신기전>에서 상단의 살림을 책임지는 방옥 역을 맡았다. 류현경은 지난 9월 22일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출연해 '평생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작품이라며 <신기전>을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류현경은 2010년 독립영화 <첫사랑 열전>을 포함해 네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필모그라피를 화려하게 채우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원작과는 다른 도발적인 성격의 향단이를 연기했던 <방자전>을 통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영화 초반 송새벽과의 러브라인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줬던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의 청초한 카페직원 역시 류현경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류현경은 2013년 이경규가 제작을 맡은 <전국노래자랑>과 2015년 임상수 감독의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크게 돋보이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드라마 활동도 병행했던 류현경은 2013년 시청률 30%를 기록했던 <기황후>에서 초반 부왕의 왕비 경화공주로 출연했고 2015년 <오 나의 귀신님>에서는 드라마 후반 순애(김슬기 분)가 빙의하는 강순경 역으로 출연했다.
작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장편프로젝트 지원작이었던 영화 <요정>에 출연했던 류현경은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카지노>에서 대선배 최민식과 연기호흡을 맞췄다. 차무식의 세무조사를 시작한 대전지방국세청의 조사과 팀장으로 차무식이 필리핀으로 도주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활발한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류현경은 내년 방영예정인 넷플릭스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통해 윤계상과 부부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 정재영은 2008년 <강철중: 공공의 적 1-1>과 <신기전>으로 8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
ⓒ CJ ENM |
영화 <신기전>은 설주(정재영 분)라는 행수가 이끄는 부보상단이 우연찮은 기회에 조선의 신무기개발에 뛰어들어 조선을 무시하는 명나라의 3천 군사를 무찌른다는 내용의 팩션(팩트+픽션) 사극이다. 영화적 재미를 위한 각색과 과장이 실컷 들어간 영화인 만큼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 본다면 지적할 부분이 수두룩할 것이다. 하지만 <신기전>은 애초에 팩션을 표방한 영화이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의 자세한 비교보다는 그냥 영화 자체로 즐기면 된다.
<신기전>은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조선군과 3000명이 넘는 명나라 군사의 마지막 대결을 보여주기 위해 달려가는 영화다. 실제로 <신기전>은 마지막 전투신 촬영을 위해 2개월의 긴 촬영기간과 5000명의 엑스트라, 2500발의 신기전 발사 등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었다. 실제로 <신기전>에서는 실감나는 발사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발사까지 가능한 실제 신기전을 복원했고 <괴물>의 시각효과팀을 영입해 웅장한 전투신을 완성했다.
하지만 관객들을 사로잡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신기전>의 완성도, 특히 김유진 감독을 비롯한 제작사에서 가장 공을 들인 마지막 전투신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제법 심하게 갈렸다. 실제로 소신기전과 중신기전까지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비주얼을 보여주지만 대신기전은 갑자기 조선초기에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등장한다. 영화 <맘마미아!>와 흥행 1위를 다투던 <신기전>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이런 과도한 설정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실미도>로 천만 배우에 등극한 정재영은 2005년에도 <웰컴 투 동막골>로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충무로의 대표 흥행배우로 군림했다. 정재영은 2008년 <강철중: 공공의 적1-1>의 빌런 이원술에 이어 <신기전>의 상단 행수 설주를 연기했는데 두 편 합쳐 802만 관객을 모으며 여전한 흥행파워를 과시했다. 특히 <신기전>에서는 여느 무협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액션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신기전>은 <약속>과 <와일드카드>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이만희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에만 4년이 넘는 시간을 소요한 작품이다. 김유진 감독에게도 <신기전>은 <와일드 카드> 이후 5년 4개월 만에 선보인 신작이었다. 하지만 김유진 감독은 <신기전> 이후 15년째 신작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고 <신기전> 이후 <포화 속으로>,<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의 각본을 쓴 이만희 작가도 2016년 <인천상륙작전>을 끝으로 집필활동을 접었다.
▲ 허준호는 <신기전>에서 세종대왕을 지키는 호위무사 창강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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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다감은 <신기전>에 출연할 때만 해도 한은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2018년12월 개명). 한다감은 데뷔 초 <명랑소녀 성공기>와 <순수의 시대>,<풀하우스> 등 인기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곤 했다. 하지만 <신기전>에서 안정된 연기로 2009년 황금촬영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 논란을 씻었다.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베테랑 배우가 된 허준호는 최근 <킹덤>의 안현대감과 <60일, 지정생존자>의 비서실장, <모가디슈>의 북한대사 역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도맡아 하고 있다. 임금의 호위무사 창강을 연기했던 <신기전>에서도 허준호의 카리스마는 관객들을 사로 잡기 충분했다. 창강은 영화 중반 설주와 칼을 겨눌 정도로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마지막엔 힘을 합쳐 명나라 군사들과 맞서 싸운다.
작년 혈액암으로 투병중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관객들을 걱정시킨 '국민배우' 안성기는 <신기전>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을 연기했다. 한석규(<뿌리깊은 나무>), 김상경(<대왕세종>) 등 세종대왕을 연기했던 배우들이 세종대왕을 개성 있게 표현했던 것처럼 안성기 역시 명나라 사신이 읽은 명황제가 보낸 굴욕적인 서신의 내용을 들은 후 상당히 거친 욕을 내뱉으며 세종대왕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배우 인교진은 <신기전>에서 설주의 신임을 얻고 있는 상단의 재주꾼 역류를 연기했다. 류현경이 맡은 방옥과는 러브라인이 있는데 방옥이 일방적으로 역류를 좋아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역류는 명나라에 빼앗긴 신기전의 설계도가 들어있는 비서를 훔치다가 연못 속에서 총에 맞는다. 역류는 명나라 군사들에게 자신과 동료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칼로 손을 찔러 자신을 희생하고 동료들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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