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대한민국은 지금도 국가건설 중
대한민국 정부수립 7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웬 국가건설이냐고 묻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가건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해방은 우리에게 갑자기 찾아왔다.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이 출범할 때 당시 국민이나 정치지도자들은 국가설계의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았다. 미군정하 정치적 혼돈과 무질서 속에 제헌국회 선거가 치러졌고, 국가체제와 조직, 헌법이 만들어졌다. 서구의, 특히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모방하다시피 해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토의 기간을 거쳐 제헌헌법이 제정되었다. 그런 헌법이 오랜 유교 이념과 관습에 젖어온 우리 국민의 생활을 제대로 규율하거나, 국가운영의 전범이 되기 어려웠다. 제헌헌법은 40년도 안 되어 무려 아홉 번의 개헌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출범은 그리 튼튼한 기초 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없다. 지향하는 가치와 정치경제체제도 혼돈스러웠다. 1946년 8월 미군정청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이 지지하는 이념에 관한 질문에 자본주의 14%, 공산주의 7%, 사회주의 70%로 조사되었다. 출범 후에도 좌우대립이 심각했고, 참담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후 한미동맹과 미국의 영향력 하에서 대한민국은 자유, 반공, 시장경제체제라는 국가정체성을 지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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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시적 제도가 효율적 작동하도록
새로운 국가운영 체계로 개편 필요
국가건설은 사회적 자산 축적과정
‘성공이 부른 실패’ 극복해 나가야
」
지난 75년 대한민국은 경이적 발전을 이뤄냈다. 성공의 역사를 써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 헌법에 규정된 국가권력 구조를 충실히 실행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좋게 보자면 실용적으로 운영해 왔고, 나쁘게 보자면 종종 편법적·탈법적 운영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관행과 관습, 전통적 사고와는 크게 다른 법체계와 삼권분립에 의한 국가지배구조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상황에 따른 편법적·실용적 접근을 자주 해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편법적·탈법적 국가운영은 용인되지 않는다. 이미 정치, 행정, 기업, 언론환경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지식, 교육, 의식 수준이 크게 달라졌다. 정부수립 당시 중등교육을 받은 국민은 1%에 지나지 않았고 국민 4분의 3 이상이 전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제 우리 국민은, 특히 젊은 세대는, 세계 최고수준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야말로 국가건설을 제대로 해나갈 입지를 가진 것이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명목상 보상유인 체계와 실질적 보상유인 체계가 달랐다. 그사이에는 부패와 유착과 특권이 있었고, ‘윤활유’라고 표현했던 금일봉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둘이 거의 같아졌다. 세상이 많이 투명해진 것이다. 공직자에 대한 보상유인 체계도 그렇다. 권력구조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국회권력과 지금의 국회권력은 헌법상 크게 바뀐 것이 없으나 실질적으로 행사되는 권력은 크게 달라졌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대통령의 당 지배, 정치자금 제공, 권력기관을 동원한 의원들의 회유·협박이 없어지면서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 권력이 오롯이 살아난 것이다. 국회 다수당이 이제 행정부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현재 법에 규정된 국가권력 구조, 국가기관과 정부조직의 구성과 역할, 우리 사회의 보상유인 체계가 지금의 환경에서 최적·최선인가? 그것이 우리가 여기서 더 발전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안착하게 하고 한반도 미래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제도인가? 국가 최고엘리트들을 행정과 정치에 끌어들일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이제 법에 규정된 국가지배 구조, 정부조직의 구성과 역할, 명시적 보상유인 체계가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 한국의 모습으로 인도할 수 있는 국가운영체계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대통령 단임제로 주요기관장들 거의 모두 짧은 임기로 끝나 국가의 정책시계가 극히 짧은 나라, 낡은 임금체계와 인사제도로 조기 명퇴가 일상화되고 인재를 키우지 못하는 나라, 필요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못 하고 미봉책만 남발해 저생산성이 고착화되는 경제, 사교육비와 주거비 부담이 끝없이 늘어 아이 낳기가 두렵고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나라를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국가운영 체계와 보상유인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국가건설이란 사회적 신뢰자산과 새로운 사회문화를 창조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동안 초단기간에 이뤄낸 경제적 성공이 가져온 사회문화적 실패들을 돌아봐야 한다. 고질적 분열과 대립, 소모적 파쟁과 갈등에서 합리적 경쟁과 견제, 통합과 협치의 전통을 세워나가 보자. 지금과 같은 분열적 정치로는 어느 하나 제대로 변화와 진전을 이뤄낼 수 없다. 그동안 우리 개인, 기업들은 크게 번영했다. 그러나 국가, 사회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 국가사회의 성공을 이루는 새로운 사회문화, 제도적 토대를 만들어 보자.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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