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실제 고기처럼 마블링까지 살아 있는 배양육은 최초

최준호 2023. 10. 2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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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58〉 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


대형마트 정육점 코너와 다를 바 없었다. 유리로 된 진열장 안 붉은 조명 속에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덩어리 고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꽃등심처럼 지방이 점점이 박혀있거나, 옆으로 길쭉하게 층이 진 삼겹살 모양의 고기덩어리…. 흰색 지방과 붉은 살코기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구석에 놓인 고기 단면에서 흰색 알파벳 ‘POSTECH’ 글자 모양의 지방층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 고기의 정체는 ‘배양육’. 포스텍(포항공대) 출신 박사가 세운 창업 3년차 스타트업 티센파이오팜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 온실가스 배출 주범된 축산업
세포 키워 만든 배양육이 대안
인공장기 연구하다 창업 결심
제조단가 낮추는 기술이 관건

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가 경북 포항 본사에서 직접 만든 배양육을 공개했다. 진열장 위 고기 덩어리에 ‘POSTECH’(포스텍) 글자가 선명하다. 최준호 기자

지난 16일 경북 포항 흥해읍을 찾았다. KTX포항역이 멀지 않은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대부분 땅에 아직 도로만 나있을 뿐 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황량한 들판 한구석에 ‘세포막단백질연구소’란 이름을 단 4층 건물이 있다. 티센바이오팜은 3층에 자리 잡고 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한원일(35) 대표가 기자를 맞았다. 한 대표는 포스텍(포항공대) 조직공학연구실에서 바이오 인공장기를 개발해온 연구자 출신이다. 박사과정 중이던 2021년 11월 지도교수인 조동우 기계공학과 석좌교수와 함께 배양육을 만드는 티센파이오팜을 창업했다. 만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성과가 적지 않다.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10㎏ 덩어리의 배양육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누적 투자도 27억원에 이른다. 미국 나스닥이 수천억원을 투자받은 글로벌 배양육 회사들과 함께 소개한 국내 유일 기업이기도 하다. 소고기 같은 육류 세포를 증식시켜 만들어내는 배양육은 원리가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 세포 배양만으론 실제로 소비자가 먹는 것과 같은 육류를 만들어낼 수 없다. 등심이든 안심이든, 고기 속엔 지방도 있고 근육도 있다. 앞서 창업한 미국이나 이스라엘 배양육 기업들은 아직 치킨 너겟이나 닭가슴살, 소 슬라이스 등 소위 단일 ‘세포 덩어리’ 정도만을 만들고 있다. 실제 육류처럼 고깃결과 마블링이 살아있는 덩어리육을 만들어낸 건 티센바이오팜이 처음이다.

지방층으로 원하는 글자도 넣어

Q : 정육점에서나 볼 수 있는 덩어리 고기 형태가 벌써 가능한 건가.
A : “기술적으로 덩어리 고기 형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다시피 원하는 글자나 모양을 마블링 형태로 넣는 것도 할 수 있다.”

Q : 어떻게 만드는 건가.
A : “소고기로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소의 지방줄기세포와 살코기가 되는 근육줄기세포를 배양기에서 따로 증식한다. 이와 별도로 식품 원료를 활용해 꿀처럼 점도가 높은 바이오잉크를 만든다. 이후 이 둘을 섞어 독자 개발한 압출장치에서 직경 300~400㎛(마이크로미터) 굵기의 미세식용섬유 형태로 짜낸다. 이렇게 나온 것을 다시 배양기에서 넣어 증식한 뒤 원하는 패턴으로 고기 덩어리를 조합해 낸다. 살코기 섬유와 지방 섬유를 활용하면 고기의 미세한 구조뿐 아니라 패턴에 따라서 고기와 같은 외관도 쉽게 구현할 수 있다.”

