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니게 해주는 걸 감사하라? 엄마인 나는 그럴 수 없다 [류승연의 특수교육 A to Z]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기자말>
[류승연 기자]
▲ 모든 특수교육대상자에게 개별화교육은 의무이자 권리다. |
ⓒ unsplash |
학교에 갔던 아이가 집에 와서 말합니다. "특수학급에 다니는 친구가 과학 시간에 실험도 안 하고 교실 막 돌아다니면서 수업 방해했어". 개별화교육 지원을 받지 못해서 그럽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집에 와서 말합니다. "우리 반 홍길동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해. 그래도 선생님이 혼내지 않고 그냥 놔둬". 개별화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중입니다.
특수교육의 근간은 개별화교육이고, 그 출발점은 개별화교육회의입니다. 특수교육대상자는 학생 개개인에 따라 교육목표, 생활목표, 교육방법, 관련 서비스가 포함된 계획을 따로 수립하고 그에 따라 교육을 받습니다.
모든 특수교육대상자에게 개별화교육은 의무이자 권리이지만 실제의 교실 현장에서 개별화교육은 모두가 만족할 만한 형태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개별화교육회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개별화교육의 수립
개별화교육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하 특교법)'에 명시된 법적 의무 사항입니다. 모든 특수교육대상자는 매 학기의 시작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개별화교육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개별화교육지원팀이 매 학년의 시작일로부터 2주일 이내에 구성되어야 합니다. 교육지원팀은 보호자, 특수교육 교원, 일반교육 교원, 진로 및 직업 교육 담당 교원, 관련 서비스 담당 인력 등으로 구성됩니다.
개별화교육회의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가 전반적인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잘하지 못하고 유독 어려움을 보이는 부분(교육적, 사회적, 심리적, 행동적)이나 특정 수업(담임 수업이나 교과 수업 등)이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원인 분석), 그렇다면 어떤 지원(교육청 '긍정적 행동지원'을 포함한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을 통해 어려움을 줄이고 적응력을 높일 수 있을지를 논의합니다.
이번 학기의 교육목표와 생활목표(밥 먹고, 옷 입고 벗고, 물건 정리하고, 화장실 가고 등 일상생활 영역과 친구들과의 사회적 관계 맺기 영역까지)는 어떻게 잡았으면 좋겠는지, 목표를 위한 접근방식(교과서 및 학습교재 선택 포함)은 어떤 형태로 이뤄졌으면 좋겠는지 등도 모두 논의합니다. 이것이 특수교육에서 말하는 개별화교육입니다.
통합교육에서의 개별화교육
특교법에 따르면 개별화교육지원팀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담임 교사, 특수교사, 보호자가 함께하는 3자 회의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입니다.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책임은 특수교사에 있다고 생각하는 일반 교사들이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특수교사와 보호자가 단둘이 만나 상담인 듯 아닌 듯 애매모호한 개별화교육회의를 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통합교육의 개별화교육회의에선 특수학급에 가서 수업받는 시간표를 정하고 이때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할지 등을 논의합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통합교육을 받는 수업 시간입니다.
개별화교육회의를 통해 '어떻게 통합교육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까지 이어져야 하지만 사실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시피 하는 실정입니다.
통합교육을 받는 특수교육대상자는 일반 교과 과정을 따릅니다. 주요 과목의 경우 특수학급에서 특수교사에 의해 개인별 수준에 맞는 개별화교육을 받지만 원래 반에서 수업받는 나머지 교과 과정은 일반교사인 담임 몫이 되는 현실입니다.
어려운 국어와 수학만 아니면 특수교육대상자가 나머지 수업(사회와 과학, 실과와 미술 등)은 다 따라갈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랬다면 애초에 특수교육대상자가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통합교육 받는 동안 학습 교재는 어떻게 할 것인지, 통합교육에서의 학습지원을 특수교사가 할 것인지 담임이 할 것인지, 지원 인력을 붙일지 말지 등이 모두 논의되어야 하지만 이런 부분은 '현실적인 여력'을 이유로 잘 시행되지 않곤 합니다.
