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철 칼럼] 홍범도 장군, 그의 주적은 일본이었다
것을 포기하고 이국땅에서
일제와 싸운 독립투사들에게
존경 외에 어떤 잣대도 불필요
홍범도 장군도 일제에 부인과
아들까지 잃으며 광복에
몸 바친 독립운동 거목인데
누가 왜 이념 딱지를 붙이는가
독립투사들의 희생을 안다면
최소한 고마워하는 염치라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2019년 중국 상하이와 항저우, 충칭, 옌안까지 백범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취재하면서 뼛속 깊이 느낀 게 있다. “우리 독립투사들에게는 고마움과 존경 외에 어떤 잣대도 들이대서는 안되겠구나….” 친일파가 호의호식할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머나먼 중국, 소련에서 목숨 걸고 싸운 그들의 주적은 일본, 목표는 해방된 조국뿐이었다. 친일 대신 독립운동을 택한 그들의 삶은 처절했다.
중국 항저우에선 일강 김철 선생의 생애와 맞닥뜨렸다. 일강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폐병으로 숨을 거두기까지 항저우 청태제2여관 2층 구석방에서 지냈다. 목제 계단을 올라가니 그 방이 남아있어 울컥했다. 전남 함평 출신인 일강은 독립운동을 위해 전답까지 팔고 상하이로 떠났다. 그의 부인은 남편의 독립운동에 걸림돌이 된다며 소나무에 목매 숨졌다. 일강은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백범과 함께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획한 거물이다. 그러나 그는 조국 해방을 못보고 이역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이 한맺힌 삶을 마감한 충칭시 치장구의 허름한 강변 집, 국공내전 초기 ‘광둥 코뮌’ 사건에 휘말려 희생된 광저우 한인 젊은이 150여명의 죽음…. 가는 곳마다 독립운동가들의 한이 서려 있었다.
중국 베이징 왕푸징 부근 둥창후퉁의 과거 일본 영사관 감옥은 이육사 선생이 숨을 거둔 곳이다. 이육사는 그 감옥에서 일제의 고문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이육사는 1932년 김원봉이 국민당 장제스의 지원으로 난징에 세운 조선혁명군사학교 1기생 출신이다.
거기에는 석정 윤세주도 있었다. 밀양 출신 석정은 1942년 6월 조선의용대 일원으로 타이항산 전투에 나섰다가 총상을 입고 순국했다. 석정은 당시 일본군에 포위된 팔로군을 위해 양쪽 산봉우리의 일본군을 공격해 퇴로를 열어줬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펑더화이와 덩샤오핑 등 중국 공산당 수뇌부가 목숨을 구했다. 윤세주의 장례식에선 중국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주더가 직접 추도사를 했다. 국민당도 그를 ‘조선의용대의 영혼’으로 칭송했다. 당시 공통의 주적은 일본이었다. 만약 공산당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윤세주에게 빨간 딱지를 붙인다면 그와 친했던 이육사도 ‘빨갱이’가 되는 건가. 홍범도 장군 논란에 별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항일투쟁을 위해서라면 국민당이나 공산당, 소련, 미국 등 누구의 힘이라도 빌려야 했다. 조선의용대는 국민당 장제스의 지원으로 출범한 조직이다. 이들 상당수는 중국 공산당의 근거지인 옌안을 거쳐 북한으로 가면서 남한에선 잊혀졌다. 조선의용대를 출범시킨 김원봉은 해방 후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끌려가 뺨맞고 고문당하는 수모를 겪다 북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우리 독립운동 진영은 좌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최근 홍범도 장군의 육사 흉상 철거 논쟁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목숨 걸고 평생 조국 해방을 위해 싸웠더니 후대 군인들이 이념 딱지를 붙이다니….
박정환 육군 참모총장은 홍 장군 논란에 대해 “과거 여러가지 대적관을 흐리게 만든 육사 정체성을 바로잡는 일환”이라고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말했다. 박 총장은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분의 흉상을 특별히 세우는 게 생도들의 교육, 육사 설립 취지에 맞는가”라고 반문했다. 도대체 홍 장군이 왜 육사의 대적관을 흐리게 한단 말인가. 홍 장군은 1920년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의 거목이다. 그는 의병으로 일본군과 싸웠고, 그의 부인은 일본군의 모진 고문으로 숨졌다. 홍 장군의 장남은 열여섯 살에 일본군과 싸우다가 순국했다. 조국에 모든 걸 바친 셈이다.
일각에선 그의 1927년 소련 공산당 입당을 문제삼는데, 그럼 공산 치하 소련에서 반공의 기치를 들고 독립운동을 했어야 하나. 그는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했고, 광복 2년 전인 1943년 이국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는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이나 6·25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홍 장군에게 왜 이념의 굴레를 씌우려 하는지, 그들의 뇌를 이해할 수 없다. 지금 군 간부들 가운데 홍 장군처럼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본 이가 있는가. 지금 후손들은 독립투사들 덕에 내 나라 내 땅에서 등 따숩고 배부르게 살고 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럼 그들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노석철 논설위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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