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재물에 대하여

2023. 10. 2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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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수(전주대 교수·선교신학대학원장)


마음의 거주지는 심장이나 두뇌가 아니라 재물이 있는 곳입니다. 가진 재물이 적으면 거기에 둔 마음도 적습니다. 그런데 재물이 많아지면 거기에 빼앗기는 마음의 분량도 커집니다. 그래서 재물에 마음의 발목이 잡힌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거의 들어가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진실로 부자의 천국 입성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지혜자는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전 5:13)는 아주 특이한 말을 했습니다. 재물의 소유가 유익이 아니라 해로움이 된다는 이 기막힌 폐단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지혜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재물에만 눈독을 들인 자의 눈은 악하다(잠 28:22)고 말합니다. 재물의 소유와 관련된 위험성을 감지한 다른 지혜자는 “나로 하여금 빈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잠 30:8), 그리고 자신에게 “오직 필요한 양식”만 주시라고 구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가난한 자가 입에 거미줄 치지 않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부한 자는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두지 않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이 가르침은 성경 전체의 재물관을 요약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약하신 기독교의 재물관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갈 때에 이미 확립된 것입니다. 그때의 양식은 만나였고 백성은 하루치의 만나만 거둬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일용할 양식 이상의 분량을 취했고 하루가 지나자 남은 만나는 벌레와 악취의 놀이터가 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소유물이 많으면 인생에 좀과 동록과 도둑이 필히 생깁니다.

벌레와 악취와 도둑과 무관한 인생을 원한다면 필요한 양식만 가지고 사십시오. 필요 이상의 양식은 예수께서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다”고 하신 하늘에 두십시오. 양식의 잉여를 하늘에 저장하는 방식은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드는 것”입니다(눅 12:33). 나눔의 일차적인 수혜자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수혜자는 부한 자입니다. 나눔은 손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하늘의 배낭에 재물을 저장하는 일입니다. 다산 정약용도 미꾸라지 같은 재물에 대해 “무릇 재물을 비밀스레 간직하는 것으로 베풂만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진리의 체계를 확립한 4∼5세기 교부들의 재물관은 아주 엄격해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지만 나누고 베푸는 삶을 위해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밀라노의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추구하는 것”은 자연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사람과 동물과 식물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이라는 말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재물의 잉여를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공유하기 위한 것이기에 만약 나누지 않는다면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는 ‘강도행위, 탐욕, 도둑질’과 같다고 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 자신에게 남아 있는 분량의 크기만큼 부당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눌 때의 자세로서 암브로시우스는 “다시 돌려받지 못할 것처럼 주라”고 권합니다. 그래도 손해가 아닙니다. 바실리우스는 나눔이 ‘선물과 대출’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나눔은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선물이고, 하나님이 나눈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에 거룩한 대출인 것입니다.

무늬만 갖춘다고 해서 저절로 나눔인 것은 아닙니다. 나눔은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형제로 여기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밖으로 표출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자발적인 나눔의 향기로운 문화가 우리 모두의 상식과 일상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병수(전주대 교수·선교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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