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1년 화두는 ‘현장’ ‘기술’ ‘인재’…풀어야 할 숙제 세 가지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난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온양캠퍼스. 반도체 시장 불황 속에서 생산라인을 살펴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제시한 화두는 ‘인재’와 ‘기술’이었다.
뒤이어 열린 비공개 직원 간담회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사업 전략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이 회장은 “인공지능(AI)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높은 용량의 서버용 메모리 패키지가 필요하다”면서 “(경쟁사를) 이겨내야죠”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삼성이라는 초거대 기업을 이끄는 총수로서 느끼는 절박함과 위기의식이 묻어난다”고 말했다.
27일로 회장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재용 회장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그는 글로벌 경기 침체, 반도체 불황 등 악조건 속에서 삼성 수장으로서의 첫 1년을 국내외 사업 현장을 누비며 보냈다. 기술 혁신과 선제적인 투자에 대한 강조도 잊지 않았다.
투자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3조원)를 투자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과 앞으로 20년간 300조원이 투입될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이다.
‘제2의 반도체’로 키웠던 신사업도 하나둘 열매를 맺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5월 반도체·바이오와 미래 먹거리 발굴에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직원 30명으로 시작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6세대(6G) 이동통신 역시 이 회장이 미래 사업으로 점찍은 분야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 성공한 뒤 삼성리서치 산하에 차세대 통신연구센터를 설립해 선행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회장이 가진 가장 큰 자산으로 꼽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해 해외 기업인‧정치인‧왕족 등 ‘빅샷(거물)’과 쉴 새 없이 만나며 삼성의 미래 전략을 구체화하고 비전의 기틀을 다졌다.
국민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발걸음도 분주하다. 그는 회장 취임 첫 행보로 사장단 회의나 해외 출장, 계열사 방문 대신 ‘미래 동행’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협력회사를 찾았다. 특히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단순히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산업 생태계 선순환의 성장 구조를 만드는 것이 곧 삼성의 생존전략이자 성장 디딤돌이라는 생각이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삼성 준법경영의 ‘파수꾼’ 역할을 하겠다는 목표 아래 독립적인 외부 감시기구로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가 있지만 준법경영을 넘어 지속가능한 삼성식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수술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은 26일 이사회 중심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선임(先任)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사외이사를 대표하는 선임사외이사를 뽑아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날 삼성SDI와 삼성SDS를 시작으로 대표이사를 포함한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중공업, 호텔신라 등 8개 계열사에 선임 사외이사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는 사법 리스크 역시 풀어내야 할 족쇄다. 그는 회장 취임 1주년인 27일에도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영 보폭을 지금보다 더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이제는 새로운 삼성의 미래 가치를 실행에 옮겨야 할 시간”이라며 “컨트롤타워 재정비, 시스템을 갖춘 의사결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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