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부산 엑스포 경쟁국' 사우디 방문 적절했나

오태규 2023. 10. 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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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사우디에 투자 유치 사정하는 '을' 처지... 이-팔 분쟁 와중에 투자 유치 방문도 부적절

[오태규 기자]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리야드의 야마마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다. 2023.10.22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21일부터 4박 6일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중동 방문은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벌써 올해에만 10번째 해외 방문입니다. 11월 중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포함해 연말까지 두 차례 정도 더 해외 방문 일정이 있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5월 10일 취임) 1년 차인 지난해에는 세 차례만 해외 방문을 했습니다. 6월 말에 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9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조문과 유엔 총회 참석 및 캐나다 방문, 11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이 전부였습니다.

'월례 행사'처럼 잦은 해외 순방 … 비용 급증, 효과 미흡

집권 2년 차인 올해에는 2월만 빼고 매달 해외로 나갔습니다. 9월에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인도네시아, 인도)와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두 차례 비행기를 탔습니다. 마치 해외 방문이 월례 행사처럼 굳어진 모양새입니다. 덩달아 대통령의 해외 방문 예산도 급증했습니다. 올해 정상외교에 배정된 비용 249억 원을 다 소진하고 예비비 329억 원을 새로 끌어와 총 578억 원이 됐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셈입니다.

최근 들어 정상이 참석해야 하는 국제회의가 늘고 정상외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대통령의 해외 출장이 늘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도 집권 2년 차(2018년)를 찾아봤더니 9차례 해외에 나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횟수가 아니라 정상외교 효과입니다. 더욱이 윤 정권은 유독 긴축재정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경비를 아껴 쓰는 게 도덕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맞습니다. 문재인 정권 때는 정상외교 예산이 가장 컸던 해가 2022년인데, 262억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도, 윤 대통령이 정상외교에 예산을 펑펑 쓰고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정상회담 효과에 대해서는 여야 사이에 평가가 엇갈립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편중 외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해외 방문 일정에서도 드러납니다. 10월까지 10차례 해외 일정 중에서 미국이 2번(유엔 총회 포함하면 3번), 일본이 2번을 차지했습니다. 정상회담의 방향도 한·미·일 협력 강화와 중국·러시아 비판에 맞춰진 게 대부분입니다. 이런 탓에 한반도의 안보와 경제가 더욱 유동적으로 변하고 불안해졌습니다. 과다한 비용 사용에 비해 정상회담 성과가 미미하다는 평가를 충분히 들을 만합니다.

이번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방문은 잦은 정상회담, 과다한 비용과 미미한 효과에 대한 비판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다른 때보다 열심히 순방 성과를 강조했습니다. 한-사우디아라비아의 정상 공동성명이 43년 만에 채택됐다는 점과 두 나라 순방을 통해 27조 원(약 202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계약을 얻어냈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내놨습니다.

1980년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을 시작으로 이제까지 여덟 차례의 정상 왕래가 있었지만, 양국의 관심사를 포괄적으로 담은 정상 공동성명이 나온 것은 사실상 처음이니 내세울 만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27조 원 투자 유치는 액수는 크지만, 흔히 이런 종류의 약속이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하므로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원 외교를 앞세운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도 순방 때마다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고 자랑했지만, 결과는 속 빈 강정으로 끝난 것을 봐왔습니다.

이-팔 분쟁 와중에 엑스포 유치 경쟁국 방문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3일(현지시간) 리야드의 네옴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정권의 대규모 투자 유치에 대한 선전·홍보에도 불구하고, 이번 순방을 보는 국민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하나는 2030 부산 엑스포 유지에 대한 영향입니다.

잘 알다시피,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 엑스포 유치를 둘러싸고 우리나라와 경쟁을 벌이는 나라입니다. 또 어느 나라가 유치국이 될지는 한 달여 뒤인 11월 28일 파리 국제박람회(BIE) 총회에서 결판이 날 예정입니다.

그래서 윤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와 관련해 어떤 얘기를 나눌지가 관심사였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번 방문 중에 엑스포와 관련한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벌인 뒤 결과에 승복할 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실제 두 나라 사이에 엑스포 유치와 관련해 얘기가 있었는데 발표는 안 한 것인지 대통령실의 설명대로 얘기 자체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상외교에서 나눈 이야기가 100% 공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방문이 과연 엑스포 유치전에서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가늠해 볼 수는 있습니다. 저는 이번 방문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쪽이 훨씬 유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은 '제1호 영업사원'을 자임하며 이번 방문의 초점을 경제 외교, 즉 투자 유치에 맞췄습니다. 쉽게 말하면 투자를 해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갑이고, 투자 유치를 사정하는 윤 대통령이 을입니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가 갑을 관계를 이용해 비공식적으로 엑스포 유치전에서 한국의 양보를 요구했을 수 있습니다. 설사 그런 요구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유치전에서 이런 상황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유치 결정 한 달을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것은 다른 나라가 보더라도 뭔가 '물밑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낳기 아주 좋은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리야드의 야마마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의 영접을 받은 뒤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하튼 윤 정권은 이와 관계없이 부산 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자세입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윤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하기 직전인 20일 유럽 및 아프리카·중동 지역 72개 공관장과 화상회의를 하며 부산 엑스포 유치 지지표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지시했습니다. 한 달 뒤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또 하나의 관심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촉발한 중동 분쟁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중동이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소란스러운데 이런 때 중동을 방문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1월 아랍에미리트 방문 때 '이란은 아랍에미리트의 적국이고,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와 동맹국이니 이란은 우리나라의 적'이라는 설화를 낳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이번 중동 순방 때는 아랍에미리트 때의 교훈이 있어서였는지 중동 문제와 관련한 큰 실언은 없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한-사우디 공동성명에 우리나라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문구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양측은 동 분쟁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한 정치적 해결과 항구적 평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라는 대목입니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현재 나눠진 영토 안에 각자의 나라를 세우자는 안입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이 거부하고 있는 안입니다.

이 문구는 이제까지 취해왔던 우리나라의 이-팔 사태에 관한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할 건 없습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입을 모아 하마스의 테러를 규탄하고 있는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면이 있습니다. 줄곧 대외관계 전반에서 미국 추종적인 자세를 취해온 윤 정권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입니다.

윤 대통령은 12일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상원의원 6명을 만난 자리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무차별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 바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과 만날 때 얘기와 미국 사람 만날 때 얘기가 이렇게 엇박자를 내면 외교적으로 곤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분쟁이 한창인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분쟁 해결에 초점을 둔 방문이 아닌 한 아무리 잘해도 칭찬을 받기 힘듭니다. 세계의 관심이 온통 이-팔 분쟁의 추이에 몰려 있는데 투자 유치를 위한 한국 대통령의 중동 방문이 주목받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미디어에는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씨 동정과 사진 화보를 비롯한 여러 기사가 화려하게 지면을 장식했지만, 비교적 윤 대통령의 동정에 관심이 큰 일본 미디어에서도 이번 방문과 관련한 기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번 윤 대통령의 중동 방문은 다시금 정상회담도 시간, 장소, 상황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한 행사였습니다.
 
 박6일 간의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6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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