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화 번개장터 대표 “패션 리커머스 트렌드, 이 손안” [CEO 라운지]
코로나 팬데믹 동안 국내 중고거래 시장이 급성장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이들이 눈에 보이는 물건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중고거래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결과다.
성장기를 거치며 중고거래 플랫폼은 ‘양강 체제’로 재편됐다. ‘당근(전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다. 특히 당근과 다른 노선을 택하며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는 ‘번개장터’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집 근처 직거래를 기반으로 한 지역 커뮤니티에 초점을 맞춘 당근과 달리, 번개장터는 중고거래 그 자체에 집중하면서 덩치를 빠르게 키워가고 있다. 전국구 중고거래, 그중에서도 패션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투자를 늘린 전략이 먹혀들었다. 번개장터 거래액은 2019년 1조원에서 지난해 2조5000억원까지 커졌다. 앱 월간 순사용자 수(MAU) 역시 올해 250만명까지 뛰었다.
번개장터의 본격적인 성장세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 최재화 대표(38)다. 2020년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번개장터에 합류한 이후 역량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2022년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다. 최 대표 합류 후 번개장터가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갖게 되면서 성장에 탄력을 받았다는 평가다.
1985년생, 중고거래업계 세대교체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최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주로 소비재 기업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해 기업 전략을 컨설팅해왔다. 이후 세계 최대 맥주 기업 AB인베브의 아시아 크래프트 맥주 마케팅 디렉터로 활약했다. 특히 구스아일랜드 브랜드를 중국과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론칭하며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번개장터 합류 직전에는 구글코리아에서 국내 유튜브 유저 마케팅을 총괄했다. 소비재와 IT 플랫폼 비즈니스 경험을 두루 쌓은 인재로 주목받았다.
2020년 3월 번개장터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합류했고 2021년에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역임, 2022년에는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번개장터가 올해 8월 진행한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리뉴얼에는 최 대표가 중고거래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새 비전은 ‘세상 모든 물건에 가치를, 소비를 지속 가능하게’다. 최 대표는 “세상에 버려지는 물건 중에는 쓸 만한 물건이 잔뜩 있다. 누구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며 “지속 가능성이 중요해지면서 앞으로 2차, 3차 판매 시장이 훨씬 더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라고 말했다.
‘패션 중고거래’에 집중
패션 카테고리 거래액 1조원 돌파
최 대표 합류 이후 번개장터는 추구하는 바가 명확해졌다. “과거 번개장터가 전방위적으로 확장했다면, 지금은 우리가 잘하는 것들을 명확한 색깔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 대표가 점찍은 키워드는 의류 중고거래를 뜻하는 ‘패션 리커머스’다. 번개장터 전체 거래 중 78% 이상을 차지하는 MZ세대가 명품과 브랜드 패션 상품을 활발히 거래하는 데 주목했다. 최근에는 자사 소개 문구를 ‘패션 중고거래 앱’으로 바꿨을 정도로 힘을 주는 모습이다.
올해 초에는 중고 패션 트렌드를 전문으로 분석하는 ‘트렌드 리포트’를 업계 최초로 내놓는 등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정체성을 명확히 해나가고 있다. 최 대표는 “최근 1020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패션 소비 유통기한이 점점 짧아지면서 중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패션 시장에서 중고는 더 이상 낡고 저렴한 제품이 아닌 하나의 새로운 유통 채널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투자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말 시작한 ‘번개케어’가 대표적이다. 정품 검수는 물론 세척과 폴리싱(광택) 같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중고거래 토털케어 서비스’다. 번개장터 전문 감정사가 다양한 브랜드 상품을 검수·감정해 안전과 속도를 높였다. 검수부터 상품 출고까지 ‘당일 출고율’이 98%에 이른다. 지난 12월부터는 서울 성수동에 연면적 약 530평 규모의 ‘정품검수센터’ 운영도 시작했다.
성과도 있었다. 지난해 번개장터 패션 카테고리 거래액은 9700억원을, 거래 건수는 1000만건을 돌파했다. 3년 전인 2019년(거래액 4700억원, 거래 건수 650만건)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2배 이상 커졌다. 올해 누적 거래액은 1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편의점·우체국 택배도 ‘앱’에서
중고거래 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불편 사항, 이른바 ‘페인 포인트’ 개선에도 전력을 다하는 중이다. ‘안전’하면서도 ‘쉽고 빠른’ 거래가 골자다.
‘번개페이’ 서비스는 중고거래 고질적인 문제인 사기 피해를 크게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매자가 물품 수령 후 구매를 확정할 수 있는 에스크로 결제 시스템으로, 번개페이 이용 시 사기 피해 발생률은 0%다. 2022년 한 해 동안 ‘번개페이’ 거래액은 전년 대비 35%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거래액이 1조원이 넘는다.
전국구 중고거래에서 필수인 ‘택배 거래’도 최 대표 취임 후 접근성이 훨씬 나아졌다.
올해 1월 GS네트웍스와 제휴를 통해 ‘GS25 반값택배’ 서비스를, 6월에는 CU와 함께 ‘CU 알뜰택배’를 시작했다. 번개장터 앱에서 택배 서비스를 선택한 후 원하는 편의점을 방문해 간단히 택배를 접수시키는 서비스다. 최근에는 업계 최초로 우체국과 제휴를 맺는 데 성공하며 우체국 택배를 앱으로 신청할 수 있게 됐다. 편의점은 물론 우체국 소포까지, 전국으로 물류망이 확대되면서 중고거래 접근성이 크게 올랐다.
요새는 오프라인으로까지 접점을 넓히는 중이다. 한정판 스니커즈 컬렉션 ‘BGZT 랩’과 명품 편집숍 ‘BGZT 컬렉션’까지 매장을 3개로 늘렸다. 올해 4월부터는 패션 매거진과 인플루언서, 빈티지숍 등과 협업을 통해 ‘플리마켓’을 활발히 개최하고 있다. 특히 올해 10월 서울 성수동에서 이틀간 진행된 ‘번개하자 플리마켓 페스티벌’에는 셀러 104팀과 방문객 4500여명이 참여하는 등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수익성 개선도 자신감
거래 단가 오르고 해외 수요도↑
대부분 플랫폼이 그렇듯 번개장터에 남은 과제는 ‘수익성 강화’다. 번개장터는 지난해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영업손실 348억원을 기록했다. 최 대표는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이용자가 기꺼이 일정 부분 사용료를 지불할 만큼 편리하고 안전한 기능을 계속 늘려나간다면 이를 기반으로 충분히 수익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명품·브랜드 등 패션 거래 비중이 커지면서 거래 단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도 향후 수익성 관점에서 호재다. 현재 번개장터 1회 평균 거래 단가는 11만원 정도다. 당장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영업손실을 50억원 가까이 줄였고 올해도 적자폭 축소가 전망된다.
해외 유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전망을 밝히는 요인 중 하나다. 특히 최근 한류에 힘입어 ‘스타굿즈’ 해외 구매 수요가 크게 늘었다. 연예인 포토카드나 응원봉 같은 공식 아이템을 비롯해, 팬들이 직접 제작해 거래하는 비공식 굿즈까지 제품 범위도 넓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1호 (2023.10.25~2023.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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