Q : 이런 기술이 어디서 나왔나.
A : “고기를 만드는 배양육 기술과 인공장기를 만드는 의공학 기술은 매우 유사하다. 박사과정에서 3D 바이오 프린팅으로 간이나 신장·폐를 대신하는 인공장기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문제는 3D 바이오 프린팅은 시간이 많이 걸려 배양육을 위한 대량생산에 맞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창업 이후 직접 고안해 낸 게 수많은 미세 섬유들을 빠르게 압출해 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근섬유랑 거의 유사하게 아주 미세한 섬유를 빠르게 대량으로 뽑아낼 수 있다.”
세계 최초로 덩어리 배양육 만들어

Q : 지금 판매를 할 수 있는 단계인가.
A :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10㎏ 배양육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기술성숙도(TRL)로 보면 4~5단계쯤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세포 배양 단가를 낮추는 연구를 더 해야 한다. 내년 말까지 최고등급 배양육의 ㎏당 제조 단가를 2만원으로 낮출 예정이다. 여기까지가 대량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기술성숙도(TRL:Technology Readiness Level)는 총 9단계로 구성된다. 기초연구가 진행되는 1~2 단계, 실험을 하는 3~4단계, 시제품을 만드는 5~6단계, 시제품의 신뢰성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8단계, 양산에 들어가는 9단계가 그것이다. 티센바이오팜은 내년 중반 첫 시식회를 하고, 이후 파일럿 생산시설 구축을 거쳐, 2026년 중반까지 양산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Q : 연구자가 왜 창업을 했나.
A : “창업을 안 하면 후회할까 봐서다. 배양육은 일종의 식용 인공 장기인 셈이다. 바이오 인공장기를 연구하고 만들고 있는데, 지인 중 한 명이 배양육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땐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며 거절했다. 이후에 조사해보니 배양육은 굉장히 미래지향적이기도 하고, 최근 투자도 많이 이뤄지는 분야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많은 자금이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는 어려움들이 명확했다. 인공장기를 개발해 온 연구자로서 나는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그래서 이 때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지속가능성 의심받는 전통 축산업

그래도 드는 의문. 왜 배양육일까. 세상 천지에 소고기·돼지고기가 널려있는데. 포항 진열장 속의 고기가 그리 탐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배양육은 일종의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다. 이제 막 지평선 너머로 솟아오르는 초기 산업이다. 새로운 트렌드(trend)로 성장할지 장담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시대적 요구는 있어 보인다. 한 대표는 배양육을 해야 하는 첫째 이유로 ‘기후 위기’를 말했다.

식탁에 오를 소와 돼지를 키우는 전통 축산업은 지구온난화의 위기 속에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1%를 넘는다.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트림과 방귀, 축산 분뇨가 메탄가스 덩어리인 탓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기후위기 때문에 육류를 포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오는 게 배양육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배양육은 기존 축산방식으로 생산되는 육류보다 토지 사용량은 99%, 온실가스 배출량은 96%, 에너지 소비량은 45% 줄일 수 있다.

배양육은 머잖아 열릴 우주시대에도 필수품이다. 우주정거장이나 달과 화성 기지에서도 고기를 먹어야 할 텐데, 이를 위해 지구에서 실어보내기는 어렵다. 우주에서 자체적으로 키울 수 있는 배양육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배양육이 단순 이머징 이슈 중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시장 전망 분석으로도 알 수 있다. 컨설팅사 AT커니에 따르면 배양육은 2040년 전체 육류시장의 35%(829조원)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시장은 이미 열렸다. 미국 농무부(USDA)가 지난 6월 배양육 회사 업사이드 푸드와 굿 미트의 세포배양 닭고기 판매를 처음으로 승인했다. 앞서 2020년엔 싱가포르가 닭고기 배양육 요리 판매를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아직은 넘어야할 규제 많아

Q : 사람이 먹는 것이란 점에서 인허가 등 각종 규제가 만만찮을 것 같다.
A : “인허가 받기가 굉장히 어렵다. 배양육이라는 게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어느 부처에서 관할할지에 대한 이슈도 있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청(FDA)과 농무부가 나눠서 인허가를 하는데, 한국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모두 관할한다. 배양육이라는 게 세포를 배양하는 바이오 기술을 활용해서 만든 것이라, 그간 식품 수준의 원료들을 쓰지 않았다. 이젠 이걸 식품 수준에서 인허가를 진행해야 한다. 식약처와 함께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고 있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기후위기가 말뿐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시대에 배양육과 같은 기후테크 기술은 탄소중립을 위한 실질적 대안”이라면서도“투자자나 기업을 하는 입장에서 배양육은 넘어야 할 규제도 많고, 언제쯤 수익이 날 수 있을지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이미 세계가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든 새로운 시장이니만큼 배양육 산업에 대한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 규제 해소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포항=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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