만약 '행동의 문제'로 통합교육 안에서 사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특수교육대상자가 있다면 개별화교육회의를 통해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긍정적 행동지원' 프로그램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통합교육 안에선 이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학교장 자체가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외부 개입을 꺼리기도 하고 담임이나 특수교사 입장에선 어찌 됐든 '일이 늘어나는 것'이기에 교사 선에서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그런 전문적인 교육이나 지원은 특수학교에 가서 받으세요. 여기(통합교육)에선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 지체장애 공립 특수학교인 서울나래학교를 방문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2023.4.24 |
ⓒ 연합뉴스 |
전문적인 교육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학교로 넘어가 봅니다. 저도 아들이 특수학교로 전학했을 때 드디어 뭔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겠다는 큰 꿈을 꾸었어요.
아들이 특수학교에 다닌 지 6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제가 포기한 게 몇 가지 있는데요. 가장 큰 것 두 개만 꼽아볼게요. 바로 개별화교육회의와 특수교육, 이 두 가지를 포기했습니다. 아들 교육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자꾸만 벽에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포기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특수학교라서요.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특수학교라는 태생적 문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개별화교육, 특수학교에선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특수교사가 매 수업마다 학생 개인별 수준에 맞는 교육적 접근을 하기 위해 애쓰곤 있습니다. 하지만 한 반 6명 장애 학생을 동시에 교육해야 하는 현실에서 수업마다 하나의 주제로 6가지 서로 다른 개별화교육에 따른 접근을 한다는 건 처음부터 어불성설입니다.
특수학교에 오니 개별화교육회의 자체가 사실상 의미 없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일부 특수교사들도 말합니다. "개별화교육회의 그거, 통합교육에서나 필요한 것을 특수학교에서 하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 쓸데없는 것"이라고 일축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개별화교육회의도 형식적으로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여러 사람이 대규모로 참여해 회의하는 개별화교육지원팀은 학생이 큰 사고를 쳤을 때(학폭이나 문제행동 등)나 꾸려지고, 보통은 담임과 짧으면 20여 분의 상담으로 끝나기도 하며, 많은 경우는 전화 통화나 서면으로 대체하고 지나가는 현실입니다.
물론 특수학교에서도 개별화교육이 잘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단 초등학교 때까진 어느 정도 개별화교육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다 같이 어리다 보니 '교육'보단 생활지도적인 영역, 즉 '돌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하지만 '돌봄'보단 '교육'에 무게가 실리는 중등 이후부턴 개별화교육이라는 게 참 어려운 상황에 직면합니다.
일부 경증의 장애 정도를 보이는 학생에게도 개별화교육은 잘 진행됩니다. 특수학교에도 경증 학생이 있기 마련이고, 특별히 행동의 어려움 없는 이들은 학습 목표만 잘 잡으면 한 학기 동안 개별화교육에 따른 학습 과제를 잘 수행해 나갑니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꾸준한 지원이 필요한 중증 장애 학생에게는 개별적 지원에 한계가 있는 특수학교 시스템이 아쉽고, 약간의 학습적 지원만 해주면 얼마든지 성장 가능성 있는 경증 장애 학생에게는 전문화된 (교과별 교사가 따로 있고, 특수교육 교과서로 공부하는) 특수학교 시스템이 잘 맞아 보입니다.
▲ 교실 수업 (자료사진) |
ⓒ 연합뉴스 |
학교라는 생애 최초로 마주한 사회집단 안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학생의 '참여'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집단 안에서 '겉도는 개인'이 아닌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만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힘든 영역 중 하나인 사회성 발달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특수교육 현실에선 개별화교육이 아직도 미진하기만 합니다.
물론 어딘가에선 개별화교육회의도 짱짱하고, 통합교육 지원도 충분하며, 특수학교 안에서도 제대로 된 개별화교육이 실현되는 교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례들은 아마도 교사 개인이 피와 땀을 쥐어짜서 일궈낸 '예외적인 사례'일 가능성이 큽니다.
특수교육에서 개별화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 구조적 문제, 시스템의 문제, 정책과 예산의 문제 때문이거든요. 물론 개인의 문제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극소수일 겁니다.
특수교육의 근간인 개별화교육, 개별화교육을 위한 출발점인 개별화교육회의가 실제론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토로했습니다. 다음 시간부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을 하나씩 찾아가 보려 합니다.
'니 자식이 장애인인데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고 살아.' 솔직히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걸로 끝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엄마인 나는, 그래선 안 되는 거잖아요.
제 아들을 비롯한 모든 특수교육대상자의 학교생활이 더 많은 '참여'와 '의미'로 가득찰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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