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보다 아우가 더 좋다 ‘핫’한 소부장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10. 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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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부품은 다소 아쉽다는데…
HBM 수혜 속 장비 업체는 질주

“형보다 아우가 더 뜨겁다.”

최근 증권가에서 반도체업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반도체 제조 업체보다 이들을 고객사로 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주가가 더 뜨겁다는 의미다. 반도체 산업 회복 국면 진입, AI 기술 발전 등으로 소부장 기업에 수혜가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소부장 부품사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다만, 소부장 종목 전체가 뜨겁지는 않다. 현재 상승세를 주도하는 종목은 ‘장비’ 관련주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주요 반도체 장비 종목 업체들 10월 합산 시가총액은 올해 1월 대비 130%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소재 업체는 10%, 부품 업체는 23% 상승에 그쳤다. 장비 업체 중에서도 HBM·AI 관련 회사가 가장 뜨거웠다. AI 반도체(AI GPU, HBM 등) 양산에 기여 가능한 장비 업체 주가는 연초 대비 많게는 3~5배 상승했다.

반도체 제조 업체보다 장비 제조 업체의 주가가 더 빠르게 뛰고 있다. HBM 등 생산 장비에 칩 메이커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장비 기업들이 수혜를 보고 있는 덕분이다. 사진은 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이오테크닉스 직원들. (매경DB)
장비 중에서도 후공정에 관심 집중

HBM이 견인한 장비 업체의 수주 질주

반도체 장비 업체 중 가장 뜨거운 종목은 HBM 관련주다. HBM이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투자를 늘린 덕분이다. 특히 후공정 장비 업체에 수혜가 집중됐다.

HBM 열풍 수혜가 후공정 업체에 집중된 이유를 파헤치려면, 반도체 생산 공정과 HBM의 원리부터 이해해야 한다. 반도체 생산은 크게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은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는 과정이다. 이후 기판 위에 만들어진 회로를 하나씩 자르고 배선을 연결하고 패키징한 후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하는 단계가 후공정이다. 전통적으로 칩 미세화를 위한 최첨단 기술이 발전해온 전공정에 비해 후공정은 기술적 난도나 공정 내 중요도가 낮은 편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전공정에서의 반도체 성능 개선이 점차 힘에 부치면서, 후공정에서 미세화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후공정, 특히 패키징 공정에 대형 파운드리와 종합반도체 기업이 진출하고 있는 추세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격변을 불러일으킨 HBM 역시 후공정 기술 발달과 함께 등장한 개념이다. HBM은 후공정 중 패키징 기술과 관련이 깊다. 기판 위에 최대 12개 메모리 트랜지스터를 쌓아 올리는 ‘적층 방식’으로 제조한다. 칩을 연결하는 패키징 기술이 핵심이다. 즉, HBM을 만들려면 패키징 장비 기술을 기존보다 더 끌어올려야 한다. 제조업체들 역시 패키징 장비에 투자를 늘렸다. 관련 장비를 생산하는 후공정 업체에 수혜가 몰린 이유다.

반도체 장비 업체 중 올해 하반기 주가 흐름이 좋은 한미반도체, 이오테크닉스, 에스티아이, 디아이티 모두 HBM 관련주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TC본더’ 장비를 납품한다. TC본더는 열 압착 방식으로 가공이 끝난 칩을 회로 기판에 부착하는 장비다. ‘HBM3E’ ‘HBM3’의 반도체 칩 수직 적층 생산성·정밀도 향상 패키징에 활용된다. 최근 SK하이닉스에 1000억원의 장비를 수주하며 실적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한미반도체의 증권가 실적 전망치(에프앤가이드 기준)는 매출액 3305억원, 영업이익 1122억원이다. 올해 전망치 대비 각각 101%, 209% 증가한 수치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HBM 시장점유율 1위인 SK하이닉스에 HBM 관련 장비를 가장 많이 납품하고 있는 국내 업체가 한미반도체다. 국내 반도체 소부장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종목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오테크닉스와 디아이티는 ‘레이저 어닐링’ 장비로 주목받는다. 반도체 기판에 쓰이는 웨이퍼는 규소로 이뤄져 있다. 자연 상태에서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때문에 이온 주입 공정을 통해 인, 비소, 붕소 등을 넣어 전류가 흐르는 물질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당 공정에서 주입한 원소와 규소가 잘못 섞이면 반도체가 제대로 생산되지 못한다. 이때 레이저를 활용해 규소와 다른 원소가 잘 섞이게 정렬하는 게 바로 ‘레이저 어닐링’이다. 뒤틀림 현상 등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고난도 적층 기술이 요구되는 HBM 공정에서 주로 쓰인다. 디아이티는 9월 18일 SK하이닉스와 149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오테크닉스는 2020년부터 삼성전자의 D램 양산 공정에 레이저 어닐링 시스템을 공급했다. 삼성전자 HBM 설비 투자의 유력한 수혜주로 꼽힌다.

에스티아이는 HBM용 리플로우 장비를 생산한다. 리플로우 장비는 PCB 기판과 칩을 접합할 때 사용하는 장비다. 올해 8월 에스티아이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와 HBM 전용 장비인 ‘플럭스 리플로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후공정 업체에 가렸지만, 전공정 업체를 향한 기대도 상당하다. 메모리 반도체 회사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있어서다. D램 성능 개선을 위해 전공정 미세화 관련 장비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D램 미세화의 핵심인 고유전율 장비(High-K·유전율을 높여 반도체 수율을 올려주는 장비) 공정을 국내 고객사 내에서 100% 가까이 담당하고 있는 주성엔지니어링을 주목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장비 外 소재·부품 기업 전망은

결국엔 수요 증가가 답

수주 실적을 연이어 쌓고 있는 장비 업체와 달리 소재·부품 업체는 아직 힘든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소재와 부품은 장비보다 반도체 경기에 더 민감하다. 장비는 반도체 경기가 안 좋아도, 제조 업체들이 장비 투자를 늘리면 수혜를 받는다. 소재, 부품은 다르다. 반도체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는 유례없는 감산이 진행 중이다. 주요 제조사 가동률은 역대 최저점을 경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 방어를 위해 공급 업체들은 계속해서 감산을 지속 중이다. 증권가와 반도체업계는 메모리 공급 업체 재고가 정상화될 때까지, 감산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HBM과 AI 관련 반도체의 생산이 늘어나고 있지만, 부족하다. 전체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적다. 스마트폰, PC, 서버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통 IT 산업에서 수요가 늘어나야 한다. 류형근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공급 업체들이) 가동률을 현저하게 낮춰야 할 정도로 재고 부담은 크고, 생산량 증가를 위한 투자는 당분간 어려운 환경이다. 우선은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가동률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전망하는 소재·부품 업체 정상화 시점은 2024년 2분기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는 D램과 낸드플래시의 생산량이 올해 저점을 찍은 뒤, 2024년부터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D램인 2024년 1분기, 낸드플래시는 같은 해 2분기부터 본격적인 수요 상승이 기대된다는 예측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1호 (2023.10.25~2023.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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