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떨어져 난리였는데 다시 불거지는 ‘전세난’ [스페셜리포트]
전세사기 여파로 찬바람이 불던 전세 시장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서울, 수도권 주요 단지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일부 단지 전셋값은 수억원씩 반등하는 양상이다. 가을 이사철이 도래하면서 역전세난이 아닌 전세난을 걱정해야 할 처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주요 단지 전셋값 급등
잠실엘스 올 초 대비 3억 넘게 올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 84㎡는 최근 보증금 12억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올 초 같은 평형 전세 가격이 8억3000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3억원 넘게 오른 수준이다.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 84㎡는 올 초 6억~7억원대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지만 최근 1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강동구 대장주 고덕그라시움 전셋값도 들썩이는 모습이다. 지난 2월 전용 59㎡ 전세 가격이 4억6000만원까지 하락했지만 최근 7억1000만원에 실거래돼 2억5000만원 뛰었다.
강북권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59㎡ 전세 가격은 올 초 5억5000만원 수준이었지만 최근 7억6000만원으로 2억원 넘게 올랐다.
목동, 중계동 등 인기 학군 지역 전세 수요는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한 모습이다. 총 1350가구 대단지인 목동신시가지8단지의 전세 매물은 10건에도 못 미친다. 양천구 목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올 초까지만 해도 전세 매물이 쌓여가면서 가격이 계속 떨어졌지만 요즘 분위기가 달라졌다. 집주인들이 전세 호가를 높여도 금세 거래가 되는 양상이다. 상대적으로 월세 매물은 인기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심지어 ‘입주장 효과’도 잘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통상 신축 대단지가 입주를 시작할 때는 전체 가구의 60~70%가 임차 물량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전셋값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강남권에서는 이런 효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8월 입주를 시작한 서초구 반포동 2990가구 대단지 래미안원베일리 전용 101㎡ 전세는 최근 27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썼다. 직전 거래 가격은 19억원으로 8억원이나 올랐다. 보통 신축 대단지에서 입주장 효과가 나타난다는 통념을 깨고 전셋값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넷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7% 뛰었다. 서울 전셋값이 반등하기 시작한 5월 셋째 주 이후 누적 상승률을 보면 송파구가 4.37%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성동구(3.24%), 강동구(2.97%), 마포구(2.49%), 강남구(2.13%) 순으로 나타났다. 부동산R114가 올 3분기와 상반기 기준 같은 단지, 주택형에서 새롭게 계약된 전세 거래 가격을 비교한 결과 3분기 서울 아파트 전세 평균 가격은 5억1598만원으로 상반기(4억8352만원)보다 6.7% 올랐다.
전셋값 급등 이유는
전세대출 금리 낮아지고 공급 줄어
전셋값이 다시 급등하는 이유는 뭘까.
2023년 초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2022년부터 이어진 고금리, 전세사기 여파로 임차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세가 찬밥 신세로 전락하면서 역전세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역전세는 2년 전 전세 계약 때보다 전셋값이 하락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상황을 의미한다.
부동산 플랫폼 업체 직방에 따르면 전국 주택 전세 거래는 2021년 하반기 149조800억원, 지난해 상반기 153조900억원으로 향후 1년간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보증금 규모가 300조원을 넘어선다. 2011년 실거래가 공개 이후 최고치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몰리거나 전세 계약 갱신이 급증한 지역의 경우 역전세난 위험이 커졌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월세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낮아지자 전세를 찾는 이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하반기 최고 6%대까지 치솟았던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최근 3~4%대로 떨어졌다.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나 단독, 다가구주택 대신 아파트를 선호하는 임차인이 많아진 점도 달라진 모습이다.
전셋값이 상승세로 반전한 것은 수요는 늘어나는 데 반해 공급이 줄어드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10월 아파트 전세 매물은 6개월 전에 비해 4분의 1가량 줄어들었다. 10월 19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1782건으로, 6개월 전인 4월 19일(4만2289건)에 비해 24.9%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경기와 인천 지역 매물은 각각 28.1%, 26.6%씩 줄어 3만6702건, 8833건에 그쳤다.
실제로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지난 1월 60.7에서 4월(75.7), 6월(87.2), 8월(92.6) 연일 오름세를 보였다. 전세수급지수는 기준선 100보다 높으면 전세 수요가 많고, 낮으면 공급이 많다는 얘기다. 100에 가까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전세 공급보다 세입자 수요가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이제는 저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강해졌음을 알 수 있다. “빌라나 오피스텔 같은 비아파트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파트 전세로 눈을 돌리는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내년부터 ‘입주 가뭄’…전세 더 오른다
전셋값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연 7%를 웃돌고, 매수 심리도 위축된 반면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여전히 낮아 매매를 망설이는 실수요자가 전세 수요에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실수요자 구매력이 약화되면서 매매를 고려했던 수요자도 일부 전세로 돌아서고 있다”며 “전세 공급은 감소하고 수요는 늘어나 전셋값 오름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1~9월 누적 기준 아파트 임대차 거래 가운데 전세 비중은 지난해 57.4%에서 올해 58.8%로 늘었다. 특히 9월 한 달만 기준으로 놓고 보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 1만4022건 가운데 전세 거래는 8707건으로 전체의 62.1%를 차지했다. 2021년 5월(67.2%) 후 2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비중이다.
