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수미산을 지키는 사람
영화 ‘여덟 개의 산’의 배경은 이탈리아 알프스다. 알프스 산골 마을에 열한 살의 도시소년 피에트로가 여름을 나려고 온다. 피에트로는 동네 아이 브루노와 어울려 산과 계곡을 누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나이 서른이 돼서다. 산기슭에 통나무집을 함께 지으며 우정을 쌓으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인간형임을 깨달아간다.
벽돌공인 브루노는 산을 떠나지 못하는 자다. “나의 일부는 인간이고, 일부는 동물, 일부는 나무”라고 할 정도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확고한 삶의 철학이 있다. “모든 일에는 최선의 방법이 있다.” 그는 통나무집 짓는 것도, 소젖 짜는 것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작가인 피에트로는 어느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자다. “멀리 떠나서 더 새로운 피에트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세상을 떠돌며 방랑을 하던 그가 네팔에서 돌아온 뒤 술을 마시다 브루노에게 묻는다. “누가 더 많이 배울까?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에 오른 자와 여덟 개의 산과 바다를 여행한 자 중에서.”
나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브루노. 어느 쪽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거 같아. 수미산과 여덟 개의 산 중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없는 거니까.” 그러나 이것은 말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마음을 지닌 이들의 우정이 끊어지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수미산을 지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늘 같은 자리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2023년을 보라. ‘피에트로’들은 차고 넘치지만 ‘브루노’는 보이지 않는다. 온통 여덟 개의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려는 자들뿐이다. ‘옳아요’보다 ‘좋아요’를 찾아 방황한다. 그러다 보니 다들 기준점 없이 좌로 부딪히고, 우로 추돌한다. 한 곳을 지키며 기준이 되어줄 수미산 같은 사람은 왜 보이지 않는 걸까.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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