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서울 촌놈’ 작가가 지역을 체험하는 법

2023. 10. 2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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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강연 끝난 뒤 바로 돌아오기 아까워
지역 명소 둘러보고 이색적이고 멋진 풍경 만끽해

출판 편집자로 일한다면 언젠가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볼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매년 엄청난 규모의 북페어가 열리기 때문이다. 전 세계 유명 출판사는 물론 편집자, 마케터, 그리고 저작권을 관리하는 에이전트들이 때맞춰 전시장으로 몰려든다. 디지털 시대가 된 오늘날에는 많이 축소됐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프랑크푸르트가 먼저 떠오를 만큼 내게도 꽤 추억이 깃든 곳이다. 대여섯 번 정도 참관을 했나. 갈 때마다 뼛속을 후비는 듯한 을씨년스러운 독일 날씨 탓에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뜻하지 않게 대상자로 정해져 나 홀로 그 도시에 뚝 떨어졌던 첫 번째 출장은 (나쁜 의미로) 잊히지가 않는다. 아무런 인상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일천했고, 유럽은 처음이었다. 북페어에 가서 정확히 뭘 해야 하는지 몰랐고, 가르쳐주는 선배도 없었다. 정해진 여행사 가이드에 따라 아침에 버스를 타고 전시장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축구장처럼 넓디넓은 출판사 부스들을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다가 저녁이면 한국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외국이 아니라 한국의 지역 엑스포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점심은 늘 소시지와 빵으로 때웠고, 의사소통이 어려워 입은 꾹 다물고 다녔으니 실은 한국보다도 못했다. 4일 동안 외곽에 있는 호텔, 전용 버스, 질리도록 큰 전시장, 똑같은 한국 식당만 왔다 갔다 했다. 그 와중에 그나마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 카메라마저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춥고 서러웠겠는가.

몇 년 후 두 번째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가면서부터 나름의 요령이 생겨났다. 사전에 에이전트들과 미팅 약속을 잡았고, 외국 출판사의 도서 목록도 열심히 체크했다. 이번엔 전시장 옆에 있는 시내 호텔에 묵었고, 밤마다 다른 식당을 찾아내 저녁을 먹었다. 일정이 끝난 뒤 휴가를 내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제는 편집자가 아니니 유명한 작가가 돼서 초청을 받지 않는 한 프랑크푸르트에 갈 일은 없을 듯하다. 대신 우리나라에서도 9월과 10월엔 전국 도서관들이 다양한 ‘독서의 달’ 행사를 갖는다. ‘메뚜기도 한철이네’ 싶을 정도로 올해는 제법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기껏 아침 일찍 열차를 타고 내려가 강연이 끝나자마자 되돌아오기엔 초가을 선선한 날씨가 아까웠다.

나 같은 서울 토박이 작가는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역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중년 여성이 차도 없이 뚜벅이로 가면 돌아다니기가 여의치 않다. 그렇다고 혼자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애매하다. 이래서야 원, 전용 버스 타고 왔다 갔다만 했던 첫 프랑크푸르트 출장과 뭐가 다른가. 미숙한 어린 시절에 했던 실수를 또 저지를 수야 없지.

부산에서 해야 할 두 강연을 한 날로 몰았다. 대신 해운대에 숙소를 잡고 하루를 묵기로 했다. 성수기가 지나간 해운대는 예전에 가봤던 미국 마이애미 백사장처럼 이색적이었다. 내국인보다 오히려 더 많은 외국인들이 모래밭에 앉아 멋진 풍경을 만끽했다. 운동화를 챙겨간 나는 아침저녁으로 바닷가를 신나게 뛰었다. 혼자 편안히 먹을 수 있는 호젓한 식당도 찾아냈다.

울산에서는 강연을 마치고 비건 빵을 파는 동네 서점을 찾아가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통도사에나 가볼까 했는데, 누군가 “태화강에서 패들 보드 타보지 않으실래요?” 권하는 게 아닌가. 이게 웬 모험이냐 싶어 주저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물에 빠질까 겁이 났지만 익숙해지니 평화로운 강태공이 따로 없었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독자 두 분도 같이했는데, ‘마녀체력’ 강의를 듣고 난 직후여서 엔돌핀이 솟구쳤단다.

부산 해운대, 울산 태화강, 목포 갓바위, 여수 아트랜드. 강연 가는 지역마다 명소를 둘러보며 돈도 듬뿍 쓰고, 열심히 홍보한다. 그랑께 ‘서울 촌놈’ 작가들, 많이 불러 주쇼.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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