전세 수요가 늘고 매물이 꾸준하게 소진되고 있는데, 공급까지 줄어들면 전셋값은 더 요동칠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부동산인포가 부동산R114 데이터를 가공한 통계를 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한 해를 통틀어 8259가구(임대 포함)에 그칠 것으로 집계됐다. 1990년 이전을 포함해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입주 물량이다. 이런 입주 기근은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에서 연내 분양을 마치고 향후 4년 내 입주민을 받는 아파트를 다 합쳐도 3만7564가구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부분 2025년(2만5710가구)에 몰려 있고 2026년과 2027년 입주는 각각 1728가구, 1867가구로 쪼그라들어 2년 연속 2000가구를 밑돌 예정이다. 올해 1~9월 서울 월평균 입주 물량이 2609가구였던 점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물량이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서울은 입주 물량이 내년 이후 계속 부족할 전망이어서 전셋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리가 다시 급등하지 않는 이상 전셋값은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2025년 전까지는 신규 입주가 크게 줄면서 전세 물량 공급원인 새 아파트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전셋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전셋값 상승세는 새 아파트 공급이 풀리는 2025년을 앞두고, 구체적으로는 내년 상반기 이후부터 점차 둔화될 여지가 크다. 이 대목에서 집값이 덩달아 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광석 대표는 “전셋값만 마냥 오르기는 어려운 만큼 갭(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 차이)이 좁혀진 뒤에는 집값 상승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전세난은 어디까지나 ‘아파트’에 해당하는 얘기다. 지난해 말~올 초 전세사기·사고가 속출했던 빌라나 오피스텔 시장은 전세 수요가 이탈하면서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9월 누적 기준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전세 비중이 늘어나는 동안 다세대주택은 61.9%에서 53.3%로 급감했다.
비아파트는 매매 거래 시장에서도 한파에 시달린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9월 누적 기준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2022년 9879건에서 2023년 2만7817건으로 181.6%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다세대주택은 2만5835건에서 1만5848건으로 38.7%, 오피스텔은 1만2383건에서 6086건으로 50.9% 각각 줄었다.
시장에선 전세사기 충격이 당분간 영향을 미치면서 비아파트 시장의 한파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광석 대표는 “2년 전 높은 가격에 맺었던 전세 계약 만기가 속속 돌아오고 있어서 비아파트 전세 시장 혼란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단지 유리, 전세보증보험 가입 필수
전셋값 상승 국면에서 계약을 새로 체결해야 하는 실수요자가 주의할 점은 없을까. 전셋값이 요동치는 만큼 무리하게 대출받지 않고 현재 동원 가능한 자금 내에서 전세 매물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다른 지역이나 단지로 이사할 여건이 된다면 1000가구 이상 대규모 아파트가 공급되는 입주 예정 단지에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오는 물건을 선점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다.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통상 공사가 막바지인 새 아파트는 입주 6개월 전부터 집주인(수분양자)이 잔금을 치르기 위해 전세로 집을 내놓기 시작한다”며 “입주 물량이 많은 단지를 사전에 탐색해 공인중개사에게 물량 확보를 요청해놓으면 좋다”고 했다. 자녀 학교 등의 이유로 생활권을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눈높이를 낮춰 지역 내 조금 더 저렴한 전세 물건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시세가 낮다고 아무 매물이나 덜컥 계약하는 건 금물이다. 최근까지도 전세사기 사태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소중한 전세보증금 지킬 방법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애초 전세가율이 80%를 넘겨 ‘깡통주택’ 가능성이 있는 집은 아예 계약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전세가율이 과도하게 높으면 계약 종료 시점에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보증금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가율이 낮더라도 등기부등본상 선순위인 근저당 금액 등이 과도하게 있는지도 꼼꼼히 살피는 것이 필수다. 선순위 근저당 금액이 있으면 세입자는 후순위로 밀리고 만약의 경우에도 전세금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할 여지가 크다.
단, 확정일자를 받는다고 무조건 내 전세금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선순위가 존재한다면 내 전세금은 후순위로 밀린다. 전세권 설정도 마찬가지다. 은행이 근저당을 먼저 잡아놨으면 아무리 전세권을 설정해도 소용이 없다. 즉 굳이 비싼 등기비용을 들여 전세권을 설정하기보다는 확정일자만 받아도 충분하다. 대신 선순위를 확인하는 작업은 필수다. 그다음 일대 주택 시세가 얼마고, 경매에 넘어갔을 땐 얼마에 낙찰되는지, 이때 내 전세금은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는지는 미리 계산해둬야 한다. 이 두 가지만 확인해도 내 전세금을 충분히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 절대 계약하지 말라는 것이 전문가들 당부다.
전세 계약을 마쳤다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필수다. 이삿날 당일에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 우리나라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실거주하지 않으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전세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사 당일부터 실거주를 증명해야 한다. 즉 등기부등본 주소와 주민등록등본 주소가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삿날 당일 전입신고 후 등기부등본에 적힌 주소를 정확히 적어 전입하는 것이 필수다. 확정일자를 받아두면 세입자는 ‘우선변제권’을 갖게 된다. 임대인에게 문제가 발생해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보증금 권리를 주장하는 대항력을 갖출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1호 (2023.10.25~2023.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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