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100원 동전의 이순신과 십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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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의 '황리단길'을 걷다 보면 십원빵을 파는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보탑 등이 있는 10원 동전의 도안을 본떠 만든 십원빵은 석가탑 석굴암 등의 문화재를 자랑하는 경주와 잘 어울린다.
그런데 십원빵 디자인은 바뀔 가능성이 크다.
십원빵과 100원 동전의 도안을 둘러싼 분쟁은 저작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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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의 ‘황리단길’을 걷다 보면 십원빵을 파는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거리에서 고소한 빵 냄새를 지나치기는 어렵다. 다보탑 등이 있는 10원 동전의 도안을 본떠 만든 십원빵은 석가탑 석굴암 등의 문화재를 자랑하는 경주와 잘 어울린다. 황리단길에서 쫄깃한 풀빵 같은 십원빵을 먹으며 인근의 첨성대로 향하는 길에는 왠지 모를 정취가 피어오른다.
그런데 십원빵 디자인은 바뀔 가능성이 크다. 동전의 도안은 한국은행이 별도로 허용한 경우 외에는 돈 벌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화폐 도안을 베껴 쓰는 것은 위변조 심리를 조장할 수 있고 화폐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개인이 한은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낸 케이스도 있다. 장학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장이 2021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한은이 정당한 사용료 지불 없이 고 장우성 화백이 그린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100원 동전에 새겨 왔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장 관장은 장 화백의 아들이다. 아버지에게서 영정 저작권을 물려받았다는 장 관장은 “1973~93년 발행된 500원권 지폐에도 아버지가 제작한 영정이 쓰였다”면서 모두 1억원의 손해배상을 주장했다.
십원빵과 100원 동전의 도안을 둘러싼 분쟁은 저작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다. 저작권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콘텐츠와 다른 창작물을 만들기까지의 노력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저작권의 테두리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규제가 강해질수록 창작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 도시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인기 있는 십원빵 같은 상품이 늘어나길 바란다면 저작권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은이 십원빵에 대해선 소송을 내는 대신 빵 모양을 일부 변경하는 방안을 제조업자와 협의키로 한 점은 긍정적이다.
장 화백의 이순신 영정은 한국의 표준영정 1호다. 표준영정은 국가에서 공인한 영정이다. 1973년 도입된 표준영정 제도에는 역사적 위인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표준영정 제도에 힘입어 이순신 표준영정은 장 화백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됐다. 장 화백의 아들로선 자랑스러울 법한 이 표준영정을 놓고 소송을 낸 이유가 궁금해 장 관장 측을 접촉했지만 명확한 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한참 뒤에야 전해 들은 말은 장 관장이 아버지를 둘러싼 친일 논란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장 화백은 일제강점기 관제 성격의 조선미술전람회와 반도총후미술전에 출품했다는 이유 등으로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친일 인물로 지목된 바 있다. ‘부당한 친일 몰이’라는 아들의 누적된 불만이 소송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 논란과 별개로 최근 법원은 1심에서 한은의 손을 들어줬다. 한은과 장 화백이 화폐 도안용 영정 계약을 맺은 데다 장 화백에게 150만원의 대금까지 지급됐다는 사실이 판단의 근거였다. 차제에 이순신 영정뿐 아니라 표준영정 제도 전반을 재점검하는 일이 서둘러 이뤄지기를 바란다. 문화재청은 이순신 표준영정과 관련한 검토 작업을 진행했었다. 2017년과 2019년 각각 진행된 전문가 자문 결과를 보면 ‘관복, 병부주머니 등은 당시의 실제 복식과 다르게 표현됐다’는 등 이순신 표준영정에서 적지 않은 오류가 발견됐다. 고증이 잘 안 된 작품에 표준영정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렵다. 표준영정 리스트를 재정비하거나 이에 관한 규제까지 유연하게 만드는 일은 결국 빵 만드는 사람을 포함한 창작자의 표현 범위를 더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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