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물고 술병 깨는 '이두나!'…"마음 아팠다" 수지가 꼽은 장면
“나 원래 욕받이야. 아무나 아무렇게나 아무 말 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향한 무분별한 악성 댓글에 더는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아이돌 스타. 이상하리만큼 무덤덤한 모습은 반복된 상황에 대한 익숙함 또는 체념인 듯해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지난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9부작 시리즈 '이두나!'는 대중에게서 숨어버린 인기 아이돌 이두나(수지)가 평범한 대학생 원준(양세종)과 만나 느끼게 되는 설렘, 끌림, 그리고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해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로 청룡시리즈어워즈 여우주연상 등을 거머쥐었던 배우 수지(29)가 1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흡연, 욕설 등 그간 하지 않았던 다소 거친 연기에 도전했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수지는 “이두나 캐릭터를 통해 사람들이 모르는 내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출연을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 “사람이 다 그렇듯 저 역시 짜증이나 화를 낼 때가 있는데, 평소엔 이런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다”면서 “예민하거나 경계할 때의 표정들은 대중들은 못 보셨겠다 싶어서 신선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극 중 이두나는 생각을 직설적으로 내뱉고,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당찬 성격이다. 화가 나면 주변 사람 의식하지 않고 험한 욕을 하고, 술병을 집어 들고 덤비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개의치 않고 크게 욕을 하거나, 이미지 관리 없이 못되게 마음대로 하는 연기가 재미있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런 두나가 미워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제멋대로인 성격을 조금 더 극명하게 표현해내는 데 신경을 썼다”면서 “보는 분들이 점차 ‘아이돌 이두나’가 아닌 ‘사람 이두나’로 봐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극 초반 예민하고 날 선 모습의 이두나는 수지의 이러한 바람과 함께 점차 변해간다. 추운 날씨에 얇은 옷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며 멍하니 앉아있던 그는 원준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안정감과 웃음을 찾아간다. 수지는 “감정 기복이 심한 두나가 쉽게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공감대가 있었다”고 했다. 이두나가 악성 댓글을 접했을 때의 장면을 꼽으며 “마음이 시커멓게 탔음에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모습에서 공감이 됐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2010년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했을 당시 수지의 나이는 열여섯, 그 역시 이두나처럼 도망치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수지는 “숨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고 했다. “두나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돌이켜보니, 저는 그 시기를 일로 견뎌낸 것 같다”면서 “다른 의미의 회피일 수도 있지만, 일하면서 감정을 느낄 틈을 만들지 않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분산시켰던 것 같다”고 했다.
어느덧 활동 14년 차에 어엿한 배우가 된 수지는 달라진 이두나처럼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는 “예전엔 안 좋은 반응, 평이 정말 힘들게만 느껴졌다. 활동을 하다 보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감독·스태프와 하나 되는 현장에 있을 때면, 이 일(배우)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행복하다”면서 “이제는 그런 것들에 집중하며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른을 앞둔 그는 “앞으로 더 성숙해질 자신이 기대된다”면서 “안 해본 역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매력적일 것 같다”며 악역 연기에 대한 호기심도 드러냈다. 그는 현재 내년 중 방송 예정인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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