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 생선의 심정"...이재명 '통합' 외침에도 불안 떠는 비명계
[류승연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
ⓒ 남소연 |
"언제 내려쳐질지 모른 채, 도마 위에 누운 생선이 된 심정이에요. 지금 (당이) 하는 게 그렇잖아요. 누구는 쳐야한다고 하고 누구는 내버려두라고 하고"
대표적인 비명계(비이재명계) 인사로 꼽히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그는 26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 대표의 '통합' 일성과 관련한 진행자의 질문에 짙은 의구심을 표현했다. 스스로를 '생선'으로 묘사한 그의 말에는 당으로부터 언제든 내쳐질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배어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무에 복귀한 후 연일 '통합'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통합의 대상자'인 비명계 의원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이 대표가 통합을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게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지난 18일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조응천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
ⓒ 유튜브 갈무리 |
무엇보다 조 의원을 포함한 '가결파' 의원들에 대한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데도 당 지도부가 비명계를 보호하기 위한 행보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항의 수위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지난 24일 또다른 '비명계' 이원욱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에 내걸린 현수막이 대표 사례다. 현수막에는 '민주당 내의 검찰독재 윤석열의 토착왜구 당도5 잔당들'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원욱, 이상민, 설훈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얼굴이 새겨졌다.
현수막에는 "나에게 한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를 백번 천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라는 문구도 적혔다. 앞서 조 의원은 이야기했다.
"이 뿐만 아니라 (강성 지지자들이) 윤영찬 의원에게 '윤석열에 부역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고 (윤 의원이 이 현수막을 건 당원을 징계해달라는) 제소를 했거든요. 또 광역단체별로 친명과 비명을 대비시켜두고 친명을 밀어주자는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어요. 이런 행위야말로 당의 통합을 저해하는 건데 (이 대표는) 말로는 (비명계 징계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제지도 안 해요."
이상민 의원 또한 조 의원의 지적에 말을 보탰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앞선 '현수막 사건'을 언급하며 "'남은 1발의 총알' 운운은 너무 부끄럽고 소름 끼칠 지경"이라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근본가치로 여기는 민주당이 이 정도로 썩고 망가졌는지 한숨이 절로 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는 수수방관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즐기고 있는 것인가"라며 "통합? 헛웃음이 난다"고 적었다.
이 대표 향한 '비명계'의 일성 "통합, 행동으로 보여달라"
단순히 강성 지지층만의 문제로 치부할 문제도 아니다. 당 지도부 내에서도 가결파 의원들의 체포동의안 찬성 투표를 '해당 행위'라며 이들에 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대표가 복귀를 앞둔 지난 17일 MBN은 이 대표가 최근 당 지도부에 가결파 의원들을 징계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친명계 최고위원들은 이 내용을 부인하며 되레 징계를 예고했다(관련 기사: 민주당 "가결파 의원 징계 없다?... 사실과 달라" https://omn.kr/261o8).
비명계는 이러한 상황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이원욱 의원은 26일 페이스북 글에서 "당 대표가 35일 만에 당무에 복귀하며 통합의 메시지를 냈다. 환영한다"면서도 "(통합을 위해서는) 체포동의안 표결 문제에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가결표와 부결표 중 무엇이 해당 행위냐"고 물었다. 그는 지난 6월 김은경 혁신위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1호 안건으로 내걸었던 일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사실상 당론이었던 불체포특권 포기를 지켜나가는 것 역시 하나의 원칙"이라고 했다.
이어 이 의원은 이 대표를 향해 "당론을 거긴 것은 해당행위이며, 해당행위를 하도록 선동한 의원들과 그에 동조한 개딸의 행패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말로 묵과하며 어물쩡 넘어갈 사안이 아님을 말씀드린다"며 "제 이런 요청조차 거친 비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칙을 지키고 통합하자는 말이 왜 비난받을 일인지 전 도무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전·현직 원내대표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정식 사무총장, 박홍근·김태년·홍영표·우상호 전 원내대표, 이 대표, 홍익표 원내대표, 우원식·이인영·윤호중·박광온 전 원내대표, 천준호 대표비서실장. 2023.10.26 |
ⓒ 연합뉴스 |
때마침 이날 이 대표는 '내부 통합'을 다지겠다며 전·현직 민주당 원내대표들과 국회에서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대표는 비공개 간담회에 앞서 내년 총선과 관련해 "국정운영을 심판해야 국가 퇴행과 국민들의 불행을 막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더더욱 하나가 되어야 한다"며 재차 통합 메시지를 밝혔다. "분열은 필패이고 단합은 필승이라는 각오로 솔선수범하고 앞장서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대표나 당은 '통합'의 원칙만 내놨을 뿐, 구체적인 방안은 공식화하지 않았다. 강선우 대변인은 간담회 후 기자들을 만나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첫 번째 조건도, 마지막 조건도 단합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며 "당 대표의 통합 의지에 대한 (전·현직 원내대표의) 평가가 있었고, 대표가 단합에 좀 더 경주해줄 것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밝혔다.
비명계 홍영표 의원은 기자들에게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며 "무엇인가 협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잘해보자는 자리였다"는 말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박광온 원내대표도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통합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며 세부 방안이 논의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조만간 공석인 지명직 최고위원, 정책위의장 등을 새로 선임한다. 비명계는 이번 인선이 통합의 '실천'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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