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누가 이 노래를 지었을까
‘저 산 높은 곳에 사는 한 어여쁜 아가씨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젊은이. 그는 소녀의 장밋빛 입술이 자신을 치료해 줄 뿐 아니라, 젊음을 영원하게 하며, 죽음까지도 살릴 수 있다고 노래하며,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지었을까? 묻는다, 그리고 그 노래는 아마도 세 마리의 두루미가 가져다주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렇게 재미있고 시적인 스토리는 독일 민요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 수록되었고, 작곡가 말러(G Mahler)는 이를 가곡으로 만들었다. 민속적인 모티브, 시의 내용에 따라 극적으로 변화되는 선율의 분위기 전환이 일품인 이 가곡 ‘누가 이 노래를 지었을까’(Wer hat dies Liedlein erdacht?)를 ‘황수미 안종도 듀오 콘서트’(지난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노래를 들으며 문학적 텍스트와 음악적 선율의 근사한 만남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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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수미·안종도의 듀오 콘서트
슈만과 말러, 베르크의 리트
가을밤 적신 예술가곡의 향연
시와 성악, 피아노의 멋진 만남
」
시(詩)와 음악이 결합한 독일가곡 리트(Lied)는 피아노가 반주하는 독창이다. 자연과 사랑, 인간의 삶을 노래한 문학적 텍스트가 성악가의 단성부 선율로 펼쳐지고, 피아노의 담백한 사운드가 더해지는 리트는 상당히 매력적인 장르이다. 이러한 리트가 멋진 연주로 구현될 때, 일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이번 황수미 공연이 그러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출발하여 이미 성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소프라노 황수미,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를 오가며 화려한 경력을 펼치는 피아니스트 안종도의 만남은 이날 예술가곡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황수미는 1부에서 모차르트와 슈만의 연가곡을 통해 정통 리트의 세계를, 이어 2부에서는 말러와 베르크, 코른골트로 현대적 감성을 선보였다.
안종도는 피아노를 정면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모습으로 섬세한 파트너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었다. ‘독창회’라는 명칭 대신 ‘듀오 콘서트’라는 타이틀을 사용한 것은 가곡을 ‘성악과 피아노의 이중주’라 부른 슈만의 지적처럼, 두 영역의 비중을 동등하게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황수미는 독특한 질감의 품위 있는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정확한 독일어 딕션을 구사하여 리트에 최적화된 연주자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음성을 정교하게 다듬어 각각의 리트의 특성에 연결하였다. 그래서 황수미의 리트는 일종의 연극 무대처럼, 극적인 흐름을 생생하게 펼쳤다.
예컨대, 낭만주의 가곡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슈만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 제3곡 ‘받아들일 수도, 믿을 수도 없어’에서는 사랑하는 이의 고백에 기뻐하는 마음을 짙은 호소력의 레치타티보적 선율로 노래하였을 뿐 아니라, 거침없는 제스처로 화자로의 완벽한 몰입을 보여주었다. 선율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피아노 선율과 대위적 짜임새를 형성하였고, 열정적인 사랑, 고민과 번뇌, 심각함의 감정을 숨죽이는 긴장감 속에서 명료하게 재현하며 청중을 리트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번 연주회에서 베르크(A Berg)의 ‘7개의 초기 가곡’(1905~1908)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후기 낭만시대의 양식을 습득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베르크의 시도가 전통적 조성과 확장된 조성 어법으로 나타난 작품이다. 훗날 무조음악을 작곡하면서도 전통적인 낭만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준 베르크의 독특한 개성이 릴케·하르트레벤 등 문학가들의 시와 어우러졌고, 황수미는 현대적 화성의 흐름 속에서 베르크적 서정성을 풍부한 성량과 단아한 감성으로 구현하였다. 제6번 ‘사랑의 송가’에서는 아르페지오 선율을 배경으로 ‘정원의 장미 향기가 황홀한 꿈들을 선사’하는 모습을 긴 호흡으로 그렸고, 제7번 ‘여름날들’에서는 불협화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깊어가는 가을밤, 소프라노 선율과 피아노가 멋지게 조화를 이룬 음악을 듣는 시간은 특별했다. 물론 독일어 가사의 노래를 들으며 시와 음악을 연결 짓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프로그램 노트에 친절하게 모든 가사가 독일어와 한국어로 적혀 있어, 연주 전후로 시를 읽으면서 곡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가사 내용을 모르더라도, 아름다운 성악가의 음성과 절제되면서도 정교한 피아노 화음, 그리고 독일어 발음,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성악의 가사도 일종의 사운드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음악의 만남은 이처럼 의미론적으로, 음성학적으로 값진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럼에도 황수미가 긴 시간 독일어를 들은 청중에게 한국가곡 ‘별’(이병기 시, 이수인 곡)을 앙코르곡으로 불렀을 때 그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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