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크리에이터와 귀농 제조업자

전정희 2023. 10. 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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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일기(35)
자신의 자원이 소진됐을 때 비로소 '한계'를 알게 된다

지난달 우연히 ‘캡컷’이라는 무료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사용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을 봤다. 그동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싶어도 동영상 다루는 법을 몰라 시작을 못 하고 있던 터라 관심 있게 지켜봤다.

설명을 듣다 보니,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해봤다. 핸드폰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놓고 마침 처마 밑에 집 짓고 있던 말벌들을 촬영한 후, ‘캡컷’으로 편집했다. 거기서 알려주는 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배경음악까지 들어간 동영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내친김에 유튜브 계정까지 만들어 그날 만든 ‘말벌들의 집짓기’ 영상을 게시했다. 그동안 어렵게 생각해 미뤘던 일이 단 몇 시간 만에 얼떨결에 이루어졌던 것. “휴~ 이렇게 쉬운 거였어?”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한 '말벌들의 집짓기'. 사진 제공=임송

이후 유튜브 소재를 뭐로 할까 생각하다가 요즘 한참 재미있게 하고 있던 ‘필사’(좋은 글귀를 공책 등에 옮겨 적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전날 좋은 글귀를 찾아 원고를 준비해 놨다가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필사하면서 그 장면을 화면에 담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다.

애써서 만들어 올려놔 봐야, 아내와 지인 몇 명이 ‘좋아요’ 누르는 것이 다다. 그래도 하다 보니 습관이 돼서, 지난달 10일에 첫 영상을 올린 후 지금까지 총 43개를 올렸다.

하루에 1개 이상 꾸준히 올린 셈이다. 촬영과 편집에 걸리는 시간도 점점 단축돼 처음에는 3시간 이상 걸리던 일이 지금은 1시간도 안 걸린다.

이렇게 동영상 작업을 하다 보니 가끔, “만약 10년 전에 제조업을 하지 않고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자문해 본다.

사람 일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생활은 지금보다 다채로웠을 것이고, 세상 물정은 지금보다 몰랐을 것이다”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제조업자가 물건 만드는 것은 매일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는 일이다. 만약 생산 과정에서 일이 생겨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이는 소위 ‘사고’다. 사고로 만들어진 물건은 고객에게 팔 수가 없다. 고객은 이전에 샀던 것과 동일한 물건을 원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SNS에서는 항상 새로운 내용을 원한다. 어제와 같은 내용이라면 누가 보겠나. 영상을 올리는 주기나 다루는 주제 등 통일성이 필요한 것 외에는 항상 새롭고 독창적이어야 사람들 관심을 끌 수 있다.
유튜브 영상 제작을 위한 '필사'. 사진 제공=임송

진부하고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영상은 경쟁이 치열한 SNS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 만약 내가 10년 전에 유튜브를 시작했다면, 모르긴 해도 그동안 주변에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내 생활도 더욱 다채로워지지 않았을까.

한편 제조업을 하려면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과 열정도 쏟아부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제조 공간과 설비, 그리고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원재료와 포장재, 택배 부자재 등도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준비하는 것은 하나하나가 돈과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게다가 물건을 내다 팔 판로를 확보하는 일은 물건 만드는 일보다 더 어렵다.(내 경우에는 그랬다). 시장이라는 곳이 고깃덩어리는 한정되어 있고 배고픈 사업자는 많으니 당연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탐욕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진검승부의 장이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체면치레나 하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때로는 점잖지 못한 일도 해야 하고 굴욕도 감수해야 한다.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때까지는 마치 블랙홀처럼 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다 빨아들인다.

그렇다고 유튜브가 쉬웠을 것이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려면 쉽지 않은 법이니까. 하지만 제조업에 비해 필요한 공간이나 장비도 훨씬 단출하고 처음에는 혼자 할 수도 있으니 초기 투자 비용이 훨씬 덜 들지 않았을까.

물론 수익을 내기까지는 시간도 걸리고 고생도 했겠지만, 제조업처럼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부담이 훨씬 덜 했을 것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이 적다는 것이, 꼭 좋기만 한 일일까?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항상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 일 아니던가.

사람은 자신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무능’을 경험할 때 비로소 겸손해지고, 자신의 자원이 모두 소진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된다. 그것들을 경험해 보지 않고 어찌 세상 물정을 안다고 할 수 있겠나. 그런 면에서 보면 제조업은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그나저나 공부도 좋고 스승도 다 좋은데 이제 고